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명문’의 본모습 보여준 고려대 김연아 광고

김훤주 2009. 4. 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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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대학교가 김연아를 활용한 광고를 3월 30일치 조선일보에 한 모양입니다. 4월 1일치 <경남도민일보> 20면에 이를 비판하는 기사가 났습니다. 보는 순간 이야말로 우리나라의 이른바 ‘명문’대학들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김연아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2009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하고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싣고 “민족의 인재를 키워온 고려대학교, 세계의 리더를 낳았습니다.”는 글을 크게 새겼습니다.


이어서 좀 작은 크기로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한 고대생 김연아! 그녀의 눈물은 대한민국의 감동입니다. 감동을 주는 글로벌 인재-고려대학교가 키웁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입학한지 한 달도 채 안 된 선수를 마치 고려대가 만들어낸 것처럼 했습니다.


2.

저는 이것이 바로 고려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명문 또는 일류라고 거들먹거리는 다른 모든 대학들의 숨겨진 본모습이라고 봅니다. 이른바 ‘명문’을 비롯한 우리나라 모든 대학들은 학문을 잘할 소질이 있는 사람을 뽑지 않고 시험 점수 높은 사람을 뽑습니다.


지적 호기심과 창의성과 비판정신이 넘쳐나는 사람을 뽑는 대신, 초·중·고 시험과 대입 수능 시험에서 많은 점수를 받은 사람을 차례대로 뽑아갑니다. 이렇지요. 서울대에서 먼저 성적순으로 거둬가고 나면 고려대/연세대가 남은 사람들을 성적순으로 거둬갑니다.


그 다음에는 연세대/고려대 다음으로 명문이라는 대학들이 나서서 다시 남은 사람들을 성적순으로 데려가고 그 다음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남은 사람들을 줄 세워 성적순으로 추려갑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보자면 바로 이런 것이 우리나라 대학 입학 현실입니다.


3.

바로 이렇기 때문에 사법고시 공인회계사 시험 외무고시 행정고시 따위에서, 합격자 전체를 두고 볼 때 서울대 출신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고려대/연세대 출신이 많고 그 다음으로 그 다음 ‘명문’대학 출신이 많은 것은 하나도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냥 당연한 일입니다. 속되게 말해서, 원래부터 공부 잘하는 아이들 데려왔는데 그 친구들이 성적이 떨어지면 오히려 이상하고 놀랍고 대단한 일이지 그대로 똑같은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데 무엇이 대단하다고 하겠습니까?


진짜 스스로를 명문대학이라 내세우려면, 비유 삼아 말하자면 청석을 주워 와서 옥돌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을 받아서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만들 수 있어야 진짜 명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명문’도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서울대도 그리 하지 않고 고려대도 그리 하지 않고 연세대도 그리 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두드러지게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잘만 가르치면 크게 깨치고 나갈, 여러모로 가능성이 있는 인재 따위는 아예 찾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4.

‘명문’대학의 목적은 공부 잘 가르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금 서열을 대충 그대로 유지하면서, 출세한 동문을 든든한 배경으로 삼은 위에, 이미 확보한 위신과 권위를 바탕삼아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천년만년 기득권을 누리는 데 있습니다.(기득권이 무엇인지는 따로 깊이 있는 검토와 토론이 필요하겠습니만.)


대신 이런 것은 기를 쓰고 합니다. 원래부터 공부 잘하는 사람을 데려와 놓고도, 마치 서울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잘하는 듯이, 마치 연세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잘하는 듯이, 마치 고려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잘하는 듯이 이미지를 조작하는 것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번 고려대학교의 김연아 활용 홍보 광고는, 우리나라의 이른바 ‘명문’대학들의 이 같은 본모습이랄까 속성이랄까 본질이랄까를, 전혀 꾸미거나 숨기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 훌륭한 보기라고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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