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70년대 병영 학교와 미네르바 구속

김훤주 2009. 1. 11.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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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네르바’가 10일 구속됐습니다. 구속 사유를 보니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돼 있습니다. 70년대 80년대식으로 달리 말하자면 ‘유언비어(流言蜚語) 유포’를 했다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지배집단은 스스로가 허약하다고 생각할 때 남의 ‘입’을 단속합니다. 박정희 유신 정권이 대표적입니다. 강고한(또는 그리 보이는) 무력으로 통치했지만, 사람들 수군거리는 몇 마디에도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여겼다는 얘기입니다.

자신 있는 정권은 그리 하지 않습니다.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학생들 ‘데모’를 심각하게 탄압한 보기가 없는데, 이는 그런 조그만 움직임조차도 정권을 위협하는 단초가 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런 허약한 정권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와 같은 집단뿐만 아니라 개인의 발언조차도 틀어막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이명박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는 팽개치고 1% 부자만 대변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2.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이토록 심각하게 후퇴시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는 꼴을 보니, 한 30년 정도는 곧바로 뒤로 물리고도 남겠다 싶습니다. 저항이 없다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70년대 고등학교 얘기입니다. 그 때는 지배자가 군인 출신이다 보니 학교를 병영화했습니다. 지금 지배자는 건설회사 사장 출신이라 방법과 형식은 다를 수 있겠다지만 뿌리는 군대 돌격대에다 상명하복이다 보니 내용까지 크게 다르지는 않겠다 싶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우리는 그 때 해마다 가을이면 이른바 ‘사열’ 연습을 하느라 뙤약볕에 얼굴이 그슬어 가며 다른 수업 제쳐놓고 군사 훈련을 받았습니다. 군대 장교 출신 교련 선생님들이 군홧발로 촛대뼈를 걷어차곤 했지요.

저는 이번 미네르바 구속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그런 통제로 갈까봐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독재자 박정희의 몰골을 흉내낸 적도 있고 해서 그런 통제조차 따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3.
제가 푸른 꿈을 키우며 3년을 다녔던 대구 대건고등학교 학생수첩입니다. 이번에 책장 정리하다 찾아냈는데, 알고 보니 무시무시한 시절을 건너왔더군요. 저는 이런 시절을 다시 겪지 않을 만큼은 우리 민주주의 역량이 된다고 여깁니다만.


제일 앞에 ‘국기에 대한 맹세’가 있습니다. 얼마 전 교과서에서 빠진 대통령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도 박혀 있습니다. 다음에 교훈이 실려 있는데, 앞에 나온 전체주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언제나 어디서나 양심과 정의와 사랑에 살자.”입니다.

교가도 실려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좋아하는데, 이 노래는 “진리를 사랑하는 젊은 넋이여.”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어 나오는 ‘학도호국단 운영 규정’을 잘 봐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학도호국단이 그래도 학생들 조직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니었습니다.

4.


그 때는 대학에도 학도호국단이 있었는데 단장이 4학년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속았습니다. 고등학교는 단장이 바로 교장이었습니다. 학생 대표는 단지 연대장일 뿐이었습니다. 학년 대표 학생은 대대장이고요.

여기에는,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당연히 학원도 없습니다. 교가에 이어 실려 있는 ‘학도호국단 운영 규정’입니다. ‘제2조(운영 방침)’은 이렇습니다. “2. 단장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지도 체제를 확립한다.” 단장은 교장입니다. 저는 이북의 주체사상이 떠오릅니다.

이어지는 말입니다. “7. 학생 군사 교육을 철저히 시행하여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태세를 확립한다.” ‘제3조(임무)’는 더욱 노골적입니다.  처음부터 그렇습니다.

“1. 국가 안보에 관한 정신 교육 실시”. (학도호국단이 없어야 더 잘 될) ‘2. 학생의 면학 기풍의 진작’도 들어 있기는 합니다. 이어지는 것들은 “3. 학생 군사 훈련의 실시” “4. 새마을 운동에의 참여” “5. 의료봉사 근로봉사 계몽 활동 등의 각종 봉사활동”입니다.

뒤에는 그야말로 가관입니다. “6. 비상사태 하에 있어서의 사회 질서 유지” “7. 전시 하에서의 구호 사업의 전개, 파괴 시설의 복구” “8. 작전 지역에서의 군사지원 협조 또는 지역 방위 분담”. 어린 학생을 총알받이 또는 전쟁 ‘시다바리’로 동원하는 규정입니다.

지도위원회가 있고 상임지도위원회도 있습니다. “1. 과장급(학생, 교무, 연구, 서무과장) 2. 학년 주임급(1,2,3학년) 3. 교련 교사(3명)”.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연대장은 단장의 명령을 받고 대대장은 연대장의 명령을 받을 뿐입니다.

“제11조(학생 제대장의 직무) 1. 연대장은 단장의 명을 받아 당해 연대에 부과된 업무를 수행한다. 2. 각 제대장은 상급 제대장의 명을 받아 당해 제대에 부과된 업무를 수행한다. 3. 부제대장은 소속 제대장을 보좌하고 제대장이 사고가 있을 때에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

“명을 받아”와 “부과된”과 “수행한다.”에 눈길을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는 능동이 전혀 없고,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만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렇게 얘기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규정은 명목일 뿐이지 사실은 그러지 않았지 않느냐?”고.

5.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실제로 군사훈련을 하고 촛대뼈를 무시로 까였다는 점에서도 저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규정 그 자체입니다. 이를테면 이렇지요.


‘전쟁’ 위험 내세우기는 방편일 뿐이고, 실제 목적은 일상적 통제와 억압이었습니다. 전쟁 위험은 ‘북괴’로 말미암지요. 국가가 무력을 바탕으로 이를 일상적으로 요구할 때 거부할 수 있는 개인이 얼마나 될까요? 학생조차도 전쟁에 투입돼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뒤집는 생각이 당시 과연 얼마나 가능했을까요?

전쟁과 민주주의에 대한 얘기로 갔지만, 지금 이 국면에서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미네르바가 구속이 됐는데 이는 사람들 입을 막는 한 상징입니다. 30년 전에는 그 틀어막음이 사회 전체에 이처럼 군대식으로 제도화돼 있었는데요. 박정희에 비춰 이명박을 바라보니 새로운 방식으로 통제와 억압을 거세게 하려는 것 같아 참 걱정이네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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