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해군 창설 주역 전호극 소령 학살당했다

기록하는 사람 2009. 5. 1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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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해군 창설에 참여했고, 해군교육사령부의 전신인 해방병단과 해안경비대, 항해학교 등에서 교관과 소령으로 복무했던 한 군인이 한국전쟁 발발 직후 마산형무소 재소자 학살 때 함께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군인의 유족은 "아버지가 백범 김구 선생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이승만 정권이 누명을 씌워 구속시켰고, 그로부터 3개월 후 백범 선생이 암살당했다"고 주장해 주목된다. 즉 이승만 정권이 사전에 백범과 가까운 군부 내 고급장교들을 제거한 다음, 암살을 실행했다는 주장이다.

유족 "백범 선생과 가까웠다는 이유로…"

한국전쟁 발발 직후 마산형무소에 복역 중이던 아버지 전호극(1913년생·해군 소령) 씨를 잃은 딸 전술손 씨는 "아버지가 1949년 2월 29일 진해의 관사에서 갑자기 끌려가 마산형무소에 수감되었으며, 그 사실을 알게 된 김구 선생이 그해 6월 26일 암살당하기 전까지 3개월간 어머니께 생활비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위원장 안병욱)가 지난 2월 발표한 <부산·경남지역 형무소재소자 희생사건> 결정문을 보면 전호극 소령이 1949년 5월 5일 군법회의 판결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1950년 마산형무소에 수감 중 행방불명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이와 함께 당시 <재소자인명부>와 <수용자신분장>을 근거로 군 관련 수감자 36명이 1950년 7월 5일 진해해군헌병대로 이송된 후 행방불명됐으며, 이들은 모두 집단살해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또 유족이 해군사령부를 통해 찾아낸 아버지의 복무기록에 따르면 학살된 전호극 소령은 일제시기 만주 목단강과 일본 동경에 거주하면서 동경통신전문학교을 나왔고, 해방 후 1946년 3월 1일 해군장교로 임관돼 진해에서 사관학교 교관과 함장 등을 거쳐 소령으로 진급한 것으로 돼 있다.

딸 전씨는 "아버지가 해군 창설의 주역 중 한 명이었으나, 김구 선생 암살 3개월 전 자신이 교장으로 있던 해군학교의 학생 몇몇이 여순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연행됐다"면서 "설사 죄가 있었다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재소자를 학살해버렸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씨는 또 "해군 역사자료실에서도 사소한 혐의로 이등병으로 강등된 사실만 알고 있을 뿐 학살당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해군의 역사를 제대로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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