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황석영에게 실망하지 않는 방법

김훤주 2009. 5. 17.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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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카자흐스탄 방문에 동행해 이런저런 얘기를 통해 자기 생각을 밝혔다지요. 광주 항쟁을 광주 사태라 했다고도 하고 이명박을 일러 중도·실용이라 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협력을 하겠다고도 했다지요.

세상 사람들이 이를 두고 변절이니 뭐니 하며 실망했다는 얘기를 하지만 저는 전혀 실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14일 아침 <한겨레>에서 황석영 관련 기사를 봤는데 저는 그냥 무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게 황석영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전에는 있었습니다. 소설 <객지>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품입니다. 그이의 소설 작법을 꼼꼼하게 읽은 적도 있습니다.

실망은 기대의 반작용입니다. 기대가 있어야 실망을 합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을 하려야 할 수가 없는 법이지요. 제가 황석영에게 기대를 하지 않은 계기는 <황석영 삼국지>가 만들어 줬습니다. 찾아보니 2003년 발행했다고 돼 있네요.

황석영이 자기 힘으로 번역했다는 바로 그 삼국지.

그 즈음에, 황석영이 텔레비전 책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황석영은 사람들 듣고 웃어라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저로서는 아주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삼국지>를 왜 냈느냐는 물음에 그이는 "노후 대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진짜 제 귀가 미심쩍었습니다. 잘못 들었지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텔레비전에 황석영은 그 '노후 대책'에서 얘기를 풀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명성과 인기를 팔아 밥벌어 먹겠다."는 뜻으로밖에 비치지 않았습니다. '매문(賣文)'으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거리에 밟히는 장삼이사 같은 소설가 나부랑이라면 몰라도, 한 때 시대를 밝히는 대단한 노릇을 한 작가라면 할 수 없는 얘기이고 생각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시대를 밝히는 구실을 황석영이 하리라는 기대는 그 때 절반쯤 접었습니다. 나머지 절반을 접은 까닭도 <황석영 삼국지>에 있습니다. <삼국지> 서문을 보면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촘촘하게 번역을 했는지가 자랑하듯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황석영이 번역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지가 무슨 재주로 나관중을 번역을 해."였습니다. 물론 이이화 선생은 황석영이 미워서 이런 얘기를 해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나온 말씀이었습니다.

2004년 7월 16일 경남도민일보 주최 초청 강연회 '고구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를 마친 다음이었습니다. 황석영보다 이이화 선생이 연배가 위인데, 자꾸 이런 얘기를 하니 나중에 황석영이 자리를 피하더라는 말씀도 이이화 선생은 덧붙였습니다.

이 둘을 엮으면, 황석영이 매문을 하기는 했는데, 자기것을 팔아먹었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남의것을 팔아먹었으니 더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길거리 굴러다니는 장삼이사보다 못하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그 때 황석영에 대한 기대를 완전하게 버릴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이문열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이문열 삼국지>도 여기저기 '까마귀 남의 깃 주워모으듯' 남의 번역 끌어와 윤문(潤文)만 했을 뿐이지 않느냐고. 맞습니다. 바로 그래서, 저는 황석영에 대해서도 이문열과 마찬가지로 아무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망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황석영 그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한다 해도 저는 절대로 실망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하하.

김훤주

삼국지. 4: 삼고초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장정일 (김영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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