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민생활 끝에 알게 된 타산지석 전직 기자 필력으로 흥미롭게 녹여내
21년 전, 13년 차 기자 성우제는 장애를 가진 자녀 때문에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아무렇게나 방치되는 장애인을 캐나다에서는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잘나가는 시사잡지 기자 생활을 접고 월급을 모은 돈과 아파트 판 돈을 갖고 캐나다로 날아갔다.
원래 이민이란 게 몇십 년 살아온 자신의 뿌리를 통째 뽑아 옮기는 존재의 결단이다. 그래서 새로 잔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이민 초기는 새로운 정착과 생존을 위한 고달픈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그에게는 아이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 몸부림은 더욱 절박하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영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준비 작업으로 음식점에 '알바'로 들어가 새벽부터 ‘철카트’를 밀며 뛰었다. 펜대나 굴리던 몸이다 보니 어떤 날은 끊어질 듯 아픈 허리에 복대를 하고 기어서 출근한 적도 있다. 그러다 좋은 한국인 인연으로 옷가게를 열게 되기까지 <극한직업>류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먹고살기 바빠도 저절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캐나다서는 특별한 사건으로 여겨졌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젠더·인종·신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한국에서는 예사였지만 캐나다에서는 범죄로 취급되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포용의 사회인 동시에 한 번 정한 원칙은 지위고하를 떠나 예외 없이 적용되는 나라였다. 이런 데에 비추어보면, 캐나다가 좋기만 한 것도 아니고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한국은 여전히 ‘새로 고침’이 많이 필요한 사회였다.
그러다가 10년 전부터는 이민 초기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까지 제법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모든 분야에 걸친 눈부신 성장이 그즈음에 K컬처를 필두로 한꺼번에 뿜어져 나왔다. K팝은 아이에게 모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캐나다 극장가에는 한국 영화가 일상으로 걸렸다. 토론토 한국음식점은 오히려 외국인들로 붐볐으며 K드라마 또한 외국인이 먼저 알고 권하는 지경이 되었다.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모국에서도 그때마다 달라진 새로운 낯섦에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이런 22년 차 캐나다 이민자 성우제가 이번에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를 펴냈다. 경남도민일보 출판 브랜드 도서출판 피플파워에서 나온 이 책은 생생한 체험이 바탕이어서인지 머리로 쓴 다른 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잘 읽힌다. 캐나다나 이민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우리 사회가 출생률 급감에 따른 인구 절벽 문제를 해결하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민 문제에 대해서도 모두 함께 생각해 볼 대목을 제시하고 있다. 말미에는 기형도 시인에 대한 추억과 시편 몇 꼭지를 담았는데, 문학애호가들의 그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달콤한 샘물 역할을 하고 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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