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타는 목마름으로>와 <사노라면>입니다. 이 노래들을 우리는 스무 살 시절 교정이나 막걸리집 후미진 데에서 숨죽여 배웠고 또 그렇게 불렀습니다. 잔뜩 인상을 쓰고서 비장하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말입니다.
전투경찰 중대 병력이 날마다 대학 교정에서 조회를 한 다음 쫙 깔렸고, '짭새'들은 사복 차림으로 바로 옆 자리에서 감시하는 눈길을 곧잘 던지던 시절 얘기입니다. 집회나 시위를 한 번 하려면 목숨을 걸거나 적어도 구속은 각오해야 했던 시절입니다.
제가 나중에 임의로 장난 삼아 '젊은 개량주의자의 노래'라고 이름을 붙인 <사노라면>도 저는 곧잘 흥얼거리지만, <타는 목마름으로>도 민주주의가 모자란다고 여겨질 때마다 지금껏 입에 넣고 웅얼거리는 노래입니다.
지난해 자동차를 타고 가다 김광석의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를 들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머리로 가사를 한참 따라가고 있는데 어디쯤인가에서 맞지 않는 대목이 나타났습니다. 2절 가운데 부분이었습니다.
2007년 1월 13일 마산 창동 김광석 추모공연(경남도민일보)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 내 발길도 너를 잊은 지 너무나 오래 /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
"살아오는 저 푸른 자유의 추억 / 되살아나는 끌려가는 벗들의 피 묻은 얼굴 /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에 / 신새벽에 남 몰래 쓴다(서툰 백묵 글씨로 쓴다) /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 / 만세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
저는 이 노래를 아주 잘 지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리 여깁니다. 당시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은, 관념적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었습니다. '끌려가는' '피 묻은 얼굴'은 역사가 아니라 일상이고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민주주의를 바라는사람들의 발버둥은 (적들!에게 들킬까 봐) '남 몰래' 하는 일이었고, 또 언제 밝아질는지 기약도 할 수 없는(그러나 언젠가는 밝아올) '신새벽'에 하는 일이었습니다. 김광석 가사처럼, '서툰'이라면 어딘가가 모자랍니다. 또, (쓰고 나서도 곧바로 지울 수 있는) '백묵 글씨'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서툰 백묵 글씨로 쓰는" 민주주의와 "신새벽에 남 몰래 쓰는" 민주주의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로 말미암아 목숨이 끝장나기도 했고 대부분은 일신의 자유를 빼앗겨야 했던 일을 그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광석의 노래처럼 정형화된 가사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사에 당시 노래를 불렀던 이들의 절실함이 더 많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물론 김광석을 깎아내리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이도 한 시대를 줏대있게 열심히 성실하게 산 사람입니다.)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적혀 있습니다.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와 "나무 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와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찰이 다시 정치 사찰을 하고 불법 집회와 시위를 엄단하겠다 하는 모양을 보면서, 국군기무사 정보를 사령관과 면대면을 통해 다달이 보고받겠다는 대통령 이명박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이 노래를 "신새벽에 남 몰래" 부를 수밖에 없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기우일 뿐이겠지만 말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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