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아들 자랑도 하다

김훤주 2008. 7. 1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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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물어도 모기를 잡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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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친구가 찍은 아들 모습

지난해 어느 날, 길 가다가 동네 꼬마들이 장난삼아 벌레를 죽이는 모습을 봤을 때로 기억됩니다. 아들 녀석에게 이렇게 제가 물었습니다. “아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아들이 답했습니다. “아빠, 저는요, 여름에 모기가 물어도요, 모기를 잡지 않아요.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저는 이 때 아들한테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였습니다.

첫 번 충격은 다섯 해인가 여섯 해인가 전에 찾아왔습니다. 곤충학자가 되고 싶다면서 “한 달에 60만원만 벌어도 좋아요.”, 이어서 이렇게 벌면서 결혼하면 상대방을 힘들게 할 테니까 “결혼은 안 할래요.” 했습니다.

아들은 그림 그리는 대학 학과를 가려 합니다. 요즘 인기 있는 디자인은 않고 회화를 하겠답니다. 회화는 보는 사람 눈길 의식을 덜 하고 자기 마음대로 그릴 수 있지만 디자인은 그렇지 않고, 디자인은 복제가 되지만 회화는 작품이 딱 하나뿐이기 때문이랍니다.

꿈에서도 머리는 때리지 않는다

아들은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어제 꿈을 꿨는데요. 5대 2로 싸우고 있었어요. 숫자에서 밀리다 보니 얼굴이랑 머리를 마구 때리고 말았어요. 여태까지는 아무리 꿈속이라도 머리하고 얼굴만큼은 때리지 않았는데…….”

‘이 녀석 봐라.’ 싶어서 슬그머니 돌아보는데 아들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때가 있잖아요. 자기가 실수로 자기 콧잔등을 때리는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잖아요. 그래서 장난으로도 머리랑 얼굴은 안 건드려요.”

아들은 정규군보다는 유격대(guerrilla) 기질이 센 편입니다. 혼자 떨어져 있기 좋아하고 혼자서 움직이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 같이 나다니는 일은 포기하고 삽니다. 비가 오는 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이 필요해서 은행에 들렀습니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혼자 내렸습니다. “너는 있을 거지?”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아들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가늘게 뿌리는 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걸어서 돈 뽑는 기계 있는 데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발 밑까지 살펴서 본다

조금 있으니 뜻밖에도 아들이 뒤따라 왔습니다. “뭣 하러 왔냐?”, 눈으로 물었더니 “비가 많이 오잖아요.” 했습니다. 짧은 동안에 빗방울이 굵어져 있었고, 그제야 보니 아들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었습니다.

나와서 함께 우산을 썼습니다. 왼손으로 우산을 든 아들이 오른손으로 아버지 어깨를 잡았습니다.(키는 제가 조금 큽니다.) 걸어가는데, 손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힘 자랑 하나 싶어 “왜 당겨?” 했더니 “아빠 발 밑에 웅덩이가 있었어요.” 했습니다.

물론 고3 우리 아들이 온갖 시건방을 다 떨고 덜 떨어진 소리를 할 때도 없지는 않지만, 한 번씩 이런 모습을 마주하면 ‘이 친구가 공력(功力)이 나보다 센 것 아냐?’, 또는 ‘전생(前生)에 수도(修道)를 꽤 한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절로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었거든요. 집에서 밥을 같이 먹는 장면입니다. “국에요, 보니까 날벌레가 한 마리 빠져 있었어요. 건져낼까 하다가, 만약 내가 몰랐다면 그대로 먹었겠지 생각이 들어서요, 그냥 그대로 먹었어요.” 생각의 깊이 같은 것은 다음으로 물리고, 그 순발력만큼은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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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지음 | 창작과비평사 펴냄
숙자와 숙희 쌍둥이 자매를 중심으로 가난한 달동네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어린이소설. 동준이와 동수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겠다고 집을 나간 후 가족들의 기대와는 달리 돌아오지 않고, 영호 어머니는 암으로 죽게 됩니다. 숙자네 또한 술주정꾼 아버지가 공사판에서 처참하게 죽는 등 힘겨운 삶이 계속되는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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