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의 어린이·청소년 대상 역사체험단 활동이 마무리됐습니다. 2012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여섯 달 동안 모두 다섯 차례 운영했습니다. 일단 역사체험단 활동은 이렇게 접고요, 3월부터는 ‘어린이·청소년 여행 체험’으로 새로 시작합니다.(어른 상대 프로그램도 많답니다) 앞서 지난 활동을 짤막하게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1. 아래부터 낮은 데부터 채우는 선비 정신이 담긴 관수觀水

◇8월 25일 거창 황산마을~수승대~동계 정온 선생 옛집~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거창박물관 = 창원과 진주에서 30명 남짓이 참여한 역사체험단의 첫 탐방지는 거창이었습니다.

당산나무가 우람한 황산 마을은 옛날 집과 돌담장이 그대로입니다. 거창 신씨 집성촌인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기와집은 원학고가(猿鶴古家)입니다. 들어갈 때는 돌담길, 나올 때는 벽화거리를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벽화거리를 더 좋아했습니다. 색깔이 알록달록 칠해져 있어 눈길을 끌어당기는 모양입니다.

당산나무 아래로 해서 황산마을로 들어갑니다.

원학고가 앞에서.

벽화거리에서.


수승대에서는 시내 옆 구연서원 들머리 정문 관수루에서 도시락을 먹은 다음 2층 누각에 올랐습니다. 3행시 짓기 등 글쓰기를 하면서 다들 바닥에 앉거나 누워 편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물놀이는 기본이지요. 여기 쓰인 관수(觀水)는 물처럼 낮은 데부터 스며들어 꽉 다 채워 나가는 선비의 자세를 담았다고 합니다.

구연서원 들머리 관수루에서.


가까운 데 있는 거창 대표 인물 동계 정온의 옛집에도 들러서 사랑채의 두 줄로 낸 겹처마와 높게 세운 툇마루를 눈에 담았습니다. 겹처마는 추위를 가리는 데 쓰이고요 높은 툇마루는 더위를 물리치는 데 쓰인답니다. 겨울에는 추위도 심하고 여름에는 더위도 기승을 부리는 경남 북부 내륙 거창의 조건에 적응한 결과랍니다.

2. 조금만 틈이 나도 물에 들어가 노는 아이들

금원산 골짜기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바위인 문바위 위쪽 벼랑에 있습니다. 오르는 길에 아이들은 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물의 관계는 참새와 방앗간 또는 술꾼과 술집 이런 관계와 같습니다.

고려 시대 바위에 새겼는데요, 산골에 불상을 새기며 그 때 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을까요? 아니면 그런 기복(祈福) 생각 없이, 다만 부처가 되기 위한 수양으로 새겼을까요?

마지막 거창박물관. 산골인데도 들이 너른 거창답게 농경 유물이 많았습니다. 고려 호족의 것인 둔마리 고분에서 나온 벽화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여기 다른 자랑은 김정호 선생이 만든 대동여지도 진본이다. 펼치면 가로 3m 세로 7m 정도나 됩니다.


아울러 앞에 가서 봤던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 탁본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거기 현장에서는 빛이 부처 뒤쪽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실제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 박물관 탁본은 그런 빛과는 상관없이 부처님 모습을 그대로 되살려 놓고 있었습니다.

3. '하나만이라도 확실하게 익히자'주의


◇9월 8일 하동·구례 최참판댁~고소산성 들머리~쌍계사~구례 오미마을~매천사당 = 역사체험단은 ①한 군데서 하나씩은 확실하게 익히기 ②즐겁게 놀기와 열심히 공부하기와 배운 만큼 기록하기의 조화 둘이 원칙입니다. 말하자면 역사 공부에 지나치게 매이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경향은 갈수록 세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함께 지낼수록, 요즘 문제는 아이들이 공부를 적게 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 해서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놀지 못해서, 제대로 놀 줄 몰라서 오히려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어쨌던 이런 원칙을 따라서 하동 평사리가 무대인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와 절간 부처님의 차림새와 그를 일컫는 용어들을 이날 확실하게 익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토지〉 줄거리를 읽게 한 다음 퀴즈를 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집중력이 놀라웠습니다. 출제한 13문제 모두를 맞힌 친구도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도 퀴즈는 이어졌습니다. '서희 아버지 최치수가 하인이던 귀녀 일당한테 불에 타 죽은 장소를 알아오세요.'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의논도 하고 거기 있는 어른들한테 묻기도 해서 답을 찾았습니다. 최참판댁에서 초가로 지붕을 이은 유일한 집인 '초당'이랍니다. 굳이 가서 몸소 목도(目睹)하고 오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4. 섬진강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섬진강이 통째로 보이는 한산사 앞 고소산성 들머리 전망대에서.


