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남서 김대중 비판한 호남 출신 국회의원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이 7월 25일 부산에 왔습니다. 부산 중구 영주동 부산민주공원에서 블로거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알려진대로 천정배 최고위원은 전남 신안군 암태도 출신입니다. 같은 정당 출신이고 또 같은 호남 출신이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을 비판하다니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이의 김대중 비판은 자기에 대한 반성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인식이 철저하지 못하고 깊지 못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천정배 최고위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을 '독점탐욕세력'이라 규정하며 "이제는 비판조차도 아까운 집단"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재산을 누구랑도 나누지 않고 탐욕스럽게 독차지하려 한다는 얘기입니다. 천정배 최고위원은.. 더보기 국가폭력으로 인생 망가진 할아버지 이야기 삼청교육 피해 장애에 경찰 사찰까지 국가 폭력으로 말미암아 30년 넘게 장루 장애(2급)를 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줌과 관련된 기능이 망가져 오른쪽 장딴지에 장루(몸 밖으로 소변을 빼내기 위한 주머니)를 차고 다녀야 하는 정정웅(69·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어르신입니다. 1942년 2월 부산에서 태어난 어르신은 1980년 5월 전두환이 군사반역을 일으키기 전에까지는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육군까지 다녀온 뒤 서울에서 김두한(1918~72) 국회의원 수행원을 하다가 김 의원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대전 서대전역 근처에서 식당을 했다고 합니다. 1980년 5월 어느 날 저녁 시장에서 찬거리를 장만해 오는 길에 대전서부경찰서 민모 형사만 만나지 않았으면 계속 그대로 평범하게 살았을 것입.. 더보기 '여승 지율의 단식'과 '노무현의 자살' 조갑제 기자가 5월 23일 오후 5시 31분 "'노무현 서거'가 맞는 표현인가?" 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24일 저녁에 이 글을 봤습니다. 보는 순간, 2005년 2월 4일 같은 조갑제 기자가 쓴 "단식 100일? 기자들은 다 죽었다!"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양산 천성산 산감이던 지율 스님은 네 번째 단식 100일이 되던 2월 3일 정부와 '석 달 동안 환경영향 공동 조사' 등에 합의하고 단식을 풀었습니다.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을 둘러싼 갈등이었고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한 목숨 건 추궁이었습니다. 1. 단식 100일 기사는 '보도' 아닌 '대변'? 그러자 조갑제 기자는 앞서 말씀한 기사에서 "기자가 어떻게 초자연적인 현상인 100일 단식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하는가.. 더보기 70년대 병영 학교와 미네르바 구속 1. ‘미네르바’가 10일 구속됐습니다. 구속 사유를 보니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돼 있습니다. 70년대 80년대식으로 달리 말하자면 ‘유언비어(流言蜚語) 유포’를 했다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지배집단은 스스로가 허약하다고 생각할 때 남의 ‘입’을 단속합니다. 박정희 유신 정권이 대표적입니다. 강고한(또는 그리 보이는) 무력으로 통치했지만, 사람들 수군거리는 몇 마디에도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여겼다는 얘기입니다. 자신 있는 정권은 그리 하지 않습니다.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학생들 ‘데모’를 심각하게 탄압한 보기가 없는데, 이는 그런 조그만 움직임조차도 정권을 위협하는 단초가 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런 허약한 정권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와 같은 집단뿐만 아니라 개.. 더보기 전두환 회식과 이명박 회식 1. 지금 회식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 회식은 정말 폭발적이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 세상은 진짜 폭압적이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어느 한 분야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 전체가 폭압적이었고 분위기 자체가 억압적이었습니다. 2. 82년이나 83년 시절에는 대학 교정에서 보통 누군가가 나서서 “학우여!” 소리를 지르고 전단을 뿌리면서 데모가 시작됐는데 이 틈을 전두환 정권은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시위를 한 번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나마 확보하려고 어떤 이는 나무에 올라갔고 어떤 이는 학교 식당에서 식판을 뒤엎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사복 경찰의 눈을 피해 학교 건물 옥상에서 밧줄을 타고 중간쯤에서 시위를 주동하기도 했는데 .. 더보기 진주의 유명 식당에서 본 전두환 경남 진주에 가면 제일식당이라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해장국·육회비빔밥집이 있습니다. 저도 취재차 진주에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올 경우 아침에는 꼭 이 집에 가서 해장국을 먹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처제가 아들을 낳아 문병 겸 축하를 위해 진주에 다녀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손위인 둘째·세째 동서 부부, 그리고 우리 부부가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 저녁에는 우리 동서들 중 가장 부자(?)인 둘째 동서 형님네 집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먹고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지리산 흑돼지라는데, 비계 끝부분 껍데기까지 붙어있었습니다. 쫀득쫀득하게 맛있더군요.이렇게 마치 펜션처럼 아름다운 형님네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예의 그 제일식당의 해장국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는 돈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데, 이런 집은 정말 살아보고 싶.. 더보기 광주에는 광주가 없었습니다 광주에는 광주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언론노조 수련회 덕분에 광주를 찾아갔다가 받은 느낌입니다. 물론, 어쩌면 광주가 광주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80년 5월 광주는 어쩐지 자꾸자꾸 사라지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여기도록 만든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찾으려고 일부러 애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눈과 귀에 이런 것들이 들어왔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억지 글감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한국예총이 주최하는 5.18기념 휘호대회 첫째는 국립5.18민주묘지 앞에 있는 플래카드였습니다. '5.18민주화운동 제28주년 기념 제6회 전국휘호대회'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죽 읽어가는데 주최 단체에서 무엇이 딱 걸렸습니다. 걸리게 만든 것은.. 더보기 5월, 광주, 그리고 내 인생 난생 처음 찾은 광주 망월동 묘역 2008년 5월 8일, 처음으로 광주 망월동 5.18 묘역을 찾았습니다. 광주 항쟁이 일어난 지 28년만에, 그리고 제가 이 광주를 알게 된 지 26년만에 참배한 광주 묘역이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많은 이들을 보내기는 했으면서도 한 번도 찾지 못했던 망월동이었습니다. 정식 이름은 국립5.18민주묘지로 돼 있더군요.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모인 본디 목적인 언론노조 산별 교섭 쟁취를 위한 수련회 일정이 목을 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향과 헌화를 하고 누워 있는 몇 분 무덤만을 둘러봤습니다. 기록상 가장 먼저 숨을 거둔 김경철, 말을 하지 못하는 농아자였답니다. 문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다 숨진 최미애, 당시 배속에는 8개월 태아가 있었답니다. 군인들 총알에 죽은 .. 더보기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