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공단 도시 창원에도 갯벌이 있었다

김훤주 2009. 6. 2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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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과 창원을 잇는 봉암다리에 서서 봉암갯벌을 바라보면 너머에는 공단지대만 있을 것 같습니다. 왼편 앞쪽에 들어서 있는 생태학습장과 인공섬 등에만 갯벌이 보이고 오른쪽과 한가운데는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봉암다리에서 바라보는 한가운데서 물줄기가 오른쪽 남천과 왼쪽 창원천으로 갈라진답니다. 남천은 옛 자취가 거의 사라졌지만 창원천은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남천 쪽 자취는 사라지고 =
 
남천 쪽이 거의 자취가 사라진 까닭은, 아마도 양쪽으로 모두 공장들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바다 쪽은 물론이고 조개무지와 야철지와 산성이 발견된 성산을 둘러싼 일대까지 갯벌과 논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별로 손대지 않고도 공장터 닦기에 딱 좋은 지형이지요.


이를 일러주는 보기가 있습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가장 깊숙한 데 있는 동네가 가음(정)동인데, 여기 '가음加音'은 '두엄'을 뜻하는 이두식 표현입니다. 가加는 뜻을 따와서 '더'가 되고 음音은 소리 그대로 '음'이 됩니다. 이 둘을 붙이면 '더음'(=두엄)이 됩니다. 바다풀들이 밀려들어와 더미로 쌓이던 곳이라는 뜻입니다.) 

봉암다리에서 내려다본 봉암갯벌.


경남도민일보 사진.


◇탄약창 일대 = 아시겠지만, 마산에서 창원으로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 봉암다리 아래를 지나 첫번째 굽이를 돌면 오른편이 봉암갯벌이랍니다. 여기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 따라 가면서 왼쪽으로 굽어지면 길 건너편 왼쪽에 철조망이 처져 있는 빈 땅이 나옵니다. 2만5000분의 1 지도에는 논이라고 표시가 돼 있지만, 실제로는 습지랍니다.


 철조망이 있는 까닭은, 군대가 관할하기 때문입니다. 탄약창이 자리잡고 있는데 옛날에는 내동(內洞·안골)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은 해안도로로 말미암아 봉암갯벌과 이어져 있지 않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갈대가 우거져 있고 습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버들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는데, 옛적에는 더했겠습니다. 전형적인 해안 습지(갯벌) 모양입니다.

지금은 물길이 대부분 막혔습니다. 철조망에 막혀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산에서 내려온 흙들이 쌓여 육지화가 광범하게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아스팔트 도로 아래를 서로 통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좀더 습지로서 특성을 지키면서 습지로 남을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내동천 일대 = 물론 여기 내동천은 지금 창원 도심에 있는 내동과는 무관하답니다. 창원 도심 내동은 웅남면 내동이었고요, 여기 내동천은 창원면 내동이었던 데와 관련돼 있습니다. 천차만차 중고 자동차 전시·판매장과 창원 농수산물도매시장 일대 사이를 가르며 흐릅니다.

물은 흐립니다. 많이 썩었지 싶었습니다.


냇가 들머리 풀섶에서는 게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풀 위에 무언가 수런거리는 소리가 나서 봤더니 게들이었습니다. 바로 봉암갯벌이랑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중고 자동차 전시판매장은 물론이고 농수산물 도매시장 일대까지가 예전에는 갈대 우거진 염습지였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해정·용원·사화 옛터 = 해정(海亭)유적비는 현대로템 건너편 두대공원에 있습니다. 비문에는 "송해와 꼬시락, 갱게이와 가모챙이며 또 새칩은 그 질펀한 개펄. 풍요롭던 소금밭. 돛단배 너머 풍어가 한 소절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남천내 하단 마산만과 접하고 3면이 해수 육수가 교류하며 공부(公簿)상 덕정(德亭)이나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해정이라" 했다고 돼 있습니다.

대원동 현대아파트 일대가 80년대 초반만 해도 논이었으니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겠습니까.

비문.


