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쿠데타정권의 황당한 판결문 보셨습니까?

기록하는 사람 2009. 9. 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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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잡아 가둬놓고, 처벌위한 법률 만든 군사정권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2조 1항) 또한 '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3조 1항)

이런 대한민국에서 국군과 경찰에 의해 내 부모 형제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학살당했다. 언제, 어디서 왜 죽였는지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 숫자만 줄잡아 수십 만 명이다. 하지만 학살된 희생자의 유족들은 10년 동안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 학살자가 바로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승만이다.

10년 후 4·19혁명으로 학살자가 쫓겨났다. 그제서야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일부 유족회는 암매장된 유골을 발굴해 합동묘를 조성하기도 했다.

쿠데타정권 혁명검찰부의 공소장.

그러나 1년 후 5·16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군사정권은 유족회 간부들을 무조건 잡아들였다. 교원노조 간부들도 함께 붙들려 갔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도 이 무렵 잡혀갔다. 아무런 법률적 근거도 없었다. 일단 잡아 가둔 뒤,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1961년 6월22일 제정, 특수범죄처벌법)이라는 소급법을 만들었다.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처벌하면 안 된다는 헌법은 아예 무시됐다.

그 법은 입법 기관인 국회에서 만든 것도 아니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초헌법 기구를 만들어 거기서 맘대로 뚝딱 만든 법이었다. 더 황당한 건 이 법에 의해 유족회 간부들에게 사형·무기 등 징역형을 선고한 판결문이다.

"… 보련원(국민보도연맹원-기자 주) 및 국가보안법 기미결수의 피살은 불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의 충실한 국민이라고 할 수 없을진대 … 유족회의 성격과 그 활동결과에 대하여 북한괴뢰가 간접침략의 한 방안으로서 기대하는 그들의 동조자의 확대 및 조직강화 그 사상선전에 동조하는 행위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음에 …"

쉽게 말하면 판결의 요지는 '국가가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불법이 맞다. 그러나 그 불법학살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북괴에 동조하는 행위다'라는 뜻이다. 정말 세계적으로 길이길이 남길만한 희한한 판결문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그 판결을 내린 판사들의 이름을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재판장·심판관 김용국, 법무사·심판관 박용채, 심훈종, 이택돈, 최문기.

이들 판사들이 유족들에게 적용한 죄목은 특수범죄처벌법 제6조 '특수반국가 행위'였다. 이 조항은 "정당, 사회단체의 주요 간부의 지위에 있는 자로서 국가보안법 제1조에 규정된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그 단체나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 고무, 동조하거나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그 목적 수행을 위한 행위를 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었다.

불법으로 사람 죽여놓고, 진상규명 요구는 '이적'으로 몰아

이런 말도 안 되는 법과 재판에 의해 유죄 선고를 받은 유족회 간부들만 해도 전국적으로 수십 명이다. 특히 이들 중 대구의 이원식(대구유족회 대표위원) 씨는 사형, 마산의 노현섭(전국유족회장·마산유족회장) 씨와 대구·경북의 권중락(경북유족회 총무)·이삼근(성주유족회장) 씨는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또 김해 진영의 김영욱 씨(금창유족회 장의위원장)는 7년, 부산 동래유족회의 송철순(현재 생존)·김세룡 씨는 5년을 받았다. 동래유족회의 판결문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6·25동란시에 대한민국 군·경찰에 의해 작전상 처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좌익분자가 아니라는 근거없는 망언과 재판절차없는 사형집행이 부당하다는, 당시의 전국(戰國)을 망각한 편견에 사로잡혀 … 군관민의 이간을 책동하면 결국 반공체제가 균열되어 간접침략을 획책하는 북한괴뢰집단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면서도 … 국가의 안위 따위는 일절 불원하는 비국민적 사상의 불온분자이므로 피고인 김세룡, 동 송철순에게 각 징역 5년에 처한다."

