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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방자전' 뒤집어 짚어낸 '춘향전' 탄생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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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전>을 봤습니다. 보고 나서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눈에 담았군,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니다.

올해 들어 <아바타>도 보고 넬슨 만델라를 소재 삼은 <인빅터스>도 보고 <하녀>도 봤지만 죄다 '아니올시다'였습니다.

구경하는 데 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어지간하면 본 소감 정도는 써서 올리는 편인데 올해는 여태 한 꼭지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영화 <하녀>는 어떻게 저런 영화가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을까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방자전>을 보고 나니 '오히려 이런 영화가 칸 영화제 같은 데에 초청받아 가야 마땅하다' 싶었습니다. 그만큼 좋았다는 말씀입니다.


1. 캐릭터 설정이 뛰어났다

'춘향전'에 대한 감독의 재해석이 탁월했기에 이런 설정들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이몽룡은 여기에서 순진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이몽룡은 기생 딸 춘향을 기생으로 좋아할 뿐이고 어느 정도 즐긴 다음 버리고 갈 뿐이며 나아가 출세를 위해 춘향에게 '공동 작업'을 제안하기까지 합니다.

춘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몽룡 몸종 방자에게서 매력을 찾아내고는 끌릴 따름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 월매의 뜻을 따라 이몽룡과 놀아납니다.

'춘향전'에는 안 나오는 마 영감(또는 마 노인)이라는 캐릭터의 창조는 압권이었습니다. 마 영감 덕분에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이 많이 즐거웠습니다.

마 영감. 마 영감 스승은 죽을 때 자위를 하다가 사정을 하는 순간 숨을 거뒀다는군요. ^.^

'뒤에서 보기' 같은 여자 꼬시는 매뉴얼이라든지 '은꼴편(은근히 꼴리는 편지)' 같은 얘기가 중간중간 웃음을 주기도 했고요, 어쨌든 마 영감 덕분에 이야기 진행이 아주 부드러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옛날 어릴 적 보던 '빨간 만화' 책에는 주인공 이름이 '마대근'으로 자주 나왔는데, 마 영감의 '마'씨도 아마 같은 계열이리라 짐작이 됩니다. ^.^)

'방자'라는 인물도 나름대로 잘 해석이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아쉬운 바는 몸종 '방자'가 주인 '이몽룡'보다 먹물 티가 더 났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방자'는 어쩌면 철학자처럼도 느껴질 정도였는데, 반대로 좀더 단순했으면 더욱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머리나 입으로는 조금만 말하고 반면 몸통으로 더 많이 말하는 그런 캐릭터였다면 더 나았으리라는 말씀이올시다.(쉽지는 않겠지요만 ^.^))

'향단'도 좋았습니다. 감정과 그 처리가 단순했는데, 그래서 이몽룡과 '붙어먹고' 나서 "(방자가 춘향이보다 자기를) 먼저 사랑했는데~" 하며 엉엉 우는 장면이 우습기만 하지는 않고 실감까지 났습니다.

'변학도'의 재창조 또한 아주 멋졌습니다. 여자만 밝히는 놈으로 돼 있는데요, 여기에다 딱 순진함만 더했을 뿐인데 몽룡한테 악용당해 이리도 재미난 인물이 됐습니다.

2. '춘향전' 재해석이 탁월했다

'춘향전'은 지고지순하고 천진무구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지고지순은 더없이 높고 잡스럽지 않다는 뜻이고 천진무구는 하늘이 낸 그대로 더럽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런 존재는 세상에 없습니다. 높지 않고 땅바닥에 발을 딛고 살며 이것과 저것이 뒤섞이는 게 사람살이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때가 안 묻은 인생은 없습지요.

<방자전>은 이런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또는 존재할 수 없는) '춘향전'이라는 사랑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을 되짚어 창조해 냈습니다.

몽룡의 욕심과 춘향의 욕심 그리고 몽룡의 때 묻은 사랑과 춘향의 잡티 나는 사랑을, 방자가 성춘향에 대해 아쉬워 하는 마음으로 버무렸습니다.

몽룡과 춘향의 마음에 들러붙어 있는 출세와 명예와 부귀영화에 대한 집착 그리고 춘향과 몽룡의 사랑에 끼여 있는 잡티를, 방자가 자기 마음으로 지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방자전>을 보고 나서 '춘향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니, '춘향전' 사랑 놀음을 비롯한 여러 장면들이 훨씬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와 좋았습니다.

3. 젖가슴과 엉덩이가 너무 컸다

중간중간에 남녀가 벌거벗고 헐떡거리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야동'이 널려 있는 요즘, 벌거벗은 남녀 몸매에 그리 비중을 두지는 않았겠지만 저는 좀 부담스러웠습니다.

춘향의 젖가슴이 너무 크게 느껴졌습니다. 조금만 더 작은 젖가슴을 '헌팅'했다면, 거기서 나오는 춘향 이미지가 줄거리랑 좀더 달라붙었겠다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향단의 것인지 아니면 춘향의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엉덩이를 화면이 너무 잡아당겨 지나치게 키우지 않았나 싶은 장면도 있었습니다. 제 얼굴로 덮쳐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4. 이번에도 어김 없이 눈물이 났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종종 우는 편입니다. <하녀>와 <인빅터스>를 보면서도 왜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울었고요, <아바타>에서는 주인공 여자가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이번 <방자전>을 보면서도  마찬가지 눈물이 나왔습니다. 거의 끝날 때까지 울지 않아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었는데 ^.^ 막판에 울음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맞고 쓰러진 춘향이, 화가 나 있는 변학도, 매달려 애원하는 방자.


옥에 갇힌 방자를 찾아간 춘향이 "(몽룡이랑) 짜고 하는 줄 다 알면서 왜 나서서 맞고 그랬어?" 이렇게 물었을 때 방자가 대답합니다.

"(변학도 봉고파직하고 춘향이 곤장 치고 하는 짜고 치는 스토리가 잘 되도록) 도우려고 그랬어.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없잖아."

저는 울먹울먹해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그쳤으면 울지는 않았을 텐데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고 말았습니다.

방자가 소설 쓰는 사람에게 '아름답고 좋기만 한 사랑 이야기로 쓰고 방자는 한 모퉁이에 등장만 하도록 해주고 제목도 '방자전'이 아닌 '춘향전'으로 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상대방은 당연히 "왜요?"라고 묻습니다. 방자가 답하지요. "(춘향이가) 이루지 못한 거잖아요. 이렇게라도 이룩해 주고 싶어요." 저는 이 대목에서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온 몸과 마음으로 한 여자를 온통 사랑하는 그런 뼈저리는 심정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사랑하는 그런 여자에게 뭐든 해주고 싶지만,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안타까움도 같이 알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춘향전(세계문학전집 100)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송성욱 옮김 (민음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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