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마을혁명>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하는 말을 끌어 쓴 대목에서다. 이게 실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얼마나 눈물겨운 말인지, 얼마나 하고 싶지 않은 말인지,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도대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닥쳤을 때, 차라리 죽음보다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말이 이런 것밖에 없다는 참담함……. 그러나 사실 대부분 인생은 이런 길밖에 없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이런 꼴을 당하면 어떨까. 강수돌은 그런 일을 쓰고 있다. 그런데 마산도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바로 황철곤 마산시장과 STX조선 그룹이 작당하고 벌이는 '수정만 매립지 STX 조선기자재 공장 진입'이다.

황철곤 시장은 2008년 공장 진입을 두고 찬반으로 갈려 있는 주민들에게 찬반 투표를 시키고 절반도 찬성하지 않았는데도 압도적 찬성률이 나왔다 선언하고 밀어부쳤다.

이런 과정에서 회유와 매수와 협박과 사기와 기만이 광범하게 이뤄졌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마을 공동체는 산산조각이 났다.

조선기자재 공장 예정터는 중학교랑 바로 붙어 있고 지형은 소음과 먼지가 빠져나갈 수 없는 꼴이었으며 조선기자재 공장은 좁은 2차선 도로 말고는 마을과 얼굴을 마주대고 있는 꼴이다.

마을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지경인데도 이토록 행정은 난폭했다. 나아가 행정의 조작과 일반 사람들의 무심함으로 말미암아, STX 조선기자재 공장 진입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마산 경제를 죽이는 '역적'으로 몰렸다. 

마산의 뜻있는 이들은 세상에 이런 무지막지한 일이 더는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이런 데가 또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보다 더 심한지도 모르겠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1리가 바로 그 곳이다.

"사업은 대략 3000억원 규모다. 남으로 고려대, 북으로 홍익대 캠퍼스를 끼고 있는 대학촌 예정지에다가 비밀리에 아파트라니, 말도 안 된다. 이럴 수가! 치가 떨렸다.

수천, 수만 년을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 살아온 바로 그 터전, 그 논과 밭, 과수원과 구릉지를 하루아침에 허물고 되물리기 어려운 시멘트 흉물 덩어리를 세운다니, 그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나는 대학 교수라기보다 마을 주민으로서 이 싸움에 온몸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에 살건, 내가 아끼는 마을과 자연이 처절하게 망가지는 것을 마냥 눈뜨고 볼 수 없었기에, 마을과 자연을 아름답게 지키자는 것,

이것이 출발점이고 종착점이다. 어쩌면 이 싸움이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끝날지 잘 몰랐기에 더 용감히 뛰어든 건지도 모른다."

"마치 인생의 길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부모가 자녀의 인생을 대신할 수 없듯, 이 싸움도 나 스스로 한 걸음씩 나아가며 만들어야 했다.

누가 대신해줄 일이 아니었다. 남을 위해 대신해준다고 생각하는 한, 싸움의 동력은 금방 사그라진다. 인생의 길처럼 나 스스로 걸어가며 느끼고 깨치고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며 없던 길도 새로 열어나가야 했다."

2007년 7월 12일 당시 이장이던 강수돌 교수가 전 이장에게 폭행당해 왼쪽 눈알이 뽑힐 뻔했다. 주간 세종뉴스 사진.


"도지사는 동석한 부지사 및 담당 공무원을 보고 '이거 원래 연기군이 대학촌을 만든다고 하던 곳이고 충남도에서도 대학로 순환도로 공사를 한다고 수억 원을 지원한 곳이니 아파트 사업은 안 된다고 연기군에 아예 공문을 내려보내세요 알았지요?'라고 통쾌하게 말했다.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거듭하고 우리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도지사실일 빠져 나왔다. 도청 기자실에도 들러 그런 경과를 이야기해주고는 널리 보도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이상하게도 분위기는 좀 썰렁했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 더 속았다. 공무원들이 하나도 움직이기 않았기 때문이다. 되레 연기군은 착실히 협의를 거쳐 아파트 사업을 위한 서류를 만들고 있었고, 충남도는 모른 척하고 있었다." 

"엉터리 교통영향평가 보고서 사본을 들고 충남도청 건설교통국장으로 앉아 있는 그를 찾아가 '국장님, 도대체 1000세대 아파트 단지에 입주 완료하고 승용차가 1년에 단 1대씩 증가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라 따지자, 당황한 그는 '이거 오타네요, 오타'라고 답했다.

