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던 동네 창녕 신기동

제가 어릴 적 살던 창녕군 창녕읍 이야기입니다. 여덟 살에 다시 창녕 들어가 살던 동네는 신기동입니다. 태어난 데는 신기동 아래 창녕 성당 아래에 있는 송현동입니다. 태어난 뒤에는 곧바로 고향인 유어면 대대리에 가서 살다가, 함양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태어나신 동네인 대대에는 6.25 때 망가져 새로 지은 할아버지 집이 있습니다. 대대 앞에는 뻘밭(요즘으로 치면 습지라 일렀겠지요)을 개간한 너른 들판이 있고, 건너편에는 관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송현동은 군청과 경찰서 바로 왼쪽 옆에 있었고요 군청과 경찰서의 오른편 위쪽(그러니까 동남쪽) 동네가 바로 신기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군청 아래쪽 장터에서 군청까지 이르는 길은 중앙통이라고들 일렀습니다.

새마을운동 이후 우리말 이름 사라졌다

우리 어릴 때는 송현(松峴)동을 솔터라 했습니다. 신기(新基)동은 새터였으며 대대(大垈)는 한터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린 우리도 어른들 쓰는 말을 따라 하다 보니 순우리말을 그대로 썼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중국글말이 자리를 굳혔습니다.

어떻게 굳혔느냐 하면, 동네 들머리마다 동네 이름을 알리는 빗돌을 하나씩 세웠는데, 여기다 모조리 중국글말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이 때문에 토종 순우리말 이름이 더욱 손쉽게 사라지고 말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중국글말로 된 땅이름은 이를테면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관공서 따위에서는 땅이름을 중국글로 적었습니다. 보기를 들겠습니다. 지금 전국에 유명한 창녕 우포늪은 우리말로 '소벌'이라 합니다. 이것의 중국글 이름은 두 개 있는데, 뜻을 딴 이름은 알려진대로 우포이며, 소리를 딴 이름은 소맥(小麥=소+보리의 보ㄹ)입니다.
우리말 이름이 한 번 더 괴로움을 겪는 때는 바로 일제 강점 시절인 1914년 조선총독부가 행정구역 정비를 할 때입니다. 이 때는 우리말은 뜻이나 소리를 따라 중국글로 바뀌는 수준을 넘어서서, 커다란 왜곡을 당하기도 합니다. 보기를 들겠습니다.
전북 정읍에 이평(梨坪)면이 있습니다. 일대 평야를 이평평야라고 합니다. 일제 이전에는 배들이었습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동진강을 따라서, 여기까지 배가 들어왔다 해서 된 배들입니다. 이 배들을 일제 때 바꾼 이름이 바로 이평입니다. 이렇게 해서 '배들'은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배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쳇말로 일제는 이 이평으로 배들을 두 번 죽인 셈입니다.
(밑줄 친 글은 댓글을 달아주신 여러 지적을 받아들여 더한 부분입니다. 이 말이 없다보니 마치 새마을운동 때 정권이 정책적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오해할 여지를 남겼다는 얘기였습니다. 꼬집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런데 관동(冠洞)은 그대로 관동이라 했는데, 근처에 갓골이라는 데가 하나 더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커서 들으니 중심지에서 떨어져 가장자리 동네를 관동이라 한답니다. 처음에는 우리말로 '갓골'이라 했겠는데 중국글로 적다보니 가장자리를 뜻하는 갓과 머리에 쓰는 갓이 소리가 비슷하다고 갓 관(冠)자를 빌려쓴 셈이지요.

전국에 신기동(리)이 얼마나 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릴 적 지도에 빠져 논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서해 바닷가에서 마산이라는 땅이름을 찾아내곤 경남 마산이랑 같다고 신기해했습니다.

그래 이번에는 제 고향 마을 이름을 갖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한 번 해 봤습니다. 물론, 옛날 같은 신기함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관동(=갓골)은 한 번 찾아보니 경남 김해시 장유면과 경북 상주시 외서면과 인천시 중구와 전남 장성군 황룡면과 전남 장흥군 유치면 전남 해남군 해남읍과 전남 해남군 화산면과 충남 논산시 연산면과, 에 있었습니다.

