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막걸리를 좋아하면 이런 재미도 있다

기록하는 사람 2009. 8. 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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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아주 좋아하지만, 두주불사, 주종불문형은 아니다. 소주 이외의 다른 술은 잘 마시지 못한다. 특히 맥주를 마시면 마치 위가 물을 넣은 고무풍선이 된 것처럼 무거워짐을 느낀다. 걸으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10여 년 전 사상의학에 대해 좀 아신다는 한 교수님이 진맥을 해보시더니 "술은 맥주보다는 독주가 체질에 맞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위스키 같은 양주는 이상하게 입맛에 맞지 않는다. 특유의 냄새가 싫다.

그래서 결국 가장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소주 뿐이다. 외국에 나가봐도 소주만큼 좋은 술은 없다. 일본소주는 닝닝한데다 쓴맛밖에 느끼지 못해, 어쩔 수 없이 1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한국 관광소주를 사 마시기도 했다.

일본에선 소주가 맛이 없고, 한국소주를 찾으면 좀 비싸다. 작년 일본 도쿄의 한 선술집에서...

요즘 이상하게도 막걸리가 끌린다. 사진은 집 앞 막거리집의 홍탁.


그나마 중국은 북경 이과두주가 있어 다행이었다. 이과두주는 값이 쌀 뿐만 아니라 좀 독하면서도 한국의 소주 맛과 거의 흡사하다. 이과두주는 한국에서도 중국집에 가면 가끔 시켜먹는 술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내 술 취향에 변화가 생겼다. 이상하게도 막걸리가 끌리는 것이다. 여름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경기불황 탓에 주변에 막걸리집이 많이 생겨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한 보름 동안 계속하여 막걸리를 마셨다. 음악주점에서도 마셨고, 퇴근 후 집에서도 마셨고, 집앞 막걸리집에서도 마셨다. 얼마 전에는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마셨다.

그날도 집 방향이 같은 후배 김두천 기자와 걸어오던 중 막걸리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몇 번 가봤던 집 앞 막걸리집에 들렀는데, 만원이라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후배와 나는 골목길 슈퍼마켓 앞 길에 놓인 파라솔 밑에 앉았다. 가게에서 마산생막걸리와 부산생탁을 사와 종이컵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부산생탁은 맛이 좀 달았다. 마치 막걸리에 사이다를 탄 듯 했다. 그래서 다음부턴 병이 빌 때마다 마산생막걸리를 가져왔다.


마땅한 안줏거리가 없어 포장된 쥐포를 사다 먹고 있으니, 맞은편 단골 횟집 안사장이 보고 접시에 묵은 김치와 삶은 감자, 데친 오징어 등을 쟁반에 담아 갖다준다. ㅎㅎㅎ 길에서 먹으니 이런 재미가 있다.

마시고 있던 중 최근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온 권범철 화백(노컷뉴스에 만화 연재 중)도 합류했다. 그날 도대체 몇 병의 막걸리를 마셨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대취했다.

길거리에서의 막걸리 성찬.


이처럼 막걸리는 비싼 안주 없이도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다른 술과 섞어먹지만 않는다면 아침에 머리가 아플 일도 없다. 술 자체에 칼로리가 높으니 그냥 밥먹는다는 생각으로 먹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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