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기권한 이들을 욕하지 말라

김훤주 2008. 4. 9. 22:42
반응형

18대 총선 투표율이 전국 평균 46%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사상 ‘최악’이라고 합니다. 17대 총선 투표율 60.6%는 물론이고 가장 낮았던 16대 총선의 57.2%보다 낮습니다. 아마도 50% 이하 총선 투표율은 대한민국 역사 이래 처음입니다.(물론 저는 착실하게 투표를 했습니다만, 제 이웃에게도 투표하라 권했습니다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분석을 내놓을 것입니다. 정치 또는 정당 불신에서 공천 잘못된 문제, 선거 기간 짧은 문제, 쟁점 없었다는 문제, 미디어선거 문제에 더해, 청년층 성향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얘기들이 나올 것입니다.

투표 안 할 자유는엄연히 있다?

이런 가운데 기권한 사람들을 욕하는 얘기가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이미 많이 나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투표율이 낮아 손해를 봤다고 믿는, 한나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을 지지한 이들은 특히 더 열을 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기권은 욕할 일이 아니다, 그러니 욕하면 안 된다, 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투표하지 않은 일을 일컬어 기권(棄權=권리를 버림)이라 하는데, 그것이 과연 맞는 표현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도 저는 여깁니다.

까닭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는 투표하지 않을 자유(=권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투표하지 않아도 제재(벌금이나 과태료 물리기 또는 공무 담임권 같은 공민권 제한 따위)가 전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소극적' 인정이라 봐야 마땅합니다.

먼저 투표지에 ‘지지 후보 없음’ 공간을 마련하라

이렇게 투표 안 할 자유 또는 권리를 인정해 놓고, 그 자유를 행사했을 뿐인데도 그것을 욕한다면 지나칩니다. 헌법을 빌려 말하기가 허용된다면, 그리고 비유 차원에서 말씀드린다면, 이른바 과잉 금지의 원칙(헌법 제37조 2항)에 어긋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 투표하지 않는 이들이 가장 내세우는(적어도 겉으로는) 까닭이 ‘지지할 후보 또는 정당이 없다.’인데, 지금 투표지에는 이 의사를 표시할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원칙 차원에서 말씀드리자면, 지지할 후보나 정당이 없는데도, 제대로 된 투표지를 갖춰 놓지도 않고서, 무조건 투표소로 가서 무효표를 만들든지 하라는 얘기는 또 다른 억압이고 억지라 하겠습니다.

제 얘기는 이렇습니다. 먼저 투표지를 바꿔서 ‘지지 후보 없음’과 ‘지지 정당 없음’을 기표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투표를 통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른바 '무효'표와는 확실하게 구분되는, 따로 집계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해놓은 다음이라야, 투표하지 않은 인간들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불참하면 불이익을 줘야 한다

다음으로는 선거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불이익을 줘야 합니다. 벌금이나 과태료를 매기거나 취업 또는 사업을 하는 데서 손해를 보도록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만큼 잘못했으므로 이런 벌칙을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떠도는 얘기 가운데, 투표에 참여한 이에게 이른바 ‘인센티브’를 주자,가 있습니다만, 이번 총선에 선거관리위원회가 2000원 짜리 쿠폰을 돌렸는데도 투표율이 가장 낮은 데 견줘 볼 때, 효과 있는 수단이라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이렇게 했는데, 특정 선거구에서 ‘지지 후보 없음’이 1등을 차지하거나 비례대표 투표에서 ‘지지 정당 없음’이 (비례대표를 산출하는 최소 기준인) 3%를 넘으면 어떡하느냐는 물음이 성립될 수 있겠네요.

‘지지 후보 없음’이 1등을 차지하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경남도민일보 제공

원칙에 견줘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지지 후보 없음’이 1등을 한 선거구는 당선자를 내지 않으면 됩니다. 일단 그래 놓고, 나중에 때맞춰 재선거를 치르면 됩니다. 비용은 어떡하느냐고요? 해당 선거구 유권자들에게 ‘십시일반’으로 마련하라 하면 되지요.

단체장 중도 사퇴로 공석이 돼서 그에 따른 보궐선거를 해야 할 때, 이른바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사퇴한 단체장이 선거 비용을 모조리 물어야 한다는 얘기가 시민사회 한 구석에서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나름대로 타당성을 인정받는 줄 아는데요, 이와 완전히 같은 논리입니다.

그리고, ‘지지 정당 없음’이 3% 넘을 경우도, 그 비율만큼 비례 대표 국회의원을 뽑지 않으면 됩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뽑지 않은 비례 대표 국회의원을 뽑는 재선거를 나중에 치르거나, 아니면 국회의원 임기 4년을 그대로 비워놓고 가거나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도와 체제를 갖춰 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투표하지 않은 이들을 욕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지금 상태에서는, 그들을 욕해도 되는 합당한 근거가 없다고 저는 봅니다만, 다른 이들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어떤 민주주의인가(민주주의 총서6) 상세보기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펴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시! 민주화 20주년 맞이한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적 쟁점을 다룬「민주주의 총서」그 6번째 이야기.『어떤 민주주의인가』는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 왔던 세 명의 정치학자들이 만들어 낸 공동 작업이다. 각자 한 부씩을 책임지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해 다각도로 고찰한다. 특히 그 동안 저자들이 강조했던 '정치의 대중 참여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