그 어려운 행정고시를 쳐서 고급 공무원이 된 사람이 전문가 회의에 참여했으면서도 그 회의에서 가결된 내용을 사후에 '오타'라고 하다니……. "

"엉터리 교통영향평가 보고서를 들고 전국의 교통문제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대부분의 전문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간 자기 이름이 더 이상 업계에서 영구 추방될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전문가들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한편으론 무서운 현실이고 다른 편으론 웃기는 현실이다. 차라리 전문가라는 이름이나 쓰지 말 일이지."

"결산하면, 우리가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다. 아파트 사업 자체는 막지 못했지만, 아파트 단지 건설 과정이 중단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1000세대 가까운 고층 아파트 12개 동의 골조는 병풍처럼 빼곡하게 들어섰지만 분양률이 2%에도 못 미쳐 창문이나 인테리어도 못 한 채 철수한 것이다. 사업이나 경영의 기본이라 할, 수요 예측과 타당성 검토에 철저히 실패한 까닭이다. 5년 전에 진지하게 경고한 바를 무시한 결과다."

"터무니 없는 개발 사업의 종말이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고 싶다면 우리 마을로 오시라. 기업이 지역 여건이나 마을 주민을 무시하고 일확천금에 눈이 멀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면 우리 마을에 연중 무휴 24시간 전시된 유령 아파트 단지를 보러 오시라."

5년 동안 마을 주민들이 하나가 돼 애쓴 결과는 그러나 흉물스럽게 남은 짓다 만 아파트만은 아니었다. '생동하는 마을 공화국'도 하나 남았다.

5월 11일 제2회 신안리 골목축제에서 조치원읍 신안 1리 마을 주민과 대학생이 흥겹게 춤추는 모습. 주산 세종뉴스 사진.


공동체문화라 할 수 있는 골목축제가 자율적으로 열리고 아이들 글쓰기 교실이 열리고 마을도서관까지 만들어졌다. 활기가 생기가 생겨난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지금은 아주 잘 팔리기를 바란다. 물론 이 책이 전혀 팔리지 않는 때가 아주 서둘러 오기도 함께 바란다. 지금 잘 팔리기를 바라는 것보다 100배 1000배도 더 절실하고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란다. 

끄트머리에는 '잘못된 개발 사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풀뿌리 운동 메뉴얼'이 붙어 있다. 5년 투쟁의 교훈이랄 수 있겠다. 강수돌은 고려대 세종캠퍼스 교수로 있던 2005년 6월 신안1리 이장으로 선출돼 지금껏 이장 노릇을 하고 있다.

(투쟁 과정에서 이장이 대학교수라서 득을 본 면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결정적인 것이거나 본질은 아니었다고 생각이 들고 그것이 마을 주민들의 운동을 깎아내릴 사유는 못 된다고 본다.)

김훤주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마을혁명 - 10점
강수돌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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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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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산사람 강수돌이장 2010.06.09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다가, 강수돌교수이장이 마산사람이라는 거 아닙니까?

    1961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브레멘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지요.

    강이장이 전이장에 폭행당한 사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진 참 잘 골랐습니다. 사실은 실명할 수도 있었던 매우 위험했던 일이었지만. 저 모습은 마산에서 수녀님들에게까지 말하기 조차 악독한 패악질을 했던 인간들이 다시 생각나게합니다.

    부스러기나 줏어먹을, 또는 줏어먹지도,구경도 못할 인간들이 그 부스러기에 발광하는 추악한 꼬라지, 그 혐오감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를 갖게 만듭니다.
    그들을 그 비인간,반인간의 나락으로 빠지게 만드는 그 악마적인 물신숭배가 지배하는 이 나라. 그래서 조그만 시골동네 강수돌이장의 힘든싸움은 아주 소중한 어떤 씨앗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6.10 1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맙습니다. 하신 말씀 다 공감합니다. ^.^

      강수돌이 마산 사람이라는 것이 본인에게는 몰라도 마산 사람 대부분에게는 그냥 무덤덤한 그런 것 아닐까요. ^.^

      강제규 영화 감독이 마산 출신이라는 것도 그러하듯이. 천상병 시인이 마산 출신이었음도 그러하듯이.

  2. 기업의 추악한 욕망 2010.06.09 11: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정만에 조선기자재공장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입지자체가 아닙니다.
    물량초과로 조선소부지가 부족한 현실이지만, 그 규모에 관계 없이 전과정에 대한 면밀한 조사.분석.판단을 통해 가장 합리적으로 투자해야 할 기업이 기본적인 입지타당성판단조차 없이 마구잡이로 땅만 확보해 놓고 본다는 것으로, 그것은 그들이 겉으로 내세운 목적을 스스로 노골적으로 부정해 보이는 꼴입니다. 내노라하고 시위를 한겁니다.

