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10년 전 추억

김훤주 2009. 8. 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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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환균 대검찰청 공안부장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이 됐다는 소식에 옛날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까먹었겠지요.

그이에게도 올챙이 시절은 있어서, 10년 전 이맘때는 창원지방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와 있었습니다. 그이는 그 때 검찰·법원·경찰 출입기자이던 저랑 출신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같다는 이유로 잘 대해줬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그래도 취재원과 기자 관계는 기본이 불가근불가원인지라 긴장감은 그이도 저도 유지하고 있었지요. 게다가 저는 1985년부터 줄곧 '국정' '빨갱이'였고, 그이는 국정(國定=국가 공인) 빨갱이 제조가 본업인 공안 검사였으니 아무리 친하다 해도 근본은 서로 '소 닭 보듯' 했을 따름입니다.

뉴시스 사진. 10년 전에는 여윈 편이었는데.

그해 가을, 저는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있던, 한국수미다전기 노동조합의 위장 폐업 철회 투쟁 10년을 맞아 일본에서 안팎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이들이 초청을 했습니다. 투쟁 주역은 아니었지만, 당시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에 종사하면서 이런저런 선전 활동을 벌인 덕분으로 저도 끼이게 됐습니다.

<한국 공해 리포트 : 원전에서 산재까지>(1991)라는 책을 써는 데 참여하기도 했던 니시나 겐이치씨가 안내를 맡았는데 재일 조선인을 비롯해 일본인 노동운동가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소중한 얘기들을 많이 듣고 했는데요, 지금 기억은 그이들 나이가 대부분 60·70대였다는 것밖에 안 납니다.

그러던 가운데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들어갔는지, <조선신보> 기자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앞에 잠시 말씀드린대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국가 공인 빨갱이가 돼서 '감빵'을 산 적이 있어서, 나름대로 관련 계보를 조금은 알고 있었습니다.

1985년 8월 어머니 아버지 보시는 앞에서 경찰에 붙잡혀 수갑을 찼습니다. 어머니는 그 뒤에 '간이 벌렁거려서' 아들 접견도 한 번 오시지 못했습니다. <일보전진>이라는 이적표현물을 제작·배포했다고 추달을 당했습니다. 여섯 달 동안 유관순이 순국한 서울 구치소의 3사하(舍下) 27방에 갇혀 있었지요.

어쨌거나, 국가보안법 제8조는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반국가단체고 재일조선인총연합(조총련)도 반국가단체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신보>는 반국가단체 조총련의 기관지이고 거기 기자는 당연히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최고 징역 10년에 해당하는 범법을 하고 만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생각을 하는 그 순간, 저는 혀가 굳었습니다.

<조선신보> 기자는 살갑게 다가오는데, 제가 몸이 뻣뻣해졌습니다. 이거 큰일 났구나, 안기부(그해 1월 안기부는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제게는 이것이 더 익숙했습니다.)에서 알려고 하면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 이제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었지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조선 사람을 만나면 개념상으로는 절반이 조총련이고 나머지 절반은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인데, 저마다 이마에 소속을 새기고 다니지도 않는데 어떻게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것입지요.

어쨌든, 저는 그 때 국가보안법이라는 존재가 사회주의를 꿈꾼다고 해서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을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람을 꼼짝 달싹 못하도록 생각과 행동을 구속할 수 있다는 엄청난 사실을 그야말로 체득했습니다. <조선신보> 기자는 마산·창원 노동운동 실태가 궁금했는지 제게 이런저런 물음을 해댔는데, 저는 그럴수록 더욱 몸이 굳고 혀가 꼬였습니다.

돌아와서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시지요? 무슨 별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아내랑 의논을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얘기한 끝에, 나중에 국가 권력이 알고 문제 삼을 수도 있으니 미리 얘기해 버리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이 이야기를 한 대상이 바로 이번에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이명박의 부름을 받은 노환균 검사입니다. 당시 제가 출입하던 창원지검 공안부장으로 있었지요. 그이는 얘기를 다 듣고 나서 "알았다. 문제 삼지는 않겠다. 다른 데 얘기하지 마라." 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이런 정도를 갖고 처벌하려 든다면 오히려 우스꽝스러웠겠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그 때는 얼마나 다행으로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이로써 노환균 부장도 국가보안법을 어겼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제10조에서 불고지죄를 두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제8조(회합·통신 등)를 위반한 사람을 수사 또는 정보기관에 알리지 않으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은 셈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아래서 출세하는 튼튼한 동앗줄을 붙잡게 된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이런 일은 벌써 새까맣게 잊힌 옛날 일일 따름일 것입니다. 국정 빨갱이의, 국정 빨갱이 제조업자에 대한 조그만 기억이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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