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사랑채 기둥은 둥글고 별당은 네모난 까닭

김훤주 2013. 2. 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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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없이 보냈던 지난해 여름

제게는 2012년 여름이 ‘정신없음’이었습니다. 여름 들머리에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 창립을 마무리 지어야 했고 이어서 이에 대한 예비 사회적 기업 지정을 경남도에 신청을 해야 했습니다.

창립과 더불어 공공적 활동을 담보하는 동시에 이듬해부터는 나름대로 수익을 내야 했기에 이리저리 검토하면서 이른바 ‘수익 창출 구조’를 실험하고 또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갖은 구상과 시험을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역사체험단이었습니다.

7월과 8월에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모집해 8월 첫걸음을 내딛었는데요, 9월에 진행됐던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제가 경남도민일보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에만 올려놓고 저희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한산사 앞 전망대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다.


이제야 알아차리고 늦게나마 올립니다. 지난 여름 제 ‘정신없음’의 소산이라 여기시고 양해해 주시거나 마시거나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쨌거나 한편으로는 기록 차원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홍보 차원에서 한 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2.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이 담겨 있는 최참판댁 건물들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 역사체험단은 원칙이 몇 가지 있답니다. ①한 군데서 하나씩은 확실하게 익히기 ②즐겁게 놀기와 열심히 공부하기와 배운 만큼 기록하기의 조화.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9월 8일 역사체험단의 두 번째 나들이는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를 찾았습니다. 최참판댁~고소산성~쌍계사~운조루~매천사당. 최참판댁 가면서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른이 생각하는 것처럼 깊이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체험단에 참가하는 아이들이 <토지>와 박경리를 거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버스 타고 가는 도중에 <토지>의 줄거리나마 읽어보게 한 다음 단답형 퀴즈를 냅니다. '박경리의 고향이 하동일까요? 아닐까요?'도 있고 '서희 남편 길상의 신분은 무엇일까요?'도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체험단은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습니다. 거의 기대하지 않았는데요, 출제한 13문제를 모두 맞힌 친구도 있었을 정도입니다다. 현장에서도 과제를 냈습니다. '서희 아버지 최치수는 하인이던 귀녀 일당에게 불에 타 죽게 되는데 그 장소가 어딘지 알아오세요.'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의논도 하고 훈장을 비롯해 최참판댁 여러 분들에게 물어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초가로 지붕을 이은 유일한 집이라며, '초당'까지 둘러보고 돌아옵니다.

"최참판댁에 여러 번 왔었는데요, 그렇지만 그 때는 건성으로 대충 봤지 이번처럼 제대로 살펴보지는 않았어요." 역사체험단을 하는 보람이 여기 있습니다.

건물을 활용해 옛날 사람들 생각도 알아봅니다. 최참판댁은 남자가 사는 사랑채는 기둥이 모두 둥글지만 여자가 머무는 안채와 별당채는 기둥이 모두 네모져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옛날 사람들의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이라는 생각이 여기에 스며 있는데, 하늘은 높고(고귀하고) 땅은 낮다(비천하다)가 아니라, 음양오행에 따라 남자는 하늘에 견줬고 여자는 땅에 견줬기에 그렇게 했다는 얘기랍니다.

망원경으로는 섬진강 물빛이 좀더 뚜렷하게 보이겠지요.


이어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를 지키는 할매나무 밑에 모여 점심 도시락을 먹고 고소산성으로 갑니다. 날씨가 더워 산성에까지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들머리 한산사 바로 앞 전망대로 갔습니다. 오른편 서쪽에서 왼편 동쪽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그지없이 잘 보이는데, 불어오는 바람과 눈에 담기는 풍경이 거듭거듭 감탄하게 만들었습니다. "풍경이 예술이에요!", "마음이 절로 좋아져요!" 이것,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3. 새롭게 뜯어보는 쌍계사 부처님

쌍계사. 이곳 또한 아이들이 어버이랑 자주 와 본 데지만 역사체험단에게는 새롭게 보입니다. 버스 타고 가면서 통일신라 말기 빼어난 학자였던 최치원이 짓고 쓴 진감선사대공탑비와 불상 부위별 명칭을 배웁니다. 진감선사는 불교음악인 범패를 처음 들여왔을 뿐 아니라 차나무도 가져와 문화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웃할아버지 같은 서민풍 돌부처 앞에서.


