지역에서 본 세상/사람이야기

송미영 이야기(1)의리 때문에 포기한 정규직의 꿈

기록하는 사람 2011. 6. 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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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5월부터 6월 13일까지 총 11회에 걸쳐 경남도민일보에 '작지만 강한 여자 송미영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글이다. 경남도민일보에 연재되는 동안 과분한 관심과 격려, 그리고 질정을 받았다. 블로그 독자들과도 공유하고 싶어 이곳을 통해 연재한다.

송미영(42) 씨. 1969년생 닭띠. 키 155cm에 48kg의 가녀린 체구이지만, 그녀의 말과 표정, 눈빛에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봐버린 사람만의 내공과 포스가 느껴졌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그녀가 '까르르' 소녀처럼 웃을 때에도 그 포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라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웠을 고통스러운 자신의 과거마저 그녀에겐 아름다운 추억이 된 듯했다.

지금 그녀는 창원시 성산구 내동에서 '호호국수'라는 19평의 식당을 소유하고 있는 어엿한 자영업자다. 지난 5월 11일 자 경남도민일보 1면에 '더 주고 또 주는 국숫집 주인'으로 소개됐던 바로 그 송미영 씨다.

신문에 보도된 후 서울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왔다. 금·토·일 사흘 동안 미영 씨의 사는 모습을 촬영하러 오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미영 씨는 딱 부러지게 거절했다.

"아니, 제가 생활의 달인도 아닌데, 거기에 왜 나가요? 그리고 신문에 나온 뒤로 갑자기 늘어난 손님을 대접하기도 일손이 모자라는데, 텔레비전까지 나가면 그걸 어떻게 감당해요? 끓지도 않았는데 넘치면 안 되지요."

거기에 한 마디 더 보탠 미영 씨의 말. "일요일까지 찍어야 한다는데, 일요일은 기자님과 만나기로 한 날이잖아요. 기자님과 약속해놓고 다른 사람을 부를 순 없죠."

그녀는 의리파다.


지난 2007년이었다. 당시 그녀는 창원의 한 전자부품업체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었다. 남편을 호주의 한 조선소에 취직시켜주겠다며 접근해온 사람에게 어이없는 사기를 당해 무려 5000만 원의 빚을 떠안은 상황이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했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그나마 용접 일이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찾아간 곳이었다. 하루에 12시간씩, 일주일은 야간, 일주일은 주간으로 일해 월 170만~180만 원을 벌었다. 주말·휴일도 없었지만,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로선 꽤 괜찮은 벌이였다.

게다가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받아 파격적으로 정규직이 됐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남들은 1년, 2년을 해도 정규직 전환은 꿈도 꿀 수 없었죠. 너무 기뻤어요. 이제 월급도 오르고 보너스도 타겠다는 꿈에 부풀었죠."

그런데 정규직으로서 첫 월급도 받기 전에 사건이 일어났다.

"반장이 내 앞에 일하던 언니를 확 밀쳐서 그 언니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어요. 그런데 쓰러진 언니가 허리가 마비되어서 꼼짝도 못하는 거예요."

사연은 이랬다. 공장에서 일하던 한 여성 노동자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있던 반장이 그 여성에게만 매번 편한 공정을 배정해 잔업을 하도록 특혜를 줬다. 이에 다른 여성 노동자가 항의를 하는 과정에서 반장의 불륜 관계를 폭로하려 하자 황급히 입을 막으려 폭행을 했던 것이다.

미영 씨는 물론 주변의 노동자들도 눈앞에서 이 폭행 장면을 봤다. 그러나 반장의 서슬에 눌려 아무도 쓰러진 여성 노동자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아니, 허리가 마비돼 일으켜 세울 수도 없었다. 반장은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 하며 고함을 질렀다.

쓰러진 여성 노동자가 누운 채 휴대전화로 119구조대를 불렀다. 그러나 회사 측은 두 대의 앰뷸런스를 정문에서 돌려보냈다. 세 번째 앰뷸런스가 쓰러진 여성 노동자를 병원으로 태워 갔다.

"119가 그 언니를 태워 간 뒤, 누워 있던 자리를 보니 땀이 흥건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반장의 폭행 사실을 증언해주지 않는 거예요. 잘리는 게 무서웠던 거죠."

허리를 심하게 다친 그 여성 노동자는 산재 신청을 했지만, 회사 측은 '그냥 저절로 넘어진 것'이라고 잡아뗐다. 폭행도 업무와 연관성이 입증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게 되지만, 그걸 입증하지 못하면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미영 씨는 고민했다. "아, 어떻게 이룬 정규직인데…, 정규직 되고 나서 보너스도 한 번 못 타 보고 이대로 접어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회사 간부가 미영 씨를 불렀다.

"당신이 진짜 봤냐?"

"분명히 봤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은 다 못 봤다는데, 당신만 봤다면 이상한 것 아니냐. 그냥 모른다고 해라."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눈으로 본 사실을 어떻게 거짓말해요? 근로복지공단인가요? 거기서 찾아왔길래 사실대로 다 말해버렸죠."

역시 '의리의 미영 씨'였다.

다음날 출근하자 회사는 미영 씨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반장이 '나는 니한테 일 안 시킨다'며 그냥 서 있으라 하더군요. 미치겠더군요. 사흘을 출근해 그냥 서 있었어요. 지나가는 언니들이 '미영아, 힘내'라고 속삭여줬지만, 사흘이 되니 못 견디겠데요."

허리를 다친 그 여성은 산재 처리를 받았지만, 미영 씨는 어렵게 얻은 정규직 일자리를 그렇게 포기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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