마을 어귀에 있는 할매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는 섬진강 늘씬한 몸매가 통째로 보이는 고소산성 들머리에 올랐습니다.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죄다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풍경이 예술이에요!", "마음이 절로 좋아져요!"

쌍계사로 가는 버스에서는 부처 꼬불꼬불한 머리는 '나발', 손모양은 '수인', 이마에 있는 점은 '백호', 뒤에 번쩍거리는 배경은 '두광', 입은 '통견'이며 목에 난 줄을 '삼도'라 한다는 등을 익혔습니다. 부처님 앉아 있는 자리(대좌)에서 아래로 엎드린 연꽃은 복련(伏蓮), 위로 우러르는 연꽃은 앙련(仰蓮)인 줄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조그만 앎만으로도 아이들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여태까지는 아무 느낌 없이 부처님을 눈에 담았는데, 이렇게 신체 부위별 이름을 알다 보니 부처님 둥실한 몸통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나 봅니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 앞에 모여 앉았을 때, 아이들 떠들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졌고 불상을 보면서 명칭을 실감나게 한 번 더 익혔습니다.

쌍계사 대웅전 부터님 앞에서.


5. 운조루에서 압권은 타인능해(他人能解)

이제 전남 구례 오미마을 운조루로 떠납니다. 무인 집안인 여기는 솟을대문 위쪽에다 호랑이 뼈를 걸어놓았습니다.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운조루에는 굴뚝이 없습니다. 양반집에서 밥한다고 연기를 잔뜩 피우면 가난한 이웃이 힘들어하리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물론 연기가 굴뚝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집안을 감돌아 몸소 불을 때는 사람은 좀 힘들었겠지요만.


여기 운조루에서 압권(壓卷)은 이런 데 있지 않습니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자리에 쌀뒤주를 갖다 놓고는 그 여닫는 마개에 적어넣은 他人能解(타인능해)가 그것입니다. '(주인 아닌) 다른 사람도 누구나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으로, 얻어가는 사람 자존심 다치지 않도록 하는 배려랍니다.

운조루가 들어선 오미마을에는 이렇게 그네가 있어서 아이들이 즐거웠습니다.


6. 매천 황현 목숨 끊은 자리에 들어선 사당

같은 구례의 매천사. 조선을 걸고 목숨을 버린 선비 매천 황현. 1910년 경술국치 때 목숨을 끊은 자리가 여기입니다. 독약을 먹었는데도 목숨이 바로 떨어지지 않아 끝간데없이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독약을 마시면서도 몇 차례나 입술을 떼었다고 합니다. 역사와 현실이 마주치는, 그리고 명분과 실존이 마주치는 꼭지점에 서서, 힘들어하고 흔들려하는 매천 황현이었던 모양입니다.

매천사 경내 대월헌에서.


아이들은 실감이 크게 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저도 말로는 이리 씨부랑거리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조선 역사를 통째로 껴안은 엄청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인식 저 너머로 매천을 두고 볼 뿐이랍니다.


오늘 일정은 조금 힘든 구석도 있었지만 즐겁게 놀 수 있으니까 좋고 또 새롭게 알아가는 바가 있어서 즐겁다고들 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선택과 집중이 잘 돼서인지, 놀 때와 공부할 때가 아이들이 저절로 구분이 됐습니다.

7. 역사 인물이 많은 고장 함양

◇10월 20일 함양 학사루~느티나무~상림~정여창 고택~화림동 정자 = 함양서에는 동네를 가로지르는 물줄기를 돌리고 둑을 쌓아 상림을 만든 신라 시대 최치원, 조선 사림의 시조 김종직과 일두 정여창 등 인물에 먼저 집중했습니다.

함양 학사루 느티나무에서.


정자와 누각도 알아봤습니다. 함양에는 학사루 같은 누각도 있고 군자정·동호정·거연정 같은 정자도 많습니다. 정자는 사적인 공간이고, 누각은 공적인 공간입니다. 그리고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닦는 데라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각은 마루를 높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정자는 낮은 마루 양식이 많습니다.


