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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이승만·박정희가 훼손한 효창원,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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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침략국의 괴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며, 1910년 3월 26일 일제의 뤼순(旅順)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지도 99주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1세기가 다 되도록 아직 의사의 유해조차 찾아 모셔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안중근 평전>(시대의 창)을 펴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어느 중학생이 '안중근 의사가 안과의사냐?'고 물었다는 얘기가 있고, 안중근과 안창호를 잘 분별하지 못하는 고등학생도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사람도 드물고 안 의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문 실정이다. 안중근은 몰라도 체 게바라는 훤히 꿰는 사람이 적지 않는 우리 실정이 안타깝다."

마지막 대목의 "안중근은 몰라도 체 게바라는 훤히 꿰는…"이라는 말이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친일신문 <조선일보>가 안중근 의사 기념관 신축, 동상 재건립, 국제학술회의, 의거기념마라톤대회 등 기념사업을 하고, 냉전보수주의 작가 이문열이 <조선일보>에 안중근 의사를 다룬 소설을 연재하는 아이러니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개탄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김삼웅 전 관장과 정운현 전 언론재단 연구이사가 지난 28일 서울 효창원에 있는 안 의사의 가묘를 참배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해주 사람입니다. '경남'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분을 <경남도민일보>가 취재해도 좋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남한에 있는 어떤 지역신문도 안 의사를 다룰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주말이기도 하여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혈을 끊은 효창원

서울 효창원은 용산구 효창동과 청파동, 그리고 마포구 공덕동에 걸쳐 있습니다. 사적 제330호인 이곳의 공식 이름은 '효창공원'입니다. 원래 조선후기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처음에는 '효창묘'라고 했으나, 고종 7년(1870년)에 '효창원'으로 승격되었는데, 일제가 문효세자의 묘를 강제로 옮기면서 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독립운동 3의사의 유해를 모셔와 이곳에 안장했고, 그 옆에 언젠가 모셔와야 할 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도 만들어 두었습니다. 1948년에는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의 유해도 이곳에 모셨고, 이듬해인 1949년에는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김구 선생도 이곳에 안장됐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곳은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선열들의 묘원이 되었는데, 용이 드러누워 있는 형상의 완만한 산이어서 용산(龍山)으로 불렸고, 묘원 바로 앞에는 넓은 연못까지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효창원에 손수 안장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와 안중근 의사 가묘를 참배하는 생전의 백범 김구 선생(가운데).


그러나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를 고깝게 여긴 나머지 명당의 혈(穴)을 없애고자 묘원 앞의 연못을 메우고 나무를 잘라내 그곳에 운동장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합니다.

이승만은 당초 그 운동장을 10만 평이 넘는 대규모로 지으려 했으나 심산 김창숙 선생이 '효창공원을 통곡함'이라는 시를 짓고, 드러누워 반대하는 등 여론의 반발이 거세자 현재 규모 정도로 축소해 끝내 축구장을 짓고 말았습니다. 그 축구장이 바로 지금의 '효창운동장'입니다.

백범기념관 입구에서 본 효창운동장. 이곳은 원래 연못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후 박정희 정권은 효창원 정수리에 해당하는 북쪽 35m 거리에 반공투사위령탑을 세워 또 한 번 정기를 훼손하고 열사들을 모욕했습니다. 박 정권은 또 김구 선생 묘 근처에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대한노인회중앙회와 서울시연합회를 건립해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 효창공원을 민족정기가 서린 독립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사실상 물건너 간 상태입니다.


반공기념탑, 원효대사 동상, 자연학습장, 대한노인회 중앙회와 서울시연합회, 배드민턴장 등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는 독립지사 묘원.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구 선생 묘소 옆에 백범기념관이 건립돼 추모와 교육의 조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이곳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서울에서도 드물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묘이긴 하지만 아무런 묘비나 표지판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이 가묘에 참배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유해매장 추정지의 흙과 합토식을 치르다

김삼웅 전 관장과 정운현 전 이사는 "가묘이긴 하지만 유해를 꼭 모셔와야 한다는 백범 김구 선생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사실상 안중근 의사의 혼이 깃들어 있는 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100년이 다 되도록 찾지 못한 의사의 유해를 꼭 되찾아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는 의미에서도 가묘 참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묘비도 없는 안중근 의사 가묘. 묘단에 김삼웅 전 관장이 봉정한 '안중근평전]과 태극기가 놓여있다.


