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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 5

부산 황학대의 진사 방치주 각자를 보면서

1. 부산 기장 죽성리 두호마을 바닷가 황학대에 새겨져 있는 글자들이다. 붉게 주칠(朱漆)이 되어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이런 각자를 통해 지역 역사를 짐작해보고 살피기를 즐기는 처지에서는 그런 까닭에 이런 주칠이 무척 반갑다. 옛날 처음 새길 적에는 주칠이 되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지워져 지금은 바위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가 보는 비석과 바위벽 각자가 거의 모두 그렇다. 그래서 원래부터 글자에 아무 색칠이 되어 있지 않은 줄 알았다. 찾아봤더니 그렇지 않았다. 옛날에는 반드시 주칠을 했다. 옛사람들이 길가 바위벽에 글자를 새기고 빗돌을 세운 까닭은 오가는 사람들더러 보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요즈음 플래카드와 같은 역할이었다. 옛날 비석이나 ..

가본 곳 2023.02.21

경주, 그 친구

경주, 라고 하면 나는 아득한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눈물 어리게 좋아했던 친구가 거기에 살고 있었다. 경북 월성군 건천읍 용명1리. 나는 문학소년이었으나 간이 작아서 문학반에 들지는 않았다. 반면 그 친구는 문학반 ‘태동기’의 당당한 멤버였고 2학년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태동기에서 시를 잘 쓰는 친구로 우뚝 꼽히고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때 우리 반은 참 별났다. 모두 50명 남짓이었는데 화가, 사진작가, 시인,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연극배우, 가수 지망생이 숱하게 많았다. 현직 건달 또는 건달 지망생 대여섯까지 더하면 스무 명가량이 학교 공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나도 그 친구도 그랬다. 친구는 웃는 모습이 기막히게 멋졌다. 웃으면 자그마한 눈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눈꼬리가 처지면서 얇은 입..

할부지 계시는 데는 한장딴일까 두장딴일까

시골 집에서 읍내 장터까지는 길이 제법 멀었다. 아부지는 8키로라 하셨고 할부지는 20리라 하셨다. 걸어서 두 시간이 걸렸는데 읍내 중학교 다니는 형들은 새벽밥 얻어먹고 6시 반에는 집을 나서야 했었다. 할부지는 꼭두새벽에 일어나셨다. 어둑어둑한 으스름에 사랑방에서 나는 “에헴!” 소리는 집안을 깨우는 신호였다. 식구들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부산함을 어린 꼬맹이였던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할부지 옆자리 이불 밑에서 꼼지락거리며 게으름을 부렸고 할부지는 사랑채 아궁이에서 소죽을 끓이셨다. 콩깍지랑 볏짚이 삶아지고 구수한 냄새가 퍼지면 할부지는 소마구의 구시를 김이 펄펄 나는 소죽으로 가득 채우셨다. 아침 세수는 소죽 끓인 솥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물로 하셨다. 아침밥 먹는 자리는 안채 대청마루였다...

<줬으면 그만이지>…김장하 바이러스와 나비 한 마리

여기 바이러스가 하나 있다. 아는 이들은 김장하 바이러스라고들 한다. 발원지는 서울에서 1000리 떨어진 한반도 동남쪽 경상남도의 중소도시 진주라는 곳이다. 이 바이러스의 첫 번째 특징은 자기가 가진 바를 한사코 나누고 베푼다는 것이다. 증상이 가장 먼저 발현한 김장하 선생의 삶을 보면 그것은 이렇다. 태어날 때는 그럭저럭 먹고사는 집안이었으나 1950년대 6.25전쟁을 비롯한 시대의 격랑에 가세가 기울면서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남의 한약방에서 점원 노릇을 해야 했다. 힘든 조건에도 틈틈이 주경야독한 실력으로 10대 후반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하고 이를 바탕으로 20대부터 한약사로 성공해 대단한 부를 일구었다. 이렇게 힘든 시절을 겪었으면 그 성과를 자기 앞으로 쌓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도 그는 ..

어른 김장하 선생 깜짝 생일 축하 행사 계획

2019년 1월 16일 김장하 선생의 깜짝 생신잔치를 열어드린 진주 사람들이 있었다. 선생이 워낙 이런 걸 싫어하시는지라 철저히 비밀리에 계획되고 추진되었다. 다행히 계획은 사전에 노출되지 않았고, 김장하 선생은 영문을 모른 채 "좋은 공연이 있다"는 아들의 안내로 경남과기대(현 경상국립대) 100주년 기념관을 찾았다. 당시 계획서를 보면 얼마나 세밀하고 치밀하게 행사가 준비되었는지 알 수 있다. 기록으로 올려둔다. *해당 기사 https://100in.tistory.com/3490 진주사람들이 '어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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