학사루와 학사루 앞 느티나무를 거쳐 상림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상림숲에서 여기 있는 역사 인물이 모두 몇인지와 상림에서 가장 이름난 것이 무엇인지 두 가지를 찾는 과제를 풀었습니다.

8. 화림동 동호정과 그 앞 너럭바위


그러고는 화림동 정자가 많은 골짜기로 옮겨갔습니다. 옛날 선비가 되기나 한 듯이 곧바로 동호정에 올라가 둘러앉는다. 나무를 이어붙이지 않고 통나무 하나를 갖고 홈을 파서 가파르게 세워놓은 계단에 눈길을 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화림동 동호정에 올랐습니다.


동호정에 오른 김에 옛날 선비들처럼 시라도 한 편 써 보게 했습니다. 어떤 이는 잘 썼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았지만 그런 따위는 상관이 없습니다. 호연(浩然)한 자연 풍광 앞에서 감각 세포가 한껏 벌어진 것은 누구나 다 똑같았습니다.


동호정 앞 너럭바위는 옛날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아이들 뛰어놀기에는 딱 좋습니다. 어른이 놀아도 좋은데요, 다만 바로 앞 물이 깊어서 그 푸른 빛이 조금 겁이 날 정도였습니다. 물에 들어가도 될 정도 날씨는 아니어서, 물장난은 조금만 하고 놀았습니다.

동호정 앞 너럭바위에서 뛰놀았습니다.


9. 왜 기와집만 한옥 취급받고 초가집은 아닐까?

일두 정여창 옛집에도 들렀습니다. 사랑채 앞뜰에는 전나무가 있고 왼편으로는 소나무들이 있는 이 집은 무척 씩씩합니다. 그 씩씩함이 언제나 인상 깊고 좋기는 하지만 어떤 때는 조금 지나치다 싶기도 합니다. 사랑채 정면 위쪽에 엄청나게 크게 쓰여 여기 오는 이들을 압도하는 ‘절의(節義)’ 따위 글자가 그런 느낌을 더해줍니다.

일두 정여창 옛집 사랑채에서 찍은 전나무와 소나무들.

일두 옛집 별채에서.

일두 옛집 사랑채에 적힌 어마어마하게 큰 글자.


어쨌거나 이런 점도 있습니다. 한옥에는 일두 정여창 옛집 같은 기와집은 물론이고 짚이나 억새로 지붕을 이는 초가집도 두루 포함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초가집은 한옥 취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됐을까요? 여기에는 무슨 사회·역사·문화적 심리가 있을까요?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집도 없애고’ 하는 새마을운동의 영향일까요? 어떻게 해서, 왜 우리 어른과 아이들 머리에 기와집은 좋고 초가집은 나쁘다는 그런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잡게 됐을까요?

10. 옥천사 자방루에는 새가 몇 마리 있을까?


◇11월 17일 고성 옥천사~마암면 석마~송학동 고분군~상족암~공룡박물관 = 옥천사는 조선 말기 닥종이를 진상했습니다. 스님들은 공양만 마치고 나면 닥나무 껍질을 벗겨 끓인 뒤 찧은 것을 골짜기 물에 일렁거려야 했습니다. 종이를 뜨는 과정이 그랬습니다.

매우 힘들었습니다. 1800년대에는 340명 안팎이던 여기 스님이 닥종이 진상이 폐지되기 직전인 1863년에는 10명 남짓만 남았다고 합니다. 닥종이 노역의 고됨을 일러주는 숫자입니다. 대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지식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콩나물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물이 콩나물시루를 그저 한 번 스쳐지나갈 따름이지만, 콩나물은 꼬물꼬물 잘도 자랍니다. 아이들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옥천사 진입로의 고즈넉함을 즐겼고 거기 맑고 환한 공간의 볕바름을 즐겼습니다. 절간에 들어가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1700년대 들어 간결하고도 튼튼하게 지어진 자방루에 올라서 이리 굴리고 저리 뛰며 놀았습니다. 덕분에 절간 사람한테 지청구를 듣기는 했지만 즐거웠습니다.

자방루 비천상.

자방루에 그려진 새.