대대(=한터)는 이보다 적었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과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과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과 경남 함양군 안의면과 울산시 울주군 웅촌면과 전남 순천시와 충북 단양군 가곡면에 있었습니다. 행정 동/리로 찾았으니까, 여기서 확인되지 않는 자연 마을 이름까지 치면 더 많을 것입니다.

신기(=새터)로 검색해 봤더니 희한하게도 강원도 삼척시에서 면(面)이 하나 찾아졌습니다. 신기면인데, 면 소재지가 있는 동네가 또 신기리더군요. 백과사전에는 70년 설치된 도계읍 신기출장소가 89년 신기면으로 승격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제 20년밖에 안 되는 새 터인 셈입니다.

새터는 이처럼 많았습니다. 경기도 안성시에는 미양면과 서운면에 신기리가 하나씩 있고 경남에서는 마산시 진동면과 산청군 차황면과 하동군 하동읍과 진주시 명석면에 신기리, 양산시에는 신기동이 있습니다.

경북에도 구미시 선산읍 영덕군 창수면과 청송군 파천면에 신기리, 문경시와 영천시에 신기동이 있습니다. 대구에는 신기리와 신기동이 달성군 현풍면과 동구에도 하나씩 있습니다.

전남에도 새터는 12개나 있고 전북과 충남과 충북에서도 제각각 6개와 3개와 7개가 찾겼습니다. 덧붙이자면,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신설(新設)동도 신기동이랑 같은 이름입니다. 새로 베풀어 만들었다는 말인데, 대신 역사는 가장 오래 됐을 것입니다. 일제 이전부터 그랬다니까요.

송현(=솔터 또는 솔티<고개>)도 꽤 됩니다. 저도 처음 알았는데, 서울 한복판 종로에도 있고 인천과 대구와 울산에도 하나씩 있습니다. 전남에 넷이고 강원도가 셋, 경기도와 경남과 전북이 둘씩이고 경북과 충남과 충북은 하나씩 있습니다.

중앙동은 왜 중앙동이지?

마지막으로 중앙동. 중앙동은 보통 고을에서 으뜸가는 관공서가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가 있는 마산도 시청이 중앙동3가에 있습니다. 대충 보니까 강원도 속초도 시청이 중앙동에 있고 경기도 과천은 시청뿐 아니라 정부종합청사까지 중앙동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동네 이름이 중앙동이라 해도 해당 시나 군의 한가운데 있지는 않습니다. 원래는 한가운데 있었겠지만 시나 군이 영역을 어느 쪽으로 넓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됩니다. 마산은 시내 개념으로 보면 중앙동이 서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산 중앙동도 한가운데가 아닙니다. 조금 남서쪽이지요. 서쪽으로도 영토를 넓혔지만, 북동쪽으로 더 많이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부산은 시청을 아예 옮겼습니다. 연제구 연산동으로 말입니다. 새로 쓰는 주소는 '연제구 중앙로 2001(연산동)', 이리 돼 있습니다.  시청 일대를 중앙통이라 하는 잔재는 여기서도 그대로 확인되는군요.

지금이라도 순우리말 이름을 되살리면

어쨌거나 저는 한글 이름이 좋습니다. 지금이라도 중국글을 걷어내고 우리 한글로 마을 이름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뜻도 쉬 통합니다. 중국글은 뜻글자지만 우리 말글 체계로는 소리만 들어올 수밖에 없으니까 중국글을 모르면 도통 알기 어렵게 돼 버립니다.