웃기지 않는가? '재판절차 없는 사형집행이 부당하다'는 게 '편견'이란다. '처형된 사람들은 좌익분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근거없는 망언'이란다. 그러면 그들이 좌익분자였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학살된 민간인들을 가리켜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의 충실한 국민이라고 할 수 없을진대 애국적이고 조국과 민족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존재였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는 표현도 궁색하기 짝이 없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의 충실한 국민이라고 할 수 없는' 국민이라면 재판도 없이 그냥 쏴 죽여도 좋단 말인가.


게다가 5·16쿠데타 정권은 김해 진영 유족들이 암매장 유골을 찾아내 조성한 합동묘까지 파헤쳐 유골을 어디론가 유기시켜버렸다. 거창에서도 같은 짓을 저질렀다. 이른바 '부관참시'의 만행이다.


1960년 거창 신원면 학살희생자 유족들이 조성한 합동묘. 그러나 5.16쿠데타정권은 묘를 파헤치고 비석을 산산조각내버렸다.


이처럼 세계 사법 역사에 길이 남을 만행이 바로잡힐 수 있게 된 것은 노무현 정부 들어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진실화해위는 수많은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국가의 사과와 위령사업을 권고해왔다. 또한 2006년 11월 28일 박정희 쿠데타정권이 특수범죄처벌법에 의해 사형시킨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하고 법원의 재심을 권고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야 진실규명·명예회복 길 트이다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 결정문에서 "5·16 주도세력이 국가권력을 장악한 뒤 제정한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은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입법권을 부여하고, 헌법보다 상위의 효력을 있음을 규정하는 한편,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등을 제정한 것은 국민주권주의 및 입헌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용인될 수 없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또 "5·16 주도세력은 먼저 민족일보 관련자들을 체포·구금한 다음, 그들에게 적용될 소급입법을 만들어 기소와 재판절차를 거쳐 처벌하는 과정을 밟았다"며 "사장의 지위에서 게재한 민족일보의 논설 등을 정당의 주요간부 지위에서 게재한 것이며 그 내용이 북한을 고무·동조했다고 왜곡해 사형을 선고했고,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확인 과정에서 감형도 없이 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조용수 사장은 법원의 재심에서 무죄가 판결됨으로서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을 받았고, 대법원장이 공식 사과까지 했다.

그러나 같은 법에 따라 유죄 선고를 받고 옥고를 치렀던 민간인학살 유족회 사건은 아직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나와 있을 당시 집에서 찍은 노현섭 전국유족회장의 사진.

노현섭 전국유족회장(마산)은 15년형을 선고받고 8년여 기간 복역한 후 주거제한을 조건으로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평생 옥살이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타계했다. 김해 진영의 김영욱 씨도 2년 넘게 복역한 후에도 계속 경찰의 감시를 받아오다 2000년 이후 다시 진상규명운동을 벌이던 중 명예회복의 염원을 이루지 못한 채 작고하고 말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사후에나마 이뤄질 전망이다. 진실화해위는 최근 1960년 민간인학살 유족회 사건 관련 피해자 20여 명과 교원노조 사건 피해자 10여 명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이들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심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유족회사건과 교원노조 사건이 민족일보와 마찬가지로 특수범죄처벌법에 의한 소급 처벌이라는 게 명백하므로 진실규명 자체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다만 절차상 소위원회와 본위원회를 거쳐 최종결정은 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유족회 사건의 경우 가족이 희생된 데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는 사실만으로 '특수반국가 행위'를 적용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식을 들은 노현섭 씨의 둘째아들 노치웅(63) 씨는 "늦게나마 아버지의 누명을 벗을 수 있다는 기대에 마음이 설렌다"며 "전국의 다른 피해자들과 힘을 모아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5.16쿠데타가 일어난지 이틀만인 5월 18일 연행돼 마산형무소와 서대문형무소에 7개월 넘게 불법구금됐던 이봉규 선생.


교원노조 마산중등지회장이었던 이봉규(91) 선생도 5·16쿠데타 직후인 1961년 5월 18일 연행돼 마산형무소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12월말까지 옥고를 치렀다. 선고유예로 풀려나긴 했으나 역시 특수범죄처벌법에 의한 불법구금이었다. 이봉규 선생은 "지금에야 진실을 밝혀본들 별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죽기 전에 명예회복이나마 이룰 수 있다면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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