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이명박 대통령이라면 절대로 이런 책은 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 몸이 이토록 정밀하고 잘 짜여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차마 아까워서라도 그리는 못할 텐데 싶은 것입니다. 철거민 용산 참사나 화물 노동자 박종태 음독 자살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투신 서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사람을 그토록 하찮게 여기지는 않겠다 여겨진다는 말씀입니다.
<내 몸 안의 숨겨진 비밀, 해부학>은 이른바 '계통 해부학'을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소화기 계통', '호흡기 계통', '심장혈관 계통' 하는 식으로 공통된 역할을 하는 기관끼리 모아 놓는 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관 사이 관계는 잘 설명이 될지 몰라도 개개의 모양이나 쓰임새는 소홀히 다루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대신 '국소 해부학'을 따랐답니다. '팔과 손', '다리와 발', '머리와 얼굴', '목과 가슴', '배', '엉덩이와 생식기관'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덕분에 쉬워졌습니다. 포괄적이고 개념적인 해설을 넘어, 생생하고 구체적인 설명이라는 지평이 열렸습니다. 이렇습니다. "포유류의 대부분은 시각 기능이 약하지만 인간을 포함한 원숭이류는 눈이 아주 발달돼 있다." 왜?
"공룡이 지구를 지배했던 6000만 년 전까지 포유류는 밤의 암흑에 몸을 숨기고 눈에 띄지 않도록 지면을 기어다니는 동물이었다. 자연히 시각보다는 후각이나 청각에 더 기댔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포유류의 시각이 약한 것은 공룡과의 공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한편 원숭이류는 지면에서 높이 떨어진 나무 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나무 위에서 은아다니려면 후각이나 청각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뭇가지가 어디에 있는지, 그 거리와 방향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확인하지 않으면 당장 떨어지고 만다."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이 눈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 수 있습니다. "고양이 같은 육식 동물은 두 눈이 모두 앞으로 향하고 있는데 양쪽 눈으로 동일한 대상(먹이)을 보면 좌우의 눈에 맺히는 상에 차이가 생기므로 이를 단서로 먹이까지 거리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슴 같은 초식 동물은 눈이 머리 옆에 붙어 있다. 거리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적의 존재를 살피는 데는 매우 유리하다."
이런 것도 있네요. 사람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골반이 잘 발달돼 있다는 점인데요, 이에 대한 설명을 읽어보면 "필요하니까 그리 됐구나", 생각이 절로 든답니다. "네 발 동물은 내장(위·창자·간·콩팥 따위) 아래에 배벽의 근육이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 내장을 떠받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두 다리로 섰을 때 배의 내장 아래에 오는 것은 근육의 벽이 아니라 골반의 뼈다. 인간의 골반이 날개처럼 벌어져 있는 이유는 바로 배 안의 내장을 떠받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필요하지 않은 것 같은 데도 있습니다. 밥통(위)가 그렇지요. 작은창자에서 소화·흡수를 본격 진행하니까 위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위암이나 위궤양으로 위 전체를 절제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먹을 수 있는 양이 줄었다'고 한다. (위에서 내려보낸 음식을 받는) 작은창자는 음식물 처리 속도에 일정한 한계가 있다. 한계를 넘는 음식이 들어가면 속이 불쾌해지고 토하게 된다. 작은창자에 맞춰 음식을 조금씩 계속 먹는 식생활은 쉽지 않다. 위는 생명에 필수불가결한 장기는 아니지만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이바지하고 있다."
뜻밖에도, 전혀 생각지 않았으나 실제로 아주 중요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지문 같은 것입지요. "지문을 이루는 골과 융기를 현미경으로 보면 융기한 위에 작은 구멍들이 나 있다. 땀샘의 출구다. 여기서 스며 나오는 땀이 마찰을 크게 만들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막는 구실을 한다. 털장갑을 끼거나 손가락 끝에 반창고를 붙이면 물체를 잡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처럼 <내 몸 안의 숨겨진 비밀, 해부학>을 읽는 보람은 한 가지랍니다. 여태껏 무심하게 봐 왔던 신체 특정 부위들이 새롭게 여겨진다는 점이지요. 엄지손가락이 다른 네 손가락과 마주할 수 있다는 이 '하찮은' 기능이 실은 얼마나 '대단한지' 이 책을 보지 않으면 대부분은 모를 것입니다요. 하하.
그래서,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우와, 내 몸이 이토록 대단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돼 있구나!' 싶어서 자기 몸을 소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어떤 이는 더 나아가,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까지 소중한 존재로 여기겠지요. 물론 눈에 돈독만 잔뜩 올라 다른 사람 망가뜨려가면서까지 부려먹기를 일삼는 이들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밖에 안 되겠지만…….
어떤 별난 인간들은, 이렇게도 읽는다고 하는군요. 사회·정치적으로 확장해 보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서 손이나 발 노릇을 하는 이들이 과연 충분히 대접을 받는지, 입처럼 소리를 내는 미디어가 똑바로 하는지, 눈처럼 앞날을 밝히는 지식인들이 제대로 보는지, 작은창자나 큰창자처럼 사회에서 영양분을 만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제 노릇을 하고 있는지 등등으로 넓혀보는 것입니다. 또, 이명박 대통령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머리 노릇을 하는 이가 정말 제대로 머리 구실을 하고 있는지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절도 있는데요. "손가락 끝에는 차가움을 잘 느끼는 냉점(冷點), 아픔을 잘 느끼는 통점(痛點)이 매우 적다. 냉점은 코의 점막이나 가슴에 많이 있다. 말하자면 차가워져서는 곤란한 곳들이다. 통점이 많은 곳은 아래팔이나 넓적다리 등 평소에는 옷으로 보호를 받는 부분이다. 손가락 끝은 냉기에 노출되거나 상처를 입기 쉬운 곳이다. 그래서 차가움과 아픔에 대한 감각이 둔하게 되어 있다. 대신 손가락 끝에는 따뜻함을 잘 느끼는 온점(溫點)이 매우 많다. 얼굴 전체에 있는 온점의 개수와 맞먹을 정도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명박 대통령 같은 사람에게는 심장에 통점이 좀 많아지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고요?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어쨌거나, 쉬엄쉬엄 즐기면서 읽어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책이랍니다. 전나무숲. 313쪽. 1만6000원.
김훤주
내 몸안의 숨겨진 비밀, 해부학 - 사카이 다츠오 지음, 윤혜림 옮김, 윤호 감수/전나무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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