제 고향 한터에 닿아 있는 소벌-그 이름난 창녕 우포(牛浦)-을 건너가면 ‘소목’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것을 중국글 목덜미 항(項)을 써서 ‘우항(牛項)’이라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습지에서 시 쓰는 유행이 생겨서, 다른 지역 한 유명한 시인이 여기 와 시를 쓰며 소목=우항을 일러 ‘우황’이라 쓰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슨 ‘우황’청심환도 아니고 참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항이라 하지 않고 소목이라 했다면 이런 일은 아예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글로 먹고 산다는 시인조차 무슨 말인지 모를 수밖에 없도록 생겨먹은 땅이름이다 보니까 이처럼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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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부 지음 | 집문당 펴냄
국토개발의 현장체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땅이름에 관해 연구한 저서. 땅이름의 특성, 땅이름의 분류와 지명어의 소재,땅이름의 어원과 변천,인물과 땅이름 등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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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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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쯔.. 2008.05.04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죄없는 새마을운동 탓하지 말고 그럴 시간 있으면 이름부터 한글로 개명하고 스스로 한글사용 권장운동이나 벌일 일입니다. 공연히 죄없는 새마을운동 끌어들여 왜곡해서 시선이나 집중시키는데 정신 쏟지 말고요.

  3. 글지우세요 2008.05.04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일본넘들이 자기들입맛에 맞게 한문표기한겁니다. 기자는 알지도 못하면서 새마을을 팔아 메인으로 올리다니 .. 다음운영자가 좌파라는건 알지만 진실을 왜곡하면 안되죠.
    새마을때 아래글들과 같이 한문배척운동도 함께 햇는데 웃기는 글이네.. 기자가 알아보지도 않고 글을쓴 소설을 쓰다니 기자 자격이 있나? 이러니 지방지 기자소리 듣고 지역 거머리 소리듣지

    • 바람칼 2008.05.04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을 읽고, 댓글보다가 댁이 참 한심해서...
      '좌파'니, '꼴통'이니 하는 단어들을 장전해놓고,
      아무데나 어거지로 갖다붙이는 개념없는 족속중의 하나인 당신이...

      광우병 파동을 물타기위해 메인에 올린거라는 의견도 있는데,
      그럼 그런글에 태클거는 당신은 현정부를 비판하는 노빠인가?
      그럼 당연히 당신도 좌파겠네.
      생각좀 하고 글을 쓰시게.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05.04 1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주신 댓글 읽으며 인격 수양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

  4. 글쓰신님... 2008.05.04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예전부터 해왔던 생각이라 이 기사를 읽고 너무 동감하였습니다.
    대전이 아니라 한밭. 광주가 아니라 빛고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입니까.?
    님께서 앞장서서 각 지명의 본디 우리말 이름 찾기 운동을 벌여 주세요...
    님께서 단체를 만드신다면 회원이라도 가입을 하겠씁니다.
    그리고 글지우세요 라는 이름의 분...조금의 잘못 가지고 너무 호도하시네요...
    물론 님이 말한게 정말인지 검증도 해봐야 하겠지만 말이죠?

    • doribi 2008.05.04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국여지승람 “東國與地勝覽”의 기록에 의하면 성종“成宗”17. 1486년간 제17권 공주(公州牧)조에 유포천(柳浦川) 유성현 동쪽 20리에있고 근원은 전라도 진산현(珍山縣) 지경에서 발하였다 라고 한다. 또한 성천(省川)유성현 동쪽 7리에있는데 그근원이 연산 진산 두고을 지경에서 발하여 합류하여 짐잠현(鎭岑縣) 을지나 유성현 동쪽에 이르러 省川이라고 한다 대전천(大田川)은 유성현 동쪽 25리에 있으며 전라도 금산군(錦山郡) 경게에서 나왔다 이상의 세 냇물이 합류하여 회덕현의 甲川이 된다 . 위 자료에서 확인하는 大田川은 대전의 복판이나 주변에이르는 하천이였기 때문에 지어진 “땅”이름인 것이다 따라서 이 大田川은 “땅이름 大田의 존재(存在)를 알려주는 최초(最初)의 증거(證據)가 된다. 한자지명(漢子地名) 동국여지승람 보다 약200여년 뒤에 기록된 문헌에 대전의 漢字地名이 귀중하게 나타난다 송서속습유(宋書續拾遺) 부록 2권 초산익기(楚山日記)에 나타나는 대전이 이고장의 한자지명을 確認하는데 소중한 資料가된다 대전은 앞에서 제시한 고종실록 (高宗實錄)의 1894년조와 1899년조에도 나타나며 순종실록(純宗實錄)의 1909년 조에도 나타날뿐아니라 그이전에도 동국여지승람 (1486)년부터 “500여년”이나 끊임없이 存續 하여왔다. 그러므로 태전(한밭)이 대전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5. 한글 2008.05.04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검바위골이 검은 바위라는 의미의 흑석동으로 바뀌었다죠. 무조건 한자어투로 바꾸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6. 은영 2008.05.04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름 정말 이쁘네요 ^^ 역시 한글이름은 이쁘고 향기가 느껴져요~

