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잘못 수입한 '지속 가능'이란 단어

김훤주 2008. 5. 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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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가 환경은 잘 지키는지 모르지만, 우리말은 그다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소벌'이라는 훌륭한 이름을 팽개쳐 버리고 '우포(牛浦)'(바로 그 이름난 창녕의 우포 말입니다.)라는 탁상 행정 용어를 골라잡은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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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달리 우리말의 특성을 잘 몰라서 그리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대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속 가능(한)'이라는 낱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속 가능(한)'은 곧잘 '개발' 또는 '발전'을 뒤에 달고 다니는데요, 이러면 우리말에서는 "개발 또는 발전이 지속 가능하다."고 읽히기 십상입니다.

실은 '자연이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말인데(엄밀하게 따지면 '가능(한)'도 문제가 있습니다.), 주어인 '자연이'가 생략되는 바람에 일어나는 착각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익히 써 온 말이라면 이런 착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살림하는 집'이라고 할 때, 누구든지 '집이 살림을 하는구나.' 생각하는 대신 '사람이 어떤 집에서 살림을 하는 모양이네'라 여길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이라는 낱말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늘 써오던 낱말이 아니라 물 건너 수입한 제품이다 보니 이리 됐습니다. 이리 되니까 자연 또는 생태계를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이 말의 원래 취지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 개발은 이제 많이 써서 그런 느낌이 좀 덜하지만, '지속 가능 교통 정책' 또는 '지속 가능 물관리 정책' 또는 '지속 가능한 지역 관광' 또는 '지속 가능 소비' 따위에 이르면 생태 개념은 저 멀리 사라지고 없습니다.

알맞추 가공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낱말의 수입업자 또는 유통업자라 할만한 환경단체가 그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속 가능(한)'이 영어로는 'sustainable'인데, 이를 뜻으로 옮기지 않고 곧이곧대로 옮기는 바람에 이처럼 괴물스러워졌다는 얘기입니다.

결론 삼아 말하자면 '지속 가능 개발(또는 발전)'을 쓰지 않는 대신에, sustainable에 담긴 뜻을 제대로 살리는 쪽으로 의역(意譯)을 해서 쓰자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려면 생략돼 있는 주어를 뚜렷하게 밝혀야 할 것입니다. 아마 생태(또는 자연) 지속형 개발이나 생태(또는 자연) 유지형 개발이 될 것입니다. 생태 유지형 지역 관광, 생태 지속형 물관리 따위로 쓰이겠지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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