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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타고 우리동네 10배 즐기기 : 진동

김훤주 2011. 1. 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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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버스 노선이 많이 알차졌습니다. 게다가 정시성(定時性)까지 나름대로 확보됐고 나아가 인터넷 등을 통해 버스가 지금 어디 와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창원시의 경우 시청 홈페이지에서 생활정보→교통정보→창원버스정보시스템→실시간 버스 정보에서 노선 번호를 치면 바로 확인이 됩니다.

주민 불편을 없애려는 자치단체들 노력 덕분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시내버스가 손님이 적어 적자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자가용 자동차가 대세인 탓도 있지만 시내버스로 손쉽게 찾아갈 장소가 어디인지 잘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시내버스를 즐겨 타면 공해도 적어지고 에너지도 덜 들고 교통비 지출도 줄어든답니다.

여러모로 도움 되는 시내버스 타기, 몰라서 못 타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경남도민일보>는 2011년 화요일 연중 기획으로 '시내버스 타고 우리 지역 10배 즐기기'를 시작했습니다.

'10배 즐기기'의 첫 발걸음을, 고려 공양왕 2년(1390) 우산현(牛山縣)으로 역사에 이름을 올린 이래 조선 태종 14년(1414) 진해(鎭海)현으로 바뀌었다가 1908년 창원군으로 합쳐진 진동에서 80번 시내버스로 내딛었습니다.

오른쪽 진해현 동헌, 가운데 진동면사무소, 왼쪽 진해현 사령청.


2010년 12월 29일 아침 9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경남도민일보(마산종합운동장, 홈플러스 마산점)앞에서 80번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20~40분 간격으로 창원역에서 진동 환승센터까지 1시간 5분안팎 걸려 오갑니다.

2010년 6월 10일 운행을 시작했는데, 80번 생기기 전 내서 사람들은 진동 가려면 마산 시내로 나와 갈아타야 했습니다. 한 번씩 하는 걸음이면 몰라도 동마산이나 내서에서 진동 학교까지 통학하는 학생들은 참 갑갑했겠다 싶습니다.

이런 데서 시내버스의 공공성을 봅니다. 노선 하나만 보면 적자겠지만, 노선을 운행함으로써 생기는 여러 주민들의 여러 이익을 생각하고 자가용 자동차 통행을 줄이는 효과까지 합친다면 분명 흑자겠습니다.

80번 시내버스의 공공성은 노선 운용에서도 확인됩니다. 간선도로로만 다니지 않고 상대적으로 처지가 어려운 이들이 많다는 상곡주공아파트까지 왕복 2차로를 들어갔다 돌아나오는 것입니다.

9시 25분 조금 못 미쳐 상계1주공아파트 앞에 섰습니다. 여기서 타는 사람들을 보니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다수입니다. 다들 장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진동장날이 바로 4일과 9일이렷다.

9시 45분 즈음 종점인 진동 환승장에 닿았습니다. 왕복 4차로 국도 2호선을 건너면 오늘 둘러보는 진동시장 진해현 관아 마을숲 광암항 등이 다 나옵니다.

진해현 객사 터. 진동중학교에 있습니다.


무릇 가장 좋은 여행은 '두 발로'라고 합니다. 시나브로 걷다 보면 마을이랑 풍경이 머리랑 가슴으로 '스르르' 스며든다는 말입니다. 느릿느릿 걸어도 광암항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으니 서두를 까닭은 없습니다.

시장은 나중에 들러야지요. 물건을 사면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역사(歷史)를 둘러봅니다. 진동시장 들머리로 들어간 다음 뒤로 빠져나가 진해현 관아를 살핍니다. 동헌이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동헌.


동헌은 옛날 원님이 시정을 살핀 자리입니다. 행정권과 사법권을 오로지한 원님은 형벌권도 행사했습니다. 자취로 형방소(刑房所 : 요즘으로 치면 유치장)가 있었다지만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동헌은 태봉천을 끼고 있는 지형으로 봐서 진동의 중심입니다. 바로 옆에 진동면사무소가 있는 것이 방증입니다.