  7. 대전사람 2008.05.04 1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새마을 운동 이전부터 "대전"사람이었으며,
    연세대학교는 새마을운동 이전부터 "신촌"이었지요.
    저기 자료사진에 나온 내고향 공주 신기리는 새마을 운동 훨씬전부터 새터가 아닌 '신기'리였으므로
    이 기자분이 정말 어릴 때 기억을 얼마나 제대로 살려서 이 글을 쓰셨는지 어이가 없네요.
    일본에는 한글이 없으니 일본사람이 통치하던 강제점령기에 일본어로 쓰이는 한자로 바꿨던 것은 너무 뻔한 스토리인데 이토록 모른단 말입니까?
    게시판 관리자는 이런 호도성 글을 메인으로 올리고 뭘 기대하는 겁니까?
    검증도 없고, 사실도 아니고 볼거리라고 해서 메인이라니??
    지극히 실망입니다.

  8. 말말말 2008.05.04 1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발 이런 글로 혹세무민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자는 정음이 만들어지기 훨신 전 부터 조상들이 사용해온 우리글입니다.

    한자가 중국글자이고 따라서 쓰면 안된다면

    조선이나 고려도 한자어인데 조선이나 고려는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인가요?

    세종대왕께서 정음을 만드신 것은 한자를 대신해서 쓰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한자를 씀에 있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한자의 소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제발 바로 알고 말하면 좋겠네요!!

    한자말과 토박이말을 조화롭게 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 바람칼 2008.05.04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글은 한자의 부가 되는 글자가 아닌,
      한민족의 주가 되는 글자입니다.

      혹세무민이라는 표현은 글쓴분이 아닌 본인에게 하는것이 더 좋겠네요.

    • Favicon of http://cestbeau.tistory.com 2008.05.04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자가 조상들이 사용해온 우리글이라고요? 잘못된 지적이십니다. 애초부터 우리가 사용했던 말에 대응할만한 글자가 없었기에 한자를 사용한 것이죠;
      한글은 한자를 보완하기 위한 글자도 아니고, 한자의 소리를 나타내기 위한 글자도 아닙니다. 우리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우리글입니다.

  9. 키리오 2008.05.04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글이라기보단 그냥 한자식이라는게 맞겠죠 한글이름이 아닌 우리말 이름이 맞습니다
    (한글은 말이 아니거든요 글이지 그럼 세종에 한글만들기 전엔 우린 말도 없었다? 는 아니자나요?)

  10. 2008.05.04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마을 운동까지 폄하하는 자들이 나오는군 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11. doribi 2008.05.04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상하네요.. 내가 알기론 새마을 운동 이전에도 이미 마을 이름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었는데... 다만 예나 지금이나 주민들은 자연지명을 병행해서 부르죠. 석밭탱이, 잿골, 점말...이런 표현들은 아직도 쓰죠. 자꾸 잊혀는 지지만 ... 새마을 운동이 우리마을 이름을 쫒아내었다는 것은 잘못된 지식으로 혹세무민하는것입니다. 님들 집안에 새마을운동 이전 집문서나 서류등을 보세요. 이미 한자지명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05.04 15: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으신 지적입니다.

      다만 전체 글 내용을 풀어나가는 데에 별로 필요가 없어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지적을 받고, 그래서 조금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해당 부분에 내용을 덧달아 놓았습니다. 봐 주시기 바랍니다.

  12. Favicon of http://blog.empas.com/mumakr 국민 2008.05.04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자로 쓸수없는 말만우리말이라는 해괴한논리는이제사라져야 한다.
    李舜臣장군은 매국노나 중국사람이라서 한문으로일기를썼나.
    한문은 우리의 글이며우리조상의언어다.
    미국사람에게서 인디언말만미국말이 아니고
    유럽인종 사람은 영어가 자기조상의 말이다.
    용모차이가 크지 않다고 속이려 들지 말아야 한다.

