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찔레꽃 ‘붉게’ 피는”까지는 참겠는데

김훤주 2008. 7. 7.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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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6일 산에 갔습니다. 아들이 가고 싶다고, 가서 머리를 씻어내고 싶다 해서 나선 길입니다. 그러니까 2007년 5월 11일 이후로는 처음으로, 아들 덕분에 산을 오르내린 셈입니다.

제가 사는 창원의 봉림산도 다른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풀이 있고 나무도 있습니다. 풀과 나무에는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어서인지, 꽃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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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찍었습니다. 길섶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산나리라고 저는 아는데 주근깨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옆집 나이어린 여자아이 같다는 생각을 저는 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저보다 한 살 어린 ‘정미’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하마터면 제가 마음을 뺏겼을 정도로 아주 귀여웠습니다. 주근깨 하나 없어보이는 뽀얀 얼굴이었지만 웃을 때 가만 들여다보면 한둘이 눈에 잡히곤 했습니다. 나리가 꼭 그런 모습입니다.

싸리꽃도 피어 있습니다. 싸리나무는 어릴 때 무시무시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꺾어서 회초리로 삼아 쓰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할아버지는 삽짝을 만드시고 남은 한두 가지로 회초리를 장만하셔서 사랑에 걸어놓으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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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억에는 그 삽짝도 남아 있는데, 삽짝은 때로 대나무로 엮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대나무 회초리 또한 싸리만큼이나 아픕니다. 싸리꽃은 또, 아까시꽃과 마찬가지로 벌들 꿀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를 한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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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나무 옆에는 자귀나무가 또 꽃을 피웠습니다. 자귀나무는 금슬이 좋은 가시버시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누구 말로는 ‘자’는 데는 ‘귀’신 같은 나무라서 자귀나무랍니다.

꽃이 꼭 뽀얀 솜털 같은데, 해가 지면 이불을 꺼내 펴듯이 펼쳐져 있는 잎사귀를 곧바로 접어 버린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가꿔주지 않는 야생 자귀는 사람 자주 다니는 오솔길 옆 양지 바른 데 자리 잡는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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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기, 두 말 하면 잔소리입니다. 고맙고 예쁩니다. 어린 시절 산딸기 따러 산에 올라갔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산 아래 펼쳐진 고을은 빤히 보이는데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산딸기에 꾀어 보낸 한 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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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도 있고 개망초도 있습니다. 개망초는 이름보다 꽃이 예쁩니다. 누군가 어여쁜 꽃을 보고 시새움을 하느라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묵정밭에 가장 먼저 자리잡는 풀 가운데 하나가 이 녀석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이름만 나무랄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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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찔레도 있습니다. 찔레를 두고 우리 아들이 “어, 찔레는 붉은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했습니다. 우스웠습니다. 그래 제가 “찔레, 가시, 찌르다, 피, 붉다”, 이랬더니 아들은 “그런 연상(聯想) 작용은 없었고요.” 했습니다.

“그러면 노래 때문이냐?” 했더니 “그렇네요, 그런 노래가 있네요. 학교에서 배웠어요. 음악 선생님이 ‘찔레꽃 붉게 피이는 남쪽 나라 내 고오향’ 노래를요, 가르쳐주셨어요.” 했습니다.(그러면서 노래 이전에도 붉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까닭은 모르겠다 했습니다.)

철 지난 유행가를 가르치다니 참 별난 선생님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까지 곁들였답니다. “졸업하고 술집 가서 이 노래 부르면 명문 고등학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또 이 노래 말고 다른 유행가도 가르쳐줬답니다. 즐겁지는 않았답니다.

어쨌거나 찔레는 하얗습니다. 붉은 찔레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찔레가 붉은 줄 압니다. 엉터리 노래 한 곡 때문입니다. 이 정도는 그래도 그냥 넘어가 주는 이른바 ‘시적(詩的) 허용’이라 여겨줄 수 있는 거짓부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가사가 들어 있는 노래는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꾼 노래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줍니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동요이기 때문에 저는 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여름에 나무를 하는 나무꾼은 없습니다. 가을이나 겨울에 나무를 합니다. 여름 나무는 물기가 많아서 잘 베어지지도 않습니다. 말리기도 어렵습니다. 결정적으로는, 나무를 해도 팔아먹을 데가 없습니다. 절절 끓는 여름에, 도대체 어떤 얼 나간 이가 나무를 사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가사는, 나무꾼이 사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관심도 없고 애정도 없는 한 사람이 그냥 방구석에 앉아서 사람들 먹고사는 문제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지어낸 구절일 뿐입니다.

아들 현석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진도 찍으면서 한 두어 시간 잘 보냈습니다. 내려와서는 흐르는 샘물을 한 바가지 얻어 마시기도 하고 흐르는 냇물에 땀을 씻어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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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내리는 데 성과를 따질 필요가 무엇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우리 고3 아들에게 머리가 시원해지는 보람은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찔레는 붉지 않다.’, ‘여름에 나무를 하는 나무꾼은 있을 수가 없다.’는 사실까지도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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