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가장 싸다는 이마트에 속았다

김훤주 2008. 4. 1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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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는 바보가 아니다

저는 이 글을 저와 제 딸이 바보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씁니다. 이마트가 제품을 속여 팔았지만 저희가 끝까지 속지는 않았고 더욱이 '바보처럼' 참고 있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마트에서 기획한 상품인 이 <아쿠아 스타일>을 산 지 이제 열흘이 지나 보름이 다 돼 갑니다. 3월 31일, 우리 딸 현지는 수학여행을 준비하느라 창원 중앙동 이마트에 들렀다가 이것을 사 왔습니다.

현지 기억에 따르면, 500ml 한 병에 750원 했는데 오늘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650원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비싼 편입니다. 값도 문제이고 맛에 대한 표시도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과맛' 표시는 엉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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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맛'이라는 표시가 돼 있지 않았다면 우리 딸 현지가 사지 않았을 물건입니다. 현지가 사온 <아쿠아 스타일>이 열흘 지나도록 우리 집에서 '소비'되지 않고 남아 있는 까닭도 이와 관련돼 있습니다.

<아쿠아 스타일>에는, '사과향 함유'(왼쪽 아래)라는 표시와 '사과맛'(오른쪽 위)이라는 표시가 같이 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럴 때에는 사과맛도 나고 사과 향도 나리라 여기겠지요.

그러나 <아쿠아 스타일>에서는 사과향만 나지 사과맛은 전혀 나지 않습니다. 병에는, 사과 빛이 나도록, 연두색 비닐도 감겨 있습니다. 현지가 먹어보더니, "뭐야! 맹물이잖아. 냄새만 그럴 듯하고." 했습니다. 속은 셈입니다.

'APPLE FLAVOR'라고도 적혀 있는데, 여기 FLAVOR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향미(香味)입니다. 맛과 향 모두를 뜻한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마트는 이 FLAVOR를, 정확하게, 라기 보다는 헷갈리기 쉽도록 우리말로 옮긴 것 같습니다. 왜 이랬을지는, 아마도 저와 제 딸을 포함한 여러 분들이 짐작하는 그대로일 것입니다.

값도 비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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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 스타일> 원재료 표시.

값도 문제입니다. 작은 사안은 절대 아닙니다. <아쿠아 스타일> 원재료를 보면 정제수, 합성착향료(사과향 0.035%), 두 가지밖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그조차 조그맣고 흐릿하게 적혀 있어서 쳐다보자니 눈이 아팠습니다.)

정제수란, 무기물질을 포함한 모든 불순물을 없앤, 99.99% 순수한 물입니다. 약을 짓거나 할 때 쓰는 의료용품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정제수는 1000ml 한 병을 약국에서 1000원에 팝니다. 약국에 따라서는 800원 또는 심지어 700원에도 팔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약회사에서 나오는 원가는 분명히 더 쌀 것입니다.
코카콜라와 견줘보면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동네 가게에서 오늘 1.5l 짜리 코카콜라 한 병을 1400원 주고 샀는데, 그 원재료에도 정제수가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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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의 원재료 표시

콜라에는 <아쿠아 스타일>보다 더 많은 재료가 들어 있습니다. <아쿠아 스타일>에는 정제수 말고 합성착향료 하나밖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코카콜라에는 정제수 말고도 액상 과당, 탄산 가스, 카라멜 색소, 인산, 천연착향료, 천연카페인(향미증진제), 여섯 가지가 더 들어 있습니다.

물론 콜라에 든 이 잡다한 물질들은, 몸에 좋지는 않다지만, 비용 면에서 보자면 <아쿠아 스타일>보다 돈이 더 들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값을 1500ml로 환산해 볼 때, 하나밖에 더 들어가지 않은 <아쿠아 스타일>은 1950원인 반면 여섯 가지나 더 들어간 콜라는 1400원입니다.

아마 이마트 가서 코카콜라를 샀으면 더욱 쌌을 텐데, 어쨌든, 동네 가게에서 산 이 콜라 가격과 견줘 봐도 550원씩이나 차이가 납니다.

실수로? 아니면 일부러?

<아쿠아 스타일>은 그러니까, 값도 비싸고 맛도 엉터리로 표시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아쿠아 스타일>에 들어간 합성착향료 0.035%가 그만큼 비쌀까요? 1500ml로 0.035%를 환산하면 0.525ml가 되는데, 이것이 다른 성분보다 550원씩이나 더 할는지는, 글쎄요,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개연성들 가운데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하나는 실수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마트가 돌아가는 아주 촘촘할 시스템을 떠올려보면, 실수라 하기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아주 큽니다.

넘겨짚어도 된다면, '이마트가 가장 싸게 판다.'는 일반의 인식을 악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지 않겠나, 저는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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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에 덧붙입니다>>

몇몇 분께서 제가 쓴 앞글을 읽으시고는, 비교.대조 대상을 잘못 골랐다고들 하셨습니다. 원재료가 비슷하면 서로 견줘 볼 수 있겠다고 저는 여겼는데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먼저, 코카콜라 1.5l 들이를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코카콜라를 비교 대상으로 삼으려면 같은 500ml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아들었습니다. 코카콜라가 분량에 따라 달리 가격을 매기기 때문입니다. 기업으로서는 정책이라 하겠지만, 소비자 처지에서는 틀림없이 ‘왜곡’으로 보이겠다 싶은 내용입니다.

이마트에서는 코카콜라가 1.8l 들이는 1630원인 반면, 500ml 들이는 830원입니다. 콜라 분량은 3.6배 차이가 나지만, 값은 차이가 두 배도 되지 않습니다. 1.8l짜리는 100ml에 90.6원 치이지만 500ml짜리는 100ml 단가가 160원으로 76%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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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문제 제기한 <아쿠아 스타일>은, 이것과 견주면 절대 비싼 편이 아닙니다. 그 원인은 <아쿠아 스타일>이 싸기 때문이 아니고, 코카콜라 500ml짜리가 아주 비싸게 값이 매겨져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대신 <아쿠아 스타일>과 비교.대조하기 알맞은 상대를 같은 이마트 기획 상품 가운데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마트 콜라>였습니다. 코카콜라와 마찬가지로 원재료도 <아쿠아 스타일>과 겹치고, 규격도 500ml로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마트 콜라는, 500ml 짜리는 480원이고 1.5l짜리는 790원이었습니다. 500ml 들이를 기준으로 삼아 보면, 한 병에 650원 하는 <아쿠아 스타일>과는 170원 차이가 납니다.

저는 이 두 번째 글을, “값도 비싸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씁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크게 문제 삼고자 한 대목은, 앞글에서 밝혀 드렸듯이, 이마트가 자기네 기획 상품 <아쿠아 스타일>을 두고, 사과 맛이 전혀 나지 않는데도 사과 맛이 난다고 표시한 부분임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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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슬로>에 실렸던 글 가운데 추려 엮은 것으로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 문화에 맞선 '느리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다. 책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동시에 생물학적 다양성, 지역문화의 보호, 생명공학에 대한 입장 등 지난 수 년간 슬로푸드가 관심을 기울여온 주제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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