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사람 다가가도 안 달아나는 수녀원 꿩

김훤주 2008. 7. 2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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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도 다른 짐승들과 공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개미나 쥐는 물론, 바퀴벌레와도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귀농한 이들이 들려준 얘기입니다.

해치지 않고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으며 그이들한테 고유한 생활 영역을 인정해 주면 그 영역 안에서 곱게 살아간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은 것입니다.

7월 19일 마산 구산면 수정 마을에 있는 트라피스트수녀원을 찾았습니다. 이 수녀원은 ‘봉쇄’ 수녀원입니다. 한 번 들어가면 평생 나오지 않는 서원(誓願)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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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원 건물 들머리에서, 저는 이처럼 예쁜 꿩을 만났습니다. 꿩은 제가 서너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는데도 날아서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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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쁜 자태를 방향 바꿔가며 보여주다가, 종종걸음으로 콘크리트 깔린 왼쪽 길을 가로질러 가더니 수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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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이 친구는 제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경계도 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풀밭으로 따라 들어가니까, 푸드득 끼끼 거리며 날아갔습니다.

지금 이 수녀원은 봉쇄를 풀었습니다. 세상에 대고 할 얘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 수정만 매립지에 STX 그룹의 조선(기자재) 공장이 들어오는 작업을 마산시가 앞장서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구구절절한 사정을 한두 줄 글로 표현할 방도는 없지만 어쨌든 옳지 못한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매립지가 마을 한복판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공장도 한복판에 들어오는 셈입니다.

STX조선 본사가 있는 진해 죽곡 마을에 가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소음(시끄러운 소리) 분진(먼지=쇳가루와 페인트 가루)이 얼마나 심한지. 물론 이주 보상 약속도 10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마산시와 STX가 합체가 돼서 수정만 매립지 조선기자재 공장 진입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제기된 주민 생존권과 민주주의 말살을 두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 보려고 트라피스트수녀원을 찾았습니다.

원장 수녀(제가 이름을 모릅니다.)께 제가 본 꿩 얘기를 했습니다. “세상에, 사람이 바로 옆에 있어도 걸어다니는 꿩이 다 있더군요.” 그랬다가 저는 이런 대꾸를 들어야 했습니다.

“옛날 밤나무가 있을 때는 청설모도 그랬어요. 처음에는 달아나더니 그러지 않아졌고 나중에는 제가 지나가면 빤히 쳐다보기까지 했어요.” 앞으로는 어찌될까 싶어졌습니다.

밤에도 잠을 못 잘 정도로 엄청난 소리=굉음(轟音)이 울리고 낮에는 빨래를 널 수 없을 정도로 온갖 가루가 날리겠지요. 가루는 또 피부병과 기관지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보다 먼저 꿩이나 청설모 따위가 여기 이 곳을 떠나겠지요. 짐승이 떠난 땅에서, 사람들은 집이나 논밭 같은 재산에 매여 벗어나지 못한 채, 갖은 고통을 고스란히 당하겠지요.

김훤주

새 한입.벌레 한입.사람 한입(생태적삶을위한 귀농총서 6) 상세보기
전국귀농운동본부 지음 | 들녘 펴냄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했고 자연과 나누며 살아갔다. 이 책은 이 근본이치를 깨달으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실천하는 참농사꾼들의 기록을 담았다. 유기농법을 비롯해 여러 화경친화적인 사례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부제는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사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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