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팔불출입니다. 끊임없이 아들 딸 아내 자랑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제 아내랑 아들이랑 딸은 뛰어난 점이 많습니다. 감수성도 풍성하고요, 상상력도 꽤나 튼튼합니다.
물론 이렇게 자랑하고 싶어하는 까닭은 제가 그이들을 나름대로는 매우 사랑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쉽사리 자랑을 못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데 대해 그이들이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런 부담이, 그이들로 하여금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상대 허락을 받고 취재하거나 기사를 쓰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운 탓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에는 제가 하고 싶으면 아무 거리낌 없이 했지만, 한 반 년 전부터는 하고 싶어도 하지 않고 참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마음 놓고 할 수 있습니다. 딸에게 먼저 허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 딸은 그림을 잘 그립니다. 피아노도 잘 칩니다. 제가 알기로 음악과 그림은 균형이 중요하고 구도가 중요합니다. 이런 균형과 구도는 사진 찍는 데서도 마찬가지 중요한 모양입니다.
중3인 딸 현지가, 어제 밤에 자기 손전화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제게 보여줬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좋았습니다. 그래서 현지더러 "블로그에 올려 보면 좋겠다" 했더니 쉽사리 허락을 해 줬습니다. 같은 날 밤에 옮겨 받았습니다. 이제 올립니다.
우리 아파트에서 내려와서 곧장 찍은 사진입니다. 현지는 하늘에 구름이 너무 이뻐서 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오른쪽 아래에서 햇빛이 은근하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밋밋하지 않으면서 구름 모양도 돋보이게 하는 짜임새입니다.
동네 운동장에서 찍었습니다. 산책하러 가는 길이었겠지요. 현지가 전에 다니던 용남초등학교 뒤에 있는 운동장입니다. 아래 삐죽삐죽 솟은 메타셰콰이어라든지, 오른쪽 크지 않게 자리잡은 학교 건물이라든지는 하늘 구름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습니다. 현지가 잡은 구도입니다.
현지가 방학하기 전 7월에 찍은 학교 교실 복도 사진입니다. 색다른 구석이 크게 있지는 않지만 정형화된 틀을 비틀어 긴장이 느껴지면서도 잘 짜여 있지 않나요? 현지의 '평소 실력'을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저는 봅니다만. 하하. 멀리 한가운데서 들어오는 빛은 색다른 분위기를 만듭니다. 현지의 이런 포착이 좋고 고맙습니다.
현지는 이런 데서 즐거움 또는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요즘은 혼자 산책하는 데 맛을 들였답니다. 혼자 걷고 하면서 느끼고 생각할 줄 알게 됐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잡아내고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은, 제 생각으로는 엄청난 능력입니다. 쓸데 없는 경쟁과 숫자놀음에서 헤어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김훤주
'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랜 관성을 단박에 깨는 상큼한 동시들 (11) | 2009.08.29 |
---|---|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10년 전 추억 (4) | 2009.08.13 |
여름철 생삼 먹고 힘내라던 그 형님 (12) | 2009.07.29 |
각기 다른 두 시인에게서 느낀 따뜻함 (4) | 2009.07.03 |
돌사자 조형물에 생식기가 없는 까닭 (4) | 2009.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