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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언론

신문의 날에 민주열사 묘역을 참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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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문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이 1896년 창간된 날이기도 합니다. 그날을 기념하여 신문의 책임과 언론자유를 생각하는 날로 정한 게 신문의 날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문은 유례없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매체의 다양화도 요인 중 하나이긴 하지만, 신문 위기의 핵심은 바로 '신뢰의 위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신문 113년을 맞는 오늘, '아니면 말고'식 보도의 대표격이었던 <조선일보>가 이종걸 의원을 가리켜 "대정부 질문에서 전혀 근거없는 내용을 '아니면 말고'식으로 물어, 특정인의 명예에 심각한 타격" 운운하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소위 조중동은 전국 곳곳에서 불법 경품을 뿌려 여론시장을 교란시키고 있으며, 재벌과 손잡고 방송을 집어삼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묘역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해있었습니다.


오늘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 기자와 사원들은 신문의 날을 맞아 1960년 3·4월혁명의 열사들이 잠들어있는 '3·15국립묘지'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정부와 한나라당, 재벌과 조중동의 언론장악을 기필코 막아내겠다고 민주 영령들 앞에 다짐했습니다.


참배 후 영상관으로 이동해 '언론장악 시나리오'에 대한 영상물을 함께 시청하며 다시한번 의지를 다졌습니다.

왼쪽부터 이일균 노조지부장, 김병태 편집국장, 최정수 경영국장, 조재영 기자회장.


원래 경남지역 신문사 기자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문의 날이 되면 마산시 진동면에 있는 위암 장지연 묘소에 참배해왔습니다.


이일균 지부장이 언론악법 저지투쟁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언론장악 시나리오 영상을 보고 있는 기자와 사원들.


그러나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던 위암 장지연이 말기에는 일제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온갖 친일논설을 썼다는 사실이 저희 김훤주 기자의 취재로 알려진 뒤부터 그의 묘소 참배를 중단했습니다. 이후 3·15묘역으로 바꿔 매년 신문의 날을 맞아 참배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관련 글 : 장지연은 왜 친일지식인이 되었나)

오늘 참배에서 다소 아쉬웠던 것은 '축문'에 해당하는 우리의 결의문을 우리 노동조합이나 기자회에서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축문 형식의 다짐글을 써서 기자회장이나 노조위원장이 낭독한 후 참배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최근들어 그 전통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게 좀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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