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팔공산 단풍을 보고 떠오른 사람들

기록하는 사람 2009. 11. 1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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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모든 길이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는 데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팔공산의 단풍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관련 글 : 천년 고찰의 시멘트길, 누굴 위한 것일까?)

그것만으로도 동화사를 찾은 보람은 있었다는 생각이다. 팔공산은 특히 한국전쟁이 끝난 후 가장 마지막까지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하준수(일명 남도부)가 활동하던 산이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당시 빨치산은 대한민국에는 토벌의 대상이었고, 자신들을 파견한 북한으로부터는 끝내 버림을 받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남과 북, 어디에서도 역사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 역시 전쟁이 끝난 후에도 1954년까지 토벌군을 피해 산속을 헤메는 동안 여러 번 단풍으로 붉게 물든 산하를 보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55년이 지난 지금, 팔공산은 말이 없다.

55년 전 마지막 빨치산들이 헤메고 다녔을 팔공산.

동화사 뒤편으로 팔공산의 능선이 펼쳐져 보인다.

팔공산은 말이 없다.


※ 한국 최초이자, 최후의 파르티잔 하준수에 대해서는 '폐허로 방치된 한 혁명가의 생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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