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치자꽃 짙은 향기에 현기증을 느꼈다

기록하는 사람 2009. 6. 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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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대학 캠퍼스에 가봤습니다. 제가 사는 마산의 경남대에 볼 일이 있어 낮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본 캠퍼스의 느낌은 '풋풋함' 그 자체였습니다. 우거진 수목과 벤치, 아름다운 호수, 그 속을 거니는 싱그러운 젊은이들…. 새삼 제가 늙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아는 교수님을 만나고, 아는 직원분과 캠퍼스 벤치에 앉아 커피도 한 잔 마셨습니다. 그리고 교문으로 혼자 내려오는 길에 제가 아주 어린 시절 맡아보았던 익숙한 향기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향기였을까요? 그건 바로 치자꽃 향기였습니다.

경남대 문과대 뒤 숲.

경남대 본관 옆. 여기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고향인 남해군은 유차, 치자, 비자, 이렇게 '3자'라고 부르는 나무가 유난히 많은 곳입니다. 향기로 치면 유자 열매도 유명하지만, 치자꽃 향기는 그 어떤 꽃향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짙고도 향긋합니다.

제가 아주 어린 초딩 시절엔 산에서 꺾은 치자꽃 가운데로 나뭇가지를 관통시켜 작은 개울 돌틈에 얹어놓으면 물레방아처럼 꽃잎이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렇게 제가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꽃입니다.

진한 향기가 느껴지시나요?


오늘 대학캠퍼스 호수(월영지) 주변에 핀 치자꽃은 제 어린 시절 보던 치자꽃과 달리 꽃잎이 더 풍성하더군요. 크기도 더 큰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짙은 향기만은 여전했습니다. 꽃잎에 코를 댓다가 현기증이 나서 기절할 뻔 했습니다.

저는 이 치자꽃과 찔레꽃 향기를 제일 좋아합니다.


월영지 주변을 맴돌며 치자꽃의 자태와 향기를 즐기다 보니, 커다란 자귀나무도 꽃이 만발해 있더군요. 자귀나무 또한 제가 어릴 때 산에 가면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나무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자귀나무라 부르지 않고, '소밥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소가 자귀나무 잎을 잘 먹어서 붙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소쌀밥나무'라고도 부른다고 설명해놨더군요. 저흰 그냥 '소밥나무'였는데….

산과 들에서 자라며 관상수로 심기도 한다. 키는 5~15m에 이른다. 미모사가 잎을 건드리면 움츠러들듯이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양쪽으로 마주 난 잎을 서로 포갠다. 잎은 줄기에 하나씩 달리는 것이 아니라 아까시나무처럼 작은 잎들이 모여 하나의 가지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줄기에 달린다. 이것이 복엽이다. 대부분의 복엽은 작은 잎들이 둘씩 마주 나고 맨 끝에 잎이 하나 남는데, 자귀나무는 작은 잎이 짝수여서 밤이 되어 잎을 닫을 때 홀로 남는 잎이 없다. 그래서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합환목(合歡木), 합혼수(合婚樹), 야합수(夜合樹)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가 자귀나무 잎을 무척 좋아해서 소쌀밥나무라고도 부른다. 6~7월이면 가지 끝에 15~20개의 작은 꽃이 우산 모양으로 달리며 기다란 분홍 수술이 술처럼 늘어져 매우 아름답다. 9~10월에 익는 열매는 콩과 식물답게 콩깍지 모양이다. 금세 떨어지지 않고 겨울 바람에 부딪혀 달가닥거린다. 이 소리가 시끄러워 여설목(女舌木)이라 부르기도 했다. (위키백과)

어쨌든 자귀나무와 치자나무를 구경하다보니 초딩 저학년 시절로 되돌아간 듯 했습니다.

저 놈의 말은 늙지도 않는데...


하지만, 다시 발걸음을 돌려 교문으로 향하는 순간 40대 중년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듯 대학캠퍼스에 가면 다시 돌아가지 못할 세월이 안타까워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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