자방루는 1888년 고쳐 지을 때 그린 단청들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지금은 옛날만큼 단청을 잘할 재간이 없기에 색을 입히지 못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비룡상·비천상 그리고 새와 구름 따위가 흐릿한 채로 남았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흐릿함 속에서도 새들과 천인 모습들을 잘도 찾아냈습니다. 건물 단청에 이렇게 많이 새들이 들어 있는 절간은 또 드물다고 하지요.

11. 농경 한가운데 남은 기마문화, 돌말 두 마리

고성군 마암면 석마 마을에는 석마가 있습니다. 석마는 농경 문화 한가운데 남겨진 기마 문화의 자취라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세 마리였으나 2003년 가운데 있던 한 마리를 도둑맞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때 일본 사람들이 서성댔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했을 개연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정월대보름 새벽에 석마를 수호신으로 삼아 동제를 지내왔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에게 물어봤더니지금은 지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동제 전날 밤에 콩 한 말을 바쳤다가 이튿날 거둬들이는 형태는 매우 독특해 보입니다. 말이 좋아하는 콩을 준다는 점, 그것을 그대로 거둬들인다는 점이 남달라 보이는군요.

12. 송학동 고분군 독수리와 상족암 파도 밟기 놀이

송학동 고분군에서는 산책을 했습니다. 고분 사이로 걸어가니 마치 역사책 또는 옛날 가야시대로 걸어들어가는 기분이 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에는 엄청나게 많이 독수리가 떠 있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바로 옆 철성고등학교에 김덕성이라는 미술 선생님이 계시는데요, 14년 전부터 겨울철마다 학교 둘레 들판에서 독수리한테 먹이를 챙겨주십니다. 이래서 이토록 엄청나게 많은 독수리가 여기서 겨울을 나고는 시베리아 몽골로 봄에 돌아갑니다.

송학동 고분군을 산책했습니다.


공룡발자국이 유명한 상족암으로 옮겨갑니다. 공룡박물관에는 당연히 들렀지만 아이들은 감흥이 없습니다. 어떤 친구는 이랬습니다. “공룡박물관에는 여덟 번이나 왔어요.” 그런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진짜 상족암을 진짜 온몸으로 누리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공룡박물관 아래쪽 바닷가를 상족암이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바닷물이 밀고 들어와 길이 끊겨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물때를 맞추지 않으면 건너가거 자기 손과 발과 눈으로 제대로 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이 물때에 맞추느라고 일정을 늦춰 해질 무렵에 찾았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지나간 오랜 세월이 여기 바위에 새겨놓은 갖은 자취들을 눈에 담고 발과 손으로 누렸습니다. 움직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이기에 파도가 매력적인가 봅니다. 친구들은 철썩철썩 드나드는 파도를 자기 발로 밟아보는 파도 밟기 놀이도 했습니다. 옥녀탕·선녀탕 같은 홈도 둘러보고요 굴처럼 생겨난 돌틈을 타고 들어가 공간의 어둑어둑함도  즐겼답니다.

상족암에서 기념 사진도 찍고.

파도 밟기 놀이.

굴처럼 생긴 바위 틈을 빠져나오는 아이들.


13. 들를 때마다 활기 가득한 삼덕항

◇1월 19일 통영 삼덕항~박경리기념관~세병관~문화동 돌벅수~강구항~중앙시장~동피랑 = 삼덕항을 먼저 찾았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어항입니다. 그래서인지 여기에는 옛날부터 만선(滿船)과 무사귀환(無事歸還)을 비는 풍어제가 치러졌습니다. 그 자취가 어귀 돌벅수랍니다. 이 돌벅수는 지금도 마을 사람들한테서 막걸리 등등을 받아먹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제 구실을 다하고 있는 셈입니다.

들를 때마다 활기찼던 삼덕항에서.


여기는 또 충무공 이순신 장군 승전지이기도 합니다. 돌벅수 뒤쪽으로는 당포산성이 있는데요, 그 맞은편 산마루 장군봉에서 당시 전투 지휘를 했다는 얘기가 전해옵니다. 그 전투의 이름이 당포해전이라고 합니다.

삼덕항에서는 1604년 포르투갈 상인 주앙 멘데스의 표착을 기념하는 ‘최초 서양인 도래비’도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최초는 아닙니다. 1582년 제주도에 표착했던 한 외국인과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 따라 들어온 세스페데스 신부가 실은 더 앞서 왔던 도래인이라는 얘기가 곁들여질 수밖에 없지요.

