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삶에서 위선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김훤주 2008. 7. 1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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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다른 생명에 기대고 빚지는 일’이라는 말씀을 7월 4일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 참회 발원 시국법회에서 들었습니다.

전부터 해오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장으로 다듬어진 구절을 보면서 머리가 상쾌해지는 즐거움을 누렸더랬습니다.

이런 울림 또는 떨림이 오늘도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신문에서 “‘쏙’ 잡으러 통영가자”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쏙은 갯가재의 다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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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담당 기자로 현업에 있을 때 저도 많이 썼던 그런 기사입니다. 나름대로 생태와 친해지는 효과가 있다는 생각으로 유난히 신경 써서 챙겼던 그런 부류 기사입니다.

숱한 생명 거덜내는 갯벌 체험 프로그램

곰곰 생각해 보면-곰곰 생각해 보지 않아도- 갯벌에 들어간다는 자체가 엄청난 살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짓누르는 발길보다 욕심 어린 눈길이 더 많은 살생을 결과하리라 싶지요.

갯벌에는 엄청난 생명이 살고 있습니다. 콩게 뻘게 같은 데서부터 조개와 지렁이를 거쳐 우리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갖가지 생명체가 갯벌을 터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람이 들어가 한 나절 한 바탕 난리를 치면 곧바로 표시가 난답니다. 잡혀죽고 밟혀 죽고 합니다. 그것도 멀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나절 즐거움이 목적일 뿐인데 말입니다.

사람 걸음이 있은 다음 바닷물이 빠졌다가 쓰윽 한 번 밀물로 들어오면, 죽어나자빠진 갯것들 주검이 물살에 허옇게 거품을 빼어물고 둥둥 떠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를 비롯한 우리 집 식구들은 언젠가부터 갯가에 가더라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들어가 삐대는 엄두는 쉽사리 내지 못하게끔 됐습니다.

이런 생각은 산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산이든 어디든 나가서 떠들면 그곳 생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길 개연성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바람 소리 정도에 목소리를 맞추게 됐습니다.

더욱이, 등산길 탐방로에 나와 있는 나무들 같은 경우는, 사람에 치대어져 많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무리 힘들어도 등걸을 타거나 가지를 휘어잡지 않도록 바뀌었습니다.

쏙 잡는 사진을 보면서 저기서 한 번에 죽어나가는 목숨 무게는 또 얼마나 될까 여기며 이런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산다는 것은 다른 생명에 기대고 빚지는 일’이라는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저런 빚은 조금만 마음을 달리 먹으면 (다른 생명에게) 기댈 필요조차 없으며 충분히 지지 않아도 되는 빚일 텐데……, 싶어졌습니다.

참새 목숨을 두고 한 지율 스님 말씀

그러다가 또 문득, 지난지난해 목숨 건 단식을 푼 이듬해 봄에 만난 지율 스님 생각이 났습니다. 지율 스님은 그 때 아직 회복이 되지 않아 일어서기도 겨우 할 정도였습니다.

스님은 불편한 몸으로 서너 시간 인터뷰하느라 가부좌 자세로 앉아 여러 차례 허리를 곧추세우곤 했습니다. 천성산과 고속철도로 내용을 채운 다음, 주제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때가 됐습니다.

등산길을 좁혀야 하고 조금이라도 넓어지면 탐방을 제한해야 마땅하다는 이야기 끝에 이런 말씀을 들려줬습니다. 흔해 빠진 얘기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한 스님이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참새를 잡은 포수를 봤어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자기 몸을 바쳐 참새를 구하려고 손을 잘라 내놓았지요. 어떻게 됐겠어요?”

“천칭 저울에 참새랑 손을 나란히 올렸는데 손이 가볍고 오히려 참새가 무거운 겁니다. 그래서 차례차례 팔과 다리를 내놓고 하다못해 몸통까지 올렸는데도 참새가 더 무거웠어요.”

이쯤 얘기했을 때 제 몸에는 이미 소름이 돋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스님이 이제 마지막이다 여기고 자기 목을 떼어 내놓으니 그에서야 저울이 딱 평행을 이루더라는 말입니다.”

저 또한 이처럼 생각대로 뜻대로 씨부렁거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목숨 유지하느라(이 따위 글을 쓰느라) 다른 생명을 날마다 숱하게 해치니, 결국 삶에서 위선(僞善)은 도저히 벗어 던질 수 없는 굴레인가 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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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지음 | 펴냄
자연과 생명체를 살리고자 온몸을 내던져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지율 스님과 도롱뇽의 친구들의 이야기. 밑바닥으로 터널이 뚫리는 공사로 인한 천성산의 아픔을 호소하며 거리와 농성장에서 보낸 3년이라는 기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과 묵상, 시와 이야기들을 통해 '산의 목소리'를 들려 주는 책. 열정적인 생태주의자인 지율 스님은 지난 3년 간 자신이 조사했던 수로, 동굴, 암석뿐만 아니라 식물, 곤충, 조류 그리고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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