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상림, 걷기 좋은 단풍들
날씨가 살짝 추워졌다가 풀렸습니다. 세상이 살짝 움츠렸다가 놓였습니다. 작으나마 호들갑을 떨었다고 여겨 부끄러운 탓인지, 세상이 좀더 붉으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다시 추워졌으니, 세월은 좀더 많이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11월이 다 가도록 세상은 움츠렸다가 놓였다가를 되풀이하겠지 싶습니다.
기지개를 켜고 벌떡벌떡 일어나 펄떡펄떡 뛰는 것만이 생명이라고 여긴 적이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마아아아아아아아악 뻗어나가고 넘쳐나가는 것만 생명이라 여겼다는 얘기입니다. 정말 부끄럽게도, 그 때는 부끄러움조차 몰랐지 싶습니다.
세 해 전 봄에, 뒷동산에 갔다가 나무에 물 오르는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크지도 않은 조그만 나무가 통째로 힘껏 물을 빨아올리는데, 가지에서는 오히려 물이 넘칠 정도여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와! 힘차구나! 참으로 힘찬 힘이구나! 감탄을 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나무에서 잎이 지는 것도 생명-생명의 작용임을 알아차려 버렸답니다.(건방지지요?) 겨울 추위를 견디려면, 나무 몸통 따뜻한 기운을 잃게 하는 이파리들은 저런 식으로 떨어내어 정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겨울 추위를 견디려면, 몸통에 있는 물기를 바짝 말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얼어터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봄에 나무가 스스로를 힘차게 하는 것도 생명이고 생명의 작용이지만, 가을에 같은 나무가 스스로를 힘차지 않게 하는 것도 생명이고 생명의 작용이랍니다. 가을 숲 햇살은 나뭇가지나 이파리에 걸려 잘게 쪼개지고 있습니다.
단풍과 낙엽과 사람. 곰곰 들여다보면 따사로운 볕도 담겨 있습니다. 따뜻한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답니다.
힘차지 않게 하는 힘. 가을 숲에 들어가면 힘차지 않게 하는 힘들이 보입니다. 그런 가운데 무심한 이들이 걸음을 옮기며 낙엽을 쓸고 낙엽과 단풍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어 저토록 힘들여 힘을 빼는 힘들을 추억 속 한 장면으로 붙박아 놓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단풍은 결핍 그 자체일 따름입니다. 엽록소가 줄어들어 잎이 파랗게 보이지 않고 갖은 다른 색깔을 띠는 것입니다. 물기가 줄어들어 잎이 메말라 나무에 붙어 있다가 저렇게 아쉬운 동작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데도 단풍을 일러 빨갛게 물들었다거나, 노랗게 물들었다고 합니다. 기막힌 반어법의 탄생입니다. 결핍을 풍요로 보는, 역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누군가 결핍을 풍요로 여기면, 예전에는 뭘 몰라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한다고 같잖게 여기기도 했었지요. 단풍의 풍요는 낙엽의 풍요로 이어집니다. 둘 다 결핍의 풍요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결핍을 풍요로 뒤집어 여긴다고 뭐 큰 일이 터지나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따지고 보면 풍요나 결핍이나 다르지 않고 같잖아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보느냐는 차이일 뿐이잖아요. 비어 있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결핍이 바로 풍요이고, 들어 앉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풍요가 바로 결핍이잖아요?
게다가, 결핍을 풍요로 여기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것이 바로 인생이지 않을까요? 결핍을 결핍으로 직시(直視)해 버리면 견딜 수 없도록 참담해져 버리지 않을까요. 못남을 못남으로 직시해 버리면 하루하루 살아가기, 또는 하루하루 죽어가기가 너무 힘들어져 버릴 것 같아서요.
사람들이 단풍놀이를 즐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환상에 잠기고 싶은 것입지요. 하늘하늘 흔들리는 색깔에 취해 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구르는 낙엽에 쓸쓸해 하는 한편으로, 낙엽을 밟는 발길로 느끼는 푸근함에 환장해 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낙엽 덕분에 볕이 참 환합니다.
함양 상림. 덧없이 부질없이 대책없이, 하루종일 낙엽을 밟고 돌아다니며 단풍에 눈길을 던질 수 있는 곳입니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새 소리가 쉬지 않고 이어지는 곳입니다. 운수 좋으면 구멍 파 벌레 잡아먹느라 요란하게 소리내는 머리 붉은 딱따구리도 만날 수 있으며, 다람쥐 정도야 운수가 사납지만 않으면 누구나 쉽사리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함양(咸陽)은 말 그대로 다 볕입니다. 어떤 착한 사람은 상림 단풍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서, 가까이 잔디밭 그리고 멀리는 둘레를 휘감는 위천 맑은 물과 이제는 시들어 버린 연밭·무논에, 촘촘하게 내리꽂히는 햇볕을, 하염없이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며, 텅 비어 나가는 느낌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볕.
찾아가는 길은 이렇습니다. 통영~대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함양 나들목에서 내리면 그만입니다. 경남 마산에서 가는 길이거든 1시간 30분이면 족하답니다. 진주에서는 한 40분 걸린답니다. 상림 들머리에 주차장도 마련돼 있습니다. 꽤나 너르답니다. 상림은, 읍내 군청에서 별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자가용 자동차보다는 버스를 타는 편이 좋지요. 경남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면 아침 7시 14분 첫차부터 저녁 5시 10분 막차까지 한 시간마다 두세 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1만200원.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는 차편이 더 많습니다. 아침 6시 첫차부터 밤 9시 30분 막차까지 10~20분에 한 대씩 다닙니다. 6000원.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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