  13. 아닌데 2008.05.04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마을운동으로 바뀐게 아니라..일제시대때 바뀐건데..이분 잘모르게 계시네요....잘못된 지식을 이렇게 떳떳하게 전파하시네...ㅎㅎ

  14. 보리수 2008.05.04 13: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마을 운동을 폄하하려는 의도의 글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대하여 너무 모르고 계시군요. 한자를 중국글, 중국글 하였는데....한자는 중국글이 아니라 동이족이 주가 되어 만들어진 글입니다. 우리도 동이족이었습니다. 그러니 한자도 우리글입니다. 우리는 두가지 글을 지닌 민족이 됩니다. 새마을 우동을 그기다 갖다붙이면 안되겠지요? 새마을 운동은 우리나라를 빛낸 세계적인 역사로 자리잡았습니다. 세계에 유일하게 자랑할 수 있는 대민족 문화운동이니 마음껏 자랑해도 됩니다.

  15. 생각이 짧으시네요~ 2008.05.04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우리나라의 말은 70%이상이 한자어로 구성되어있습니다~훈민정음창제전부터 향찰과 이두를 이용한 한자의 훈과 뜻으로 글을 표기했습니다.또한 현재 동사무소를 주민자치센터라고 어이없이 바꾸어버려 크나큰 혼란이 초래되었는데 대다수로 한자표기로 되어있는 지역명칭을 고유한글로 바꾸게 되면 크나큰 재정손실은 물론이고 국가적 대혼란이 초래될수도 있습니다~그리고 새마을 운동같은 경우는 동남아나 개발도상국에서도 벤치마킹하는 성공적 사례중 하나입니다~60~70년대 미국이 우리나라에 적용한 발전행정론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고 있습니다~많은 분들이 글을 보고 있으니 제대로 된 지식을 갖고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김훤주 2008.05.04 15: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목 말고는, 새마을운동에 대해 특히 그 핵심에 대해서는, 그리 말하지 않은 편인데요.

      강제 국민 동원 체제라는 면에서 저는 새마을운동을 나쁘게 봅니다만.