    도대체 수정만이 무엇으로 조선기자재공장 입지가 되겠습니까? 전문가들이 보면 땅값이 만만하다는 것 말고는 절대부적합 입니다. 매립.부지조성.공장설립.시설운용비.수송비.유지비 등등... 그 투입비용.운영유지비용을 따져 보면 바로 불가 결론 내고, 다른 땅을 알아보는 게 맞습니다. 애시당초 다른 목적이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마치 부동산중개업자 같은 역할을 한 마산시와 시장의 꼬라지는 기업의 시다바리 꼬라지 일 뿐이었습니다. 그 쯤 되면 으례히 돈을 받아 먹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게 세간의 상식이 돼 버린지 오래지요. 그런데도 앞장서서 주민들을 기만하고 심지어 겁박하기까지한 게 그들 입니다.

    강수돌이장의 신안마을 싸움은 정말 수정만 사태와 꼭 같습니다. 공동주택사업으로서 사업성이 없는 입지라는 것 부터해서 공공기관의 행우지까지 정말 똑 같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대기업이, 하다 안되면 자산 불린다 생각하고 땅을 사놓자 하는 것과, 주택업자가 당장은 돈줄을 만들내고 장차 개발이익을 노려보자는 것 그것 뿐 입니다.

    거기에 그런저런 패악질 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지요. 그렇게 조폭양아치들과 다름 없는 것들 입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6.10 1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각이 아주 정확하신 것 같습니다. ^.^

      그런데요, 하나 틀린 것이 있어요.

      맨 마지막인데요. "조폭 양아치들과 다름 없는 것들"이 아니고요, "조폭 양아치들보다 훨씬 더한 것들"이랍니다. 하하.

  3.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t__nil_login=myblog 실비단안개 2010.06.09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비록 유령아파트로 남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6.10 13: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책을 읽어보시면요(실비단안개님한테는 별 필요 없는 책이니까 사 보실 까닭이 없겠지만) 유령 아파트가 선물하는 미학이 몇몇 있다고 합니다.

      해질 녘 아파트 건물 사이로 석양이 비칠 때, 새벽 무렵 수탉 울음이 아파트 사이로 산울림처럼 번질 때 등등..... 푸활뢀뢀라.....

  4. blues 2010.06.09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교수 눈자위에 붉은 단풍이 들었네요.
    지역이기주의, 자본의 무자비함, 지자체의 담합, 지역주민 중 선봉대...
    통상 이런 구조로 전통적인 마을을 치고들어오고, 자연환경을 아작내고,
    원주민들은 주변부 빈민들로 전락시키고, 하나 더.. 공해에 시달리는 마을로 만들고,
    이게 한국 자본주의 발달사에서 나타난 전형적인 양상이었죠.

    실제 7~80년대 대공장 주변의 풍경이 모두 저렇게 황량했죠.
    소음, 분진, 폐수, 악취...
    그리고 삶에 찌든,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의 힘없는 어깨와 늦은 밤 신음과도 같은, 분노가 섞인 주정...

    이제는 비정규직으로 넘쳐나는 공장, 대공장, 지역에 별다른 이익을 던져주지 않는 자본의 탐욕... 이런 것들을 이제껏 지차체 단체장을 지냈던(*나라당) 사람들이 자본과 작당한 결과들이었죠.

  5. 섬돌 2010.06.09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생활터전을 지키려는 충정을 느낍니다. 진정 옳고 바른길 이라면 사력을 다해 지키는 게 마땅하겠지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마산 수정만과 관련한 이야기는 사실과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충분한 이해가 없으면서 어느 한쪽의 이야기에 치우친다면 지역을 지킨단는 미명하에 지역을 해치는 언로가 될 것입니다.

    마산과 충남 조치원이 같다는 말은 재고하시는 게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지역갈등을 해소하려는 진정성을 말씀하신다면 균형감각을 살리시기를...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10.06.10 14: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섬돌님 ^.^ 고맙습니다.

      제가 말한 "마산 수정만과 관련한 이야기" 가운데 "사실과 다른 면"이 있으면 마땅히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칠 테니까, 좀 바로 짚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6. Favicon of http://hbjunsa.idomin.com 늘축제였음 2010.06.12 07: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넘 날로 먹는 거 아님까? 강수돌 교수께 직접 전화해서리, 주간 세종뉴스 기자께 또 다시 직접 전화해 부탁드려서 사용 허락 받은 사진인데요. 이리 날로 먹으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