14. 세병관 너른 마루에서 마음껏 뛰놀고

하동에서 최참판댁을 찾아가면서 익혔던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고향이 바로 통영입니다. 아이들에게 박경리 선생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었더니 틀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런 따위는 나중에 필요할 경우 자라면서 조금씩 갖추면 그만입니다.

박경리기념관은 멀리 왼편으로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기념관보다는 박경리 선생 무덤 자리가 더 좋습니다. 아이들도 기념관보다 무덤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와 무덤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와 들판과 산들을 좋아했습니다.

도시락을 먹고 세병관으로 떠났습니다. 세병(洗兵)은 무기를 씻는다는 뜻이랍니다. 임진왜란으로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당대 사람들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겠습니다. 1600년대 초반 지어진 세병관은 일제강점기에는 초등학교 교실로도 쓰였는데, 박경리나 윤이상 같은 예술가들이 여기서 수업을 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세병관 마루에 올라 굵다란 기둥을 잡고 돌거나 기둥 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마루에 엎드리거나 누워 쏟아지는 햇살에 눈길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너른 공간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뛰고 구르고 놀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넓은 데가 여기 세병관이거든요. 같이 견줄만한 테가 서울 경복궁 경회루와 전남 여수 진남관 정도뿐이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15. 돌벅수를 화려 장엄하게 단장하는 까닭은


세병관 들머리 잘 생긴 문화동 돌벅수는 자세히 보면 색칠한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칠이 모두 벗겨져 돌로 만든 보든 벅수와 장승들이 원래부터 화장하지 않은 민낯이었으리라 여기지만 실제 옛날 사람들은 화려 장엄하게 꾸몄답니다. 왜냐하면, 둘벅수 등등을 진짜 숭배했으니까요. 숭배 대상이 초라해서야 어디 스스로에게도 권위가 서지 않았을 테지요.


이어 새로 복원한 거북선이 둥둥 떠 있는 강구항으로 갑니다. 아이들은 거북선에 들어갔다 오래지 않아 나옵니다. 배 안 공간이 좁아 갑갑한 모양입니다. 강구항 문화마당에서 아이들은 편을 나눠 준비해 간 공으로 농구대에 공 넣기 놀이를 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마지막은 동피랑. 고양이 발자국 찾기, 천사 날개 사진 찍기, 다 마친 다음 동피랑 마을 꼭대기로 찾아오기 등등 과제를 냈습니다. 서넛씩 팀을 이뤘습니다. 혼자라면 적지 않게 헤매기도 했을 텐데, 이날 모두 제대로 해내었습니다. 오후 4시 어름, 마을 구판장에서 이날 받은 상금을 헐어 군것질하는 것으로 일정이 마무리됐습니다.

16. 두루 즐기고 고루 누리고 함께 배우자는 해딴에

해딴에는 이렇게 여행·체험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마을 만들기·도랑 살리기 또는 갱상도 인문학 협동조합 결성을 통한 지역밀착형 인문학 강의 같은 공익 활동을 벌입니다. 지역의 관광·탐방 자원을 널리 알리는 블로거 팸투어와,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같은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제작 사업도 펼치고 있습니다.(특히 자치단체와 교육청 같은 공공기관의 많은 애용을 바랍니당)


저희 해딴에는 경남도민일보가 만들었는데요, 2012년 9월에는 경남도로부터 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정식 지정이 됐습니다. '해딴에'는 '해가 있는 동안에'를 뜻하는 경상도말인데요, '지금 여기서, 미루지 말고, 두루 누리고 고루 즐기고 함께 배우자'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2013년 올해에는 3월에 시작해서 내년 2014년 2월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여럿 만들어 저희 해딴에 카페(다음Daum 검색창에서 한글로 ‘해딴에’ 석 자를 치시면 바로 뜬답니다.)에 올려놓았습니다. 참가 신청이나 문의는 010-2926-3543 또는 pole08@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언제나 즐겁고 고맙게 받들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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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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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yahoe.tistory.com 금정산 2013.02.23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주말 홧팅하세요

    • 무학산 2013.02.24 0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한테도 좋은 프로그램이 많네요~~~
      아주 세밀하게 잘 짜인 것 같아요~~~
      나중에 보고 골라 신청하고 싶은 것들이 많군요...

  2. Favicon of http://chamstory.tistory.com/ 참교육 2013.02.24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생 많으셨습니다.
    대신 보람된 일이기에 힘이 쏫겠습니다.
    3월부터 활동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