    • 김성태 2008.05.05 0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쓴이의 의도는 좋은 우리말 이름이 한자로 옮겨지면서 전혀 엉뚱하고 그리 친숙하지도 않게 변한 것을 안타까워 한다는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과 새마을 운동과는 별로 연관성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만큼 댓글이 올라왔고 본인도 그걸 일부 인정한 바인데, 어째서 제목은 아직도 새마을 운동이 동네이름을 바꿨다고 단정하고 있는 건지요? 여전히 그래야 많은 이들을 낚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16. Favicon of http://ㅇㄴㅁㄹ.ㅇㄴㄹ 민족주의자 2008.05.04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재 이시점에서 친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며, 독재자가 칭송된 마당에... 제가 아는 박정희에 대해 한글자 써보겠습니다. 저는 올해 21살입니다.. 그렇기에 60~70년대 유신시대도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라는 과목을 좋아했고 우리 사회의 정치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나름 관심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일단 박정희 업적 자체를 전면 부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개발도상국에서는 독재시기를 필히 거쳐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대부분의 나라가 그런건 아니지만..
    516쿠데타로 군정을 실시한 박정희는 69년 김대중과의 선거에서 승리하죠.. 솔직히 이전까지는 영호남 갈등은 거의 없었습니다... 인구도 오늘날처럼 영남이 압도적으로 많은게 아니라 영남과 호남의 인구가 비슷할 정도였죠(하지만 6.25사변때문에 부산을 중심으로 인구가 몰린건 사실)
    69년 선거에 승리한 이유가 바로 박정희가 농민우대정책을 실시했기때문이죠,..(물론 이것도 표리부동의 정책, 즉 산업화 근대화라는 면목으로 이촌향도가 일어나고 도시화가 급진전되는 시기에 ..정권 연장을 목표로하는 정책이라고나 할까?)
    호남은 지리적으로 평야가 많고 농민층이 상당히 많았죠... 경동성 지역인 한반도에서 호남평야는 지리적으로 영남의 어느 평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름지고 넓죠...
    그렇기 때문에 호남출신의 김대중을 이기기 위해서는 농민층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했죠..
    농민의 고리대를 없애주겠다.. 농업진흥책을 실시하겠다등 정책을 내놓았고 그것이 먹혀들어갔던거죠
    선거에서 이긴뒤 박정희는 온갖술수로 영남과 호남의 갈등을 일으킵니다 대표적 예로 "단결하라 백제인이여"등... 영남 지역을 위주로 낭설을 퍼뜨립니다...
    대략 1970년부터 새마을 운동이라는 운동을 실시하죠, 지붕을 개량한다거나 도로등 농촌은 변화의 급물살을 탑니다...(솔직히 지붕만 개량했지... 실상은 변화된건 없죠... 농가소득이 증가한단거나 농민의 생활이 향상된다거나 하는... 그렇게 되었다면 굳이 이촌향도를 발생 하겠습니까?)
    72년 유신을 실시하며 "국가원수모독죄"등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정책을 실시하죠.. 물론 그 전에도 각종 탄압이 있었지만.. 경부축 중심의 발전을 실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호남과 영남 더 나아가 충청까지 소외감을 받습니다... 가난한 호남사람들이 이때 많이 상경하죠. 가령 오늘날의 성남시의 이주민의 상당수가 호남출신이죠..(이건 들은바)
    결론은 우리민족이 진정 강대국으로부터 자립하고 세계 최강국, 민족의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어두운 흔적(친일파 미청산, 독재군림 등)을 교훈삼아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정부에서는 과거는 과거일뿐 우리가 용서하지 않느냐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옛부터 조선민족은 限의 민족이라 했습니다... 중국에 억압받으며 일본에 침략받은 모습은 오늘이나 예나 비슷합니다.. 저는 우리민족이 옛날만큼 강대국은 아니어도(고조선 고구려는 강대국이었죠..) 민족적 자존심, 국가정체성을 가진 민족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길어지네요.. 그렇지만 정말 속좁은 사람들이 이땅에서 없어지는 날을 기대하며 이만 말을 줄이겠습니다...

    • 지역갈등 2008.05.04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박정희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거에는 학계에서도 약간논란이 있다고 하더군요.
      정치적 압력인지 실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한세대가 교체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리라 봅니다.
      어떻게 보면 비극적이지만 또 희망적인것은 지금 20대부터는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는사람이 더 이상한 취급을 받고있으니 희망적이라고 봐도 되겠죠.

    • 김성태 2008.05.05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이를 생각할 때 제법 많은 정보를 접했군요.
      그러나 그 정보들이 제대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주장을 드러내기 편하게 엮어서 정리했네요.
      역사는 그렇게 꿰어맞추기로 정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꿰어맞추다가 잘 이어지지 않을 때는 틀린 기록도 여기에 함께 넣어서 흐름을 연결시키는 것이 대표적인 역사의 호도인데 ... 이런 것은 아전인수에 해당합니다.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은 69년 농민우대정책으로 김대중을 이긴게 아닙니다. 당의 깃발에 농민의 상징인 황소가 그려진 건 그 때부터 그려넣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농민 우대정책을 편다고 승리를 했다면 정말 선거가 제대로 치러진 거겠지만 ... 승리의 주요인은 부정선거였음을 못보시고 무슨 그럴듯한 역사타령을 늘어놓으시는 건지. 성남시의 이주민은 전라도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 청계천, 상계동 사람들이랍니다.