이에 따라 김삼웅·정운현 두 분이 올해부터 안 의사의 순국일에 맞춰 가묘 참배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인터넷에 올렸고, 그걸 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모두 열 네 명이었습니다. 정확한 순국일인 26일보다 이틀 뒤에 이뤄진 참배행사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식(儀式)이 거행되었습니다.

순국일에 맞춰 지난 26일 중국 랴오닝성 뤼순감옥을 찾아간 두 분이 안 의사의 유해가 묻혀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감옥 뒷산의 흙을 파와 효창원의 가묘에 '합토식(合土式)'을 한 것입니다. 흰 보자기에 뤼순감옥 뒷산의 흙을 담아온 정운현 전 이사는 "이 흙에 안 의사의 혼백이 담겨 있으며, 이를 백범의 의지가 깃든 가묘와 합토함으로써 한층 의미있는 묘역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참석한 열 네 명은 줄을 지어 모두 한 줌씩 정성스레 합토의식을 치렀습니다.

김삼웅, 정운현 두 분이 뤼순감옥 뒷산 유해매장추정지에서 가져온 흙.

참석자들이 정성스레 합토식을 하고 있다.


이 의식과 함께 김삼웅 전 관장과 출판사 '시대의 창' 대표가 <안중근 평전>을 안 의사께 봉정하고 그의 뜻을 기렸습니다.


저자인 김삼웅 전 관장은 묘역에 둘러앉은 참석자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삶에 대한 특강도 해주었습니다. 그는 "이토를 처단한 것으로만 안중근을 아는 사람이 많지만, 그 외에도 국채보상운동·교육사업·의병전쟁·단지동맹·공판투쟁·동양평화론 저술은 물론 죽음에 임하여 의연한 모습 등은 만대를 두고 기려야 할 겨레의 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의거 이후 재판 과정 및 사형 판결 이후 일제가 '내가 이토를 오해했다는 한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다'고 끊임없이 회유했지만, 끝까지 의연하게 죽음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효창원 안중근 의사 가묘에서 진행된 김삼웅 전 관장의 안중근 특강.


안 의사는 순국 전날 뤼순 감옥에 찾아온 두 동생에게 아래와 같은 최후의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박제화된 기념사업이 안타까운 사람들

참석자들은 이어 옆에 있는 3의사 묘역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소에도 절을 올린 후, 백범기념관을 둘러봤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여기서야 '백범(白凡)'이라는 호가 '백정(白丁)'과 '범부(凡夫)'를 합친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로선 가장 미천한 직업이라고 여겼던 백정과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백범이 새겨넣은 유방백세의 마지막 글자.


백범은 3의사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효창원에 조성한 후, 묘단 아래의 돌에 '유방백세(遺芳百世)'라는 네 글자를 새겨넣었습니다. '꽃다운 이름이여, 백세에 영원하라!'는 뜻이지만, 오히려 최근들어 효창원은 더 쇠락하고 안중근 의사마저 <조선일보>에 의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백범기념관을 나오는데, 정원의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황토색으로 말라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소나무를 가리키며 그 말을 했더니 김삼웅 관장이 씁쓸하게 읊조렸습니다.

"백범 정신이 죽어가는데, 소나무인들 견딜 재간이 있겠어요?"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


참배를 마친 열 네 명의 참석자들은 올 10월 26일 의거 100주년을 맞아 의거의 현장인 하얼빈역을 순례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또 내년 3월 순국일에는 뤼순감옥과 유해 매장 추정지를 찾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인터넷에 '안중근을 따르는 사람들(
http://cafe.daum.net/anjunggeun)'이라는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관변화·보수화·박제화해가는 안중근 기념사업과 달리 진정 마음으로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현실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효창원 입구.

김삼웅 전 관장이 봉정한 '안중근 평전'(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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