동헌 마루에 앉아 보면 왼쪽에 객사(1983년 불에 탐), 앞쪽에 마방과 형방소, 오른쪽에 아전들이 일을 봤던 사령청(使令廳)이 있습니다. 사령청이란 명령(令)을 시키는(使) 곳이니 '까라면 까야 하는' 옛날 원님의 무소불위 권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방.

사령청.


객사니 마방(요즘 치면 주차장)이니 형방소도 죄다 동헌이 중심입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지만, 지배하는 이의 성품이나 태도가 어떠하냐에 따라 백성들 운명이 달라졌을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합니다.

'진해'라는 이름은 별나답니다. 지금 진해는 창원시 진해구와 '군항도시 진해'를 떠올리게 하지만 원래는 이 동네 이름입니다. 일제가 1908년 원래 진해를 창원에 집어넣으면서 원래 웅천이던 지금 진해에다 갖다붙이고 군항을 만들었습니다. 진해-바다(海)를 진압한다(鎭)…….

하나 여기에만 매달리면 재미가 없습니다. 옛날 마을숲 자취를 찾아나서보겠습니다.(이 또한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태봉천 건너편 혜창아파트 자리 둘레에 자취를 알려주는 고목이 몇몇 그루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동림의 자취를 알려주는 고목.


남은 것은 동림(東林)의 자취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중심 마을이 들어선 자리에 서림(西林)이 있었고 바다쪽에 남림(南林)이 우거졌습니다.

마을이 살려면 숲이 있어야 합니다. 아파트도 숲이 제대로 있어야 값이 나가는 지금 세태가 증거입니다. 진동은 여지가 있습니다.

태봉천 양쪽 제방으로 나무를 심으면 새로운 마을숲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천 따라 펼쳐질 마을숲은 안팎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할 것입니다.

혜창아파트 앞 태봉천 방죽길. 나무를 심으면 이 밋밋함이 가실 것입니다.

제방 안쪽에 있는 텃밭들,

텃밭들 사이로 길을 내어 놓았습니다.


광암으로 갑니다. 1970~80년대는 해수욕장 노릇도 했지만 지금은 어항만 남았습니다. 광암항 가는 길, 지금은 겨울이라 꽤 쌀쌀맞지만 5월 모내기 철에는 무척 인정스럽습니다. 갓 쪄낸 모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이라니…….

길에는 메가리(표준말로 멱서리) 같은 생선 건져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광암항 끄트머리 횟집들에서는 생선을 싸고 풍성하게 맛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자가용을 몰고 가지 않았으니 술을 마셔도 괜찮습니다. 시내버스가 주는 여유지요.

돌아오는 길에는 시장에 들릅니다. 아주 붐비거나 시끌벅적하지는 않습니다만, 진동시장은 지역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심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골목 어귀에서 장보러 나오는 이들을 끊임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흙담이 남아 있는 골목길을 돌아 낯익은 이웃에게서 생선·해물·채소를 장만하러 나오는 것입니다.


물이 좋습니다. 값도 헐합니다. 얼 말린 명태가 한 마리 5000원이랍니다. 비슷한 크기로 대형 할인점에서 알아봤더니 1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손바닥 두 개만한 생물(얼리지 않은) 도다리도 네 마리 1만원입니다. 이또한 다른 장에서는 두 배 이상 값으로 팔립니다. 모자반도, 아무리 먹성 좋은 사람도 두 끼는 먹을 만한 한 모둠이 2000원입니다.

유모차나 리어카로 장을 보고 돌아가는 할머니들.


광암항 둘레 횟집에서 신세 지지 않았다면 '사거리식당'이나 '바글바글식당', '대복집' 따위에 들러도 좋습니다.

반찬이 좋고 푸짐한 사거리식당은 장날에는 앉을 자리도 없고 음식 주문도 밀릴 정도랍니다. 바글바글식당은 곰장어나 해물탕이 좋다고 합니다.

멸치쌈밥이 먹고 싶어 대복집에 들렀는데, 반찬이 많지는 않았지만 깔끔해 혼자서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야 일어섰습니다. 다른 밥집도 다들 그럴듯하답니다.

일부러 서두른 일은 전혀 없었는데도, 돌아오는 80번 시내버스는 낮 2시 45분 출발이었습니다. 해가 중천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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