    • 경제는 정치와 다르다 2008.05.05 0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시각에서 박통시절의 경제를 평가할 수도 있읍니다. 경부축이 형성된 것은 그 당시 국제적인 상황이 북한과 서쪽 중공으로는 무역이 일어날 수 없기에 당시 가장 경공업이 발달한 수도권 지역의 물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어쩔수없이 고속도로를 놓아야했으며 그 종점이 부산이었던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시내버스나 고속버스) 시점과 종점부터 발전을 하고 중간 경유지가 그 다음에 발전하는 법입니다.경부축을 중심으로 한 경제가 살아나기에 특히 호남 지역 사람들이 인천, 부산,대구, 대전 지역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1,2,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할 당시에는 정책적 배경으로 미국(수출의 대부분)을 향하여 가장 값싼 비용(수출을 하기 위해서)이 드는 곳을 선택하다보니 부산을 중심으로한 컨테이너 부두를 발전시킨 것이죠, 반면에 4차 경제 개발은 5개년이 아니라 10년 단위로 계획을 짰죠, 그이유는 중국이 개방하고, 북한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줄 모르기에 그에 대비하여 신축적인 경제개발 계획을 짠 것입니다. 그래서 서해안 개발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 DJ가 이룬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분때문에 더욱 가속시킬 수는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이미 국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경제인(학자,정책담당자,정치인 등등)들은 소리없이 준비해왔고 앞으로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앞서서 소리 내지 않은다고 할 일은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는 5년이면 끝나지만 이나라의 경제발전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하며, 계속될 것입니다. 앞을 내다보는 정책과 기다리며 지켜봐주는 미덕(?)도 필요할 때라고 봅니다

  17. dd 2008.05.04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재자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찬양하는 자들이 있다니!!

    아 싫다.. 언제쯤 정신차릴려고

    • 박정희 독재자이다. 2008.05.04 2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만 우리 밥 먹게 해준 사람도 박정희다.
      그는 우리 나라의 민주화의 역풍을 주도 한 사람이지만,
      우리 나라 경제 발전의 토대를 닦은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이렇게 정의 내리면 될 듯.

    • 새마을 2009.04.04 2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밥은 어디로 먹나.

  18. 과객 2008.05.04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ㅉㅉ, 미치겠다
    노무현 시대가 사람들을 멍청이로 만든거 같다
    우물안 개구리들이 아닐 수 없다
    한자와 한글의 상관관계와 역학을 제대로 이야기 할려면
    천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새마을 운동이라니, 새마을 운동은 3이여 년 전이다,
    천년과 30년은 노무현의 역사 인식만큼이나 얄팍한 수준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이런 글을 쓰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19. 이승준 2008.05.04 2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비슷한 생각에 안타까운 적이 많습니다. 시작이 일제시대건, 새마을 운동이건간에 글쓴이의 취지는 순우리말 지명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더라면 지금쯤 더 빛을 발했을 것이라는 것이겠죠.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이 많다는 것에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 사람이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언젠가 바뀌겠죠.

  20. 바른소리 2008.05.05 0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못 알고 계십니다
    지금 한자라 일컫는 글자는 진서라고 하며 본래부터 우리의 것입니다. 그런데 위대하신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한글전용 운동을 하면서 한자는 중국 것이니 사용하지 말자고 하여 결과적으로 중국에 넘겨줘버린 것입니다. 중국은 너무나도 좋아서 날뛰었겠죠? 유네스코 유산등....!
    아주 옛날에 단군께서 대룩을 통치하셨고 그때도 진서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진서가 우리글이 아니라는 겁니까 늦었지만 우리것을 되찾고 가꾸어야 합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가꾸어지지 않습니다.

  21. 둘둘말이 2008.05.18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0년대 초까지만해도 내가 자랐던 영남에선 마을 이름이 전부 우리말이었습니다.
    가끔 혼용하는 사람이 있긴 했었죠. 우편주소에 한문을 즐겨하는 사람조차
    마을 이름은 우리말로 썻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동네도 당연히 새터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고 지금은 완전히 "신기'로 정착되었죠.
    조그만 20호 미만의 마을은 전부 우리말이었습니다.

    "두루미" "싹실" 등...

    새마을 운동으로 다리를 시멘트로 만들면서 다리 이름도 한자식 표기로 바뀌었죠.
    서낭당이나 벅구(풍물)같은 것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당시 70년대만해도 관광버스엔 장고, 북 등을 싣고 다닐만큼 친근한 악기였지만
    퇴패, 음주가무, 소란의 주법으로 몰려 단속대상이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