해정유적비에서 창원천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새로 생긴 인공습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두대공원 안에 있는데요, 람사르 생태습지공원이라 적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햇볕이 따가워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럴 듯하게 잘 꾸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 나절 머물면서 쉬기에는 좋아 보였습니다.


용원(龍院) 기림비는 파티마병원 뒤쪽 길가에 붙어 있습니다. "냇물과 갱물이 어우르던 모래톱 질펀한 갯벌 따라 서걱이던 갈대밭"과 "모챙이 후리치며 꼬시락 잡고 게 쫓던 머슴아들 곤쟁이 뜨고 재첩 캐며 파래 뜯던 가시나들"이 적혀 있습니다. 파티마병원과 홈플러스와 창원 시외버스 종합터미널 일대가 다 그랬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여기는 70~80년대 쓰레기매립장으로 '활용'된 땅이기도 하답니다.

용원 기림비

사화 옛터


'사화(沙火)옛터' 비는 여기서 창원역 쪽으로 길따라 가다보면 나오는 오른쪽 기와집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운암서원입니다. 사화에서 사(沙)는 모래라는 뜻을 따왔고 화(火)는 '블' 또는 '벌'이라는 소리를 새기는 한자입니다. 둘을 더하면 모래벌이 되지요. 마을 앞에 모래갯벌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소금밭(염전)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창원공동물류센터 옆 공터 = 사화옛터 비에서 맞은편(창원대로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좀 가다 주유소를 끼고 오른편으로 돌면 왼쪽으로 울타리를 둘러친 공터가 있습니다. 지금 보기에는 갯가와 아무 관계가 없는 듯하지만 아닙니다.


옛적 사화 마을 앞에 펼쳐져 있던 모래벌 또는 소금밭이었던 자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이미 매립한 지가 오래 됐는데도, 그 위로 갈대가 솟아나 있습니다. 마찬가지 물가에서 잘 자라는 버들도 옆에 나란히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놀라운 자취를 확인했습니다. 여기 공터는 사방이 모두 꽉 막혀 있습니다. 야산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공장 따위를 가로질러야 가 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공터 바닥에서 발굽을 봤습니다. 집짐승에게는 발굽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발자국은, 노루나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이 여기 살지 않나 짐작게 하는 것입니다.


◇ 현대아파트 옆 창원천 = 행정당국은 여기 콘크리트를 깔아 주차장을 만들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어울리지 않게 유채를 심었습니다. 유채밭은, 걷이가 끝나면 곧바로 갈대가 솟아오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주차장 나들목을 가로막고 콘크리트를  걷어내 놓았습니다.


이대로 두면 여기까지 갈대가 들어차고 갈대 사이사이에는 게를 비롯해 갖가지 갯것들이 머물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을 먹이로 삼는 왜가리나 백로 같은 물새들도 날아들고 하겠지요. 그러나, 사람을 위해 산책로를 내고 자전거길을 만들고 놀이터를 세우고 꽃밭을 꾸며 버리면, 콘크리트보다는 낫겠지만, '걷어내나 마나' '말짱 도로묵'입니다.

현대아파트 앞 다리에서 비 온 다음날 찍은 창원천.



지금도 창원 도심에는 왜가리나 백로 때로는 갈매기까지 날아드는데, 이는 물론 창원천 덕분이고, 나아가 창원천 일대를 더욱 옛날과 가깝게 되살려 갖은 생물들이 머물게 하면 이런 새들을 더욱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복원력은 그야말로 대단하거든요.

봉암갯벌에서 해정유적비~현대아파트 앞 창원천~용원기림비~사화옛터~창원공동물류센터 옆 공터~내동천~탄약창 일대를 둘러 다시 봉암갯벌로 돌아오면 옛적 갯벌의 넓이가 대체로 나옵니다.(물론 남천 쪽은 통째 빠졌습니다만.) 

창원공단도, 우리 인간들에게는 소중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공단 때문에, 사람 때문에 없어진 갯벌도 소중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창원이, 광양만과 맞먹는, 갖은 생명체가 어우러져 생태적으로 아주 훌륭한 드높은 고장으로 남을 수도 있었으니까요.(마산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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