어쨌거나 이 탑비가 이름난 까닭은 바로 지은이가 최치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당대에 일가를 이룬 최치원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물 가운데 하나라고들 하지요.

이어서 부처님 명칭. 머리는 꼬불꼬불해 '나발'이라 하며 손모양은 '수인', 이마에 있는 점은 '백호', 뒤에 있는 번쩍거리는 배경은 '두광', 입고 있는 옷은 '통견'이며 목에 있는 줄을 '삼도'라 하는 것 등을 익힙니다. 부처 앉은 자리(대좌) 위로 우러러 보는 연꽃은 앙련(仰蓮)이고 아래로 엎드린 연꽃은 복련(伏蓮)이라는 정도도 더했답니다.

함께 소리내어 읽고 적어봄으로써 자기 지식으로 삼을 수 있었는데, 이런 조그만 앎만으로 아이들은 크게 달라졌습니다.(물론 어른들도 잘 모르는 이런 지식 나부랭이를 아이들한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기억해 주면 고맙고, 그렇지 않아도 그뿐이지요.) 

대웅전에 들어가 앉아 있는 아이들.


대웅전 부처 앞에 앉았을 때, 떠들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이보다 더 조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실제 불상을 보면서 배웠던 명칭을 실감나게 익혔습니다. 또 절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옆집 할아버지처럼 모습이 푸근한 마애불도 눈에 담았습니다.

4. 운조루에서 압권은 타인능해(他人能解)

경남 경계를 벗어나 전남 구례의 오미마을 운조루로 떠납니다. 중국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름(雲)은 무심히 산골짝에 피어오르고/ 새(鳥)들은 날다 지쳐 둥지로 돌아오네"에서 따온 이 집 사랑채 당호(堂號)라 합니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1776년 무사 유이주가 세웠는데, 기개를 일러주듯 솟을대문 위쪽에는 호랑이 뼈가 걸려 있습니다.

굴뚝이 없는 집, 운조루.


운조루는 건물보다는 거기 스민 생각이 훨씬 그럴 듯하답니다. 굴뚝이 없습니다. 불을 땔 때 연기 때문에 고생을 했겠지만 양반집에서 밥해 먹는다고 연기를 피우면 가난한 이웃들이 더 힘들어하리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또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자리에 쌀뒤주를 갖다 놓고 거기 여닫는 마개에 적은 글씨도 남다르답니다. 他人能解(타인능해)가 그것인데, '다른 사람도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주인이 손수 줄 수 있는데도 그리 하지 않은 까닭은, 얻어가는 이로 하여금 자존심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 배려랍니다.

운조루 명물 쌀뒤주가 오른쪽에 보입니다. 아래 쌀 나오는 구멍에 뭐라 적혀 있나요?


운조루가 있는 오미 마을 너른 마당에는 그네와 널이 놓여 있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습니다. 앞을 다툴만 한데도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이 차례차례 줄지어 그네를 타고 굴렸습니다. 자기보다 어린 친구를 더 앞세우고 다독여 주는 모습도 보여 고마웠습니다.

5. 매천사-죽어서 인(仁)을 이루다(成)

매천 황현이 자결한 자리 매천사. 아편을 삼켰으나 단박에 죽지 못해 몹시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들머리 새로 세운 대문에 붙어 있는 성인문. 대한민국 으뜸 명필 김충현의 글씨랍니다. 일제에 빌붙지 않는 집안에서 1921년 태어나 2006년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방문지는 같은 구례에 있는 매천 황현의 사당.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독약을 먹고 목숨을 끊은 자리가 여기라고 합니다만, 아이들은 그 실감이 크게 나지는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망한 나라를 위해 또는 자기 지조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기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이의 유언도 함께 알아보고 자결에 앞서 쓴 절명시(絶命詩)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새와 짐승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린다/ 무궁화 이 세상이 망하고 말았구나/ 가을 등 아래 책 덮고 생각하니/ 세상에 글 아는 이 노릇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나".

어쨌거나 전체로 보면 다들 재미있어 했습니다. 힘든 구석도 있지만 하나하나 새롭게 알아가는 바가 즐겁다고도 했습니다. 그럭저럭 선택과 집중이 잘 돼서인지, 신나게 놀 때와 진지하게 공부할 때도 저절로 구분이 됐습니다. 신나게 놀면서 아이들은 큽니다. 잘 놀아야 잘 삽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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