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사진·영상으로 보는 학살 유해발굴 현장

기록하는 사람 2009. 7. 3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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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30일) 또 민간인학살 암매장 터 유해발굴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하도 이런 현장을 많이 봐서 이제 무덤덤해질 때도 되었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멍멍해집니다.

경남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 진성고개에서 산으로 좀 올라가면 가늘골(아랫법륜골)이라는 야트막한 골짜기가 나옵니다. 지금은 감나무 과수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이 과수원의 주인이 산을 매입할 때 전 주인으로부터 학살 매장터가 있다는 말을 전해듣고 그곳은 감나무를 심지 않고 공터로 두었다고 합니다.

이 감나무 과수원 주인의 제보로 진실화해위원회의 용역을 받은 경남대박물관 유해발굴팀(책임연구원 이상길 교수)이 발굴했습니다. 기록으로 남깁니다.


지난 11일 처음 유골이 드러나기 시작했을 당시의 모습입니다. 장맛비가 와서 이렇게 덮어놓았습니다.


19일만에 다시 찾은 현장의 모습입니다. 최소한 54구의 유해가 이렇게 드러나 있습니다.


유해 사이엔 한국전쟁 당시 정규군 일부가 썼던 M1 탄피가 흩어져 있습니다.


두개골 옆에 떨어져 있는 M1 탄피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유해는 두개골이 땅쪽으로 엎어져 있으나, 이 유해만은 옆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허리 부근에서 발견된 허리띠 버클과 고무줄입니다.


남편을 잃었다는 한 할머니가 드러난 유해를 보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고,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등이 할머니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두개골 중 몇 개는 머리에 총탄을 맞은 듯 파열돼 있었고, 이빨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유해는 한줄에 4~8명씩 나란히 총 9줄로 엎어져 있었습니다. 두 명씩 손을 뒤로 교차되도록 하여 손목을 묶고, 엎드리게 한 후 한발씩 조준사격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팔이 모두 마름모꼴로 꺽여 있습니다. 이렇게 한 줄이 쓰러지면, 다음줄 사람들을 앞 사람의 발목부근에 머리를 파묻고 엎드리게 한 후 총살했습니다.


진주MBC 카메라기자가 학살현장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입니다.


유해들 속에서 발견된 희생자의 신발입니다. 구두와 작업화가 많았습니다.


희생자가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칫솔도 발견되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모습입니다.


M1 탄피를 가까이서 찍어봤습니다. 이런 탄피 외에 탄창(클립)도 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설명회에 참석하신 분들입니다. 앞열 왼쪽부터 전국유족회 김광호 집행위원장, 진실화해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 충북대 유해발굴센터 박선주 교수, 뒷열에는 경남대 유장근 교수와 이종흡 박물관장, 경상대 김덕현 교수와 김준형 교수도 보입니다.


유족들의 모습입니다. 힘겹게 산을 오르던 성증수(87) 할머니도 뒤쪽에 보입니다.


경남대박물관 유해발굴팀 이상길 책임연구원이 발굴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상길 교수는 이런 고무장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찍어본 발굴 현장입니다.


역시 방송국 촬영팀이 근접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가 드러난 유해를 들여다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설동일 사무처장도 참석했습니다. 표정이 안쓰러운 모습입니다.


성증수 할머니가 당시 친정아버지가 잡혀가시던 상황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참석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현장을 보러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상길 교수가 현장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두 명씩 뒤로 손목을 묶은 자세에 대한 설명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전국유족회 김광호 집행위원장의 모습입니다. 그는 진영에서 학살당한 독립운동가 김정세 선생의 손자이자, 1960년 유족회장을 하셨던 김영욱 선생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이날 설명회에는 아이들을 현장교육 차원에서 데리고 온 어머니도 눈에 띄었습니다.


참석자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드러난 유해를 보고 있습니다. 손짓을 하는 아이 어머니의 표정이 멀지만 안타깝게 보입니다.


진주유족회 강병현 회장이 인사말을 하는 도중 울먹이고 있습니다. 보신 김에 강병현 회장의 인사말 동영상도 함께 보시죠.


이처럼 강병현 회장은 끝내 말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저 분들을 들을 수 없지 않습니까? 저 분들은...왜 죽어야 했습니까? 왜 대답이 없습니까? 보십시오. 우리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모릅니다. 이래놓고도 이 정부는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마산유족회 노치수 회장도 보입니다. 그는 당시 아버지 노상도 선생을 잃었고, 1960년 전국유족회 회장을 했다는 이유로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감옥살이를 한 노현섭 선생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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