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아들 현석이 있습니다. 아들은 그림 관련 학과로 진학하고 싶어합니다. 지난해 여름방학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아들은 지난달 15일 즈음 다니던 학원을 한 달 쉬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무슨 흔들림이라도 생겼나 싶어 슬그머니 걱정이 됐습니다. 아니라 했습니다. 교과 성적을 먼저 올린 다음 그림판을 붙들고 싶다 했습니다. 며칠 전 모의 수능을 봤는데, 가고 싶은 대학 학과 합격을 안심해도 되는 성적은 아니었답니다.
지난해 11월 현석이 '자유'를 주제 삼아 그린 힙합 가수 스눕 독
다시 미술학원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인가 화요일인가에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학원 선생님이 그러는데요, 제 그림 실력이 늘었대요." 했습니다.
저는 제 하는 일에 매달려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로 "그래? (한 달 쉬었는데도) 어째서 그런 일이 생기지?" 했습니다. 아들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제가 머리 속으로 붓놀림이라든지 그리는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저는 그림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림 그리는 후배에게 물었더니 아들 현석이 같은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답니다. 그리지 않는 사이에 그리는 솜씨가 늘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들은 영어 공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싫어한다 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가고픈 대학 가는 데 필요하다 하니 그토록 외우기 싫어하던 영어 단어도 올 3월 들어 하루 30개 넘게씩 <꾸역꾸역> 머리에 집어넣었습니다.
현석 아주 어릴 적 벽에 그린 그림. 역동적이지 않나요?
제가 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면 아마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짐짓 바쁜 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따끔따끔한 무엇이 밀려 왔기 때문입니다.
아들 녀석 하고 싶지 않은 영어 공부 하느라 삐질거리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고픈 그리기를 참느라 어금니 앙다물고 애꿎은 손톱을 뜯으며, 머리로 붓 놀리는 연습을 하는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 날,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잘된 일이네." 말만 하고 말았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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