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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광주에는 광주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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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학생교육원의 등꽃 모습

광주에는 광주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언론노조 수련회 덕분에 광주를 찾아갔다가 받은 느낌입니다. 물론, 어쩌면 광주가 광주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80년 5월 광주는 어쩐지 자꾸자꾸 사라지고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여기도록 만든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찾으려고 일부러 애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눈과 귀에 이런 것들이 들어왔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억지 글감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한국예총이 주최하는 5.18기념 휘호대회

첫째는 국립5.18민주묘지 앞에 있는 플래카드였습니다. '5.18민주화운동 제28주년 기념 제6회 전국휘호대회'를 알리고 있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죽 읽어가는데 주최 단체에서 무엇이 딱 걸렸습니다.

걸리게 만든 것은 한국예총(광주.전남)이었습니다. 한국예총이 어떤 단체인지, 얼마나 독재정권에 영합해 먹은 단체인지 다들 아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62년 1월 박정희 쿠데타 세력의 지령에 따라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입니다. 초대 회장 유치진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일제 시대 대표적인 친일 문학인이기도 합니다.

전두환 시절에도 이들은 공공연하게 전두환을 옹호하고 찬양하고 영합하고 아부하고 출세를 했습니다.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여의도에서 벌인 <국풍 81>도 한국예총 소속 회원들의 참여 속에 이뤄졌습니다. 국풍 81은 아시는대로 광주항쟁 1주년을 맞아 저항 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전두환 정권이 마련한 '전국 대학생 민속국악 큰잔치'였습니다.

5월 9일, <전라도닷컴>을 하는 황풍년 편집국장을 만난 자리에서 물어봤습니다. "한국예총이 광주나 전남에서 제대로 한 번 반성한 적이 있나 보지?" 답은 이랬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런데 어째서 '5.18 기념' 전국휘호대회를 그이들이 주최를 하게 해? 반성도 하지 않은 가해자가 피해자 기념 행사를 연다니 말이 안 되잖아?" 했더니 '그러게 말이요, 광주는 이제 여느 지방자치단체보다도 못한 도시여. 5월 광주는 이제 없어져 버렸네." 하는 대꾸가 돌아왔습니다.

황 국장이 일러주는 광주는 민주 도시도 아니고 문화 수도도 아니었습니다. 여느 지역과 다름없이(어쩌면 오히려 더) 토호들이 권력을 쥐고 흔드는 그런 데였습니다. 지역 매체들이 제 구실 못하는 정도는 우리 경남보다 더했습니다. 토호들에게 광주는 그러니 완전 '해방구'인 셈입니다.

학생 인권 무시하는 자칭 '평화 인권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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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수련회가 열린 광주 학생교육원.

광주는 평화 인권 도시라는 타이틀도 달고 있습니다. 백정들 신분해방을 지향하는 형평운동이 시작됐던 경남 진주와 함께 나란히 말입니다. 광주가 '평화'와 '인권'을 내세우는 배경에는 5.18이 있습니다.

"인권을 철저히 탄압하려는 군부세력에게 분연히 맞서 총칼 앞에 저항했던 위대한 광주정신은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던 사건이다.", "앞으로 위대한 광주민주화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 민주인권 도시라는 광주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광태 광주시장이 올 1월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업적을 기리려고 제정"(광주일보 보도 내용)됐다는 국제평화상을 받고 한 말도 그렇습니다.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평화·인권도시 광주와 위대한 시민정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 수련회가 진행된 광주광역시 학생교육원 방에는 열쇠가 없었습니다. 자리는 전남 화순에 잡고 있지만 운영은 광주교육청이 하고 있습니다. 열쇠가 없는 까닭을 수련회 안내자는 "학생 시설이라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현금이나 값비싼 물건은 꼭 몸에 지니고 다니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냥 예사로 듣고 넘겼습니다만, 나중에 한 번 따져보니까 이상했습니다. 선생들이 학생들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데 거추장스럽고 효율도 떨어지니까 열쇠를 두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보호받아야 마땅할 학생들 인권이 없는 셈입니다.

이런 것이 광주뿐 아니라 모든 지역의 문제일는지도 모릅니다.(그런데 제 기억에는 의령 학생 수련원은 열쇠가 없지 않았습니다.) 그렇다 해도, 5.18을 바탕삼아 '평화 인권'을 앞세우는 광주라면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으니 쓴웃음이 입밖으로 슬슬 밀려 나왔습니다.

이처럼 광주에 광주가 없어서 저는 반갑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광주가 제게 지난날 무엇이었고 지금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같은 블로그에 올라 있는 글 '광주, 5월, 그리고 내 인생'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반가운 까닭은 광주가 저한테 무슨 경외나 숭배의 대상이 아니고 그만큼 만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섭섭한 까닭은, 제가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들 아시리라 저는 여깁니다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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