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아직도 '미망인'이라 하다니

김훤주 2008. 4. 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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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미망인이라는 말이 버젓이 쓰이고 있습니다. 이달 초 진주보훈지청에서 "전쟁미망인들을 모시고 봄나들이를 다녀왔다."는 보도자료를 내었습니다.

미망인은 아시는대로 여성을 차별하는 전제군주 시대 낱말입니다. 아직 죽지(亡) 않은(未) 사람(人)이라는 뜻입니다.

미망인은 순장(殉葬)의 잔재입니다. 절대적 지배자가 죽으면 옛날에는 그 사람이 죽어 저승에서도 이승에서와 마찬가지로 살 수 있도록 생전에 누리던 여럿을 같이 묻어줬습니다.

물건이면 부장(副葬)이 되고 사람이면 순장이 됐습니다. 부장 물품을 우리말로 '껴묻거리'(끼워 묻는 거리)라 하는데, 순장 당한 사람도 이를테면 이 '껴묻거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가 역사시대로 접어들어 사람 목숨 소중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면서 순장은 없어졌고, 대신 '미망인'만이 남았습니다.

옛날대로 순장하면 죽었어야 하는 목숨인데, 하는 뜻이 깔려 있습니다. 미망인은 죽지 못해 사는 목숨이었고, 죽은 남편을 버리고 혼자 살아 남은 죄인이었고, 따라서
모든 행동거지를 삼가고 조심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보훈청 같이, 앞선 시대 전쟁으로 이른바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이들의 유족을 모시고 보살피고는 일을 하는 기관에서는 절대 쓰지 말아야 할 낱말입니다.

미망인이 여성을 차별하고 깔보는 것임은, 이 낱말이 남편이 먼저 죽어 혼자 된 여성만 일컫지, 아내가 먼저 죽어 혼자가 된 남성은 일컫지 않는다는 데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 전몰군경 미망인회'라는 단체도 있기는 합니다. 이름 잘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일러 이리 차별하는 말을 쓰면, 자기를 낮추는 미덕이라 여겨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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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지음 | 한길사 펴냄
지난 천년 우리 겨레는 끊임없이 남의 나라 말과 글에 우리 말글을 빼앗기며 살아왔고, 지금은 온통 남의 말글의 홍수 속에 떠밀려가고 있는 판이다. 외국말과 외국말법에서 벗어나 우리 말을 살려 우리 말로써 민주주의를 창조하고 살아가야 할 것임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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