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침략국의 괴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며, 1910년 3월 26일 일제의 뤼순(旅順)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지도 99주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1세기가 다 되도록 아직 의사의 유해조차 찾아 모셔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안중근 평전>(시대의 창)을 펴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어느 중학생이 '안중근 의사가 안과의사냐?'고 물었다는 얘기가 있고, 안중근과 안창호를 잘 분별하지 못하는 고등학생도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사람도 드물고 안 의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문 실정이다. 안중근은 몰라도 체 게바라는 훤히 꿰는 사람이 적지 않는 우리 실정이 안타깝다."

마지막 대목의 "안중근은 몰라도 체 게바라는 훤히 꿰는…"이라는 말이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급기야 친일신문 <조선일보>가 안중근 의사 기념관 신축, 동상 재건립, 국제학술회의, 의거기념마라톤대회 등 기념사업을 하고, 냉전보수주의 작가 이문열이 <조선일보>에 안중근 의사를 다룬 소설을 연재하는 아이러니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개탄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김삼웅 전 관장과 정운현 전 언론재단 연구이사가 지난 28일 서울 효창원에 있는 안 의사의 가묘를 참배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해주 사람입니다. '경남'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분을 <경남도민일보>가 취재해도 좋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남한에 있는 어떤 지역신문도 안 의사를 다룰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주말이기도 하여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혈을 끊은 효창원

서울 효창원은 용산구 효창동과 청파동, 그리고 마포구 공덕동에 걸쳐 있습니다. 사적 제330호인 이곳의 공식 이름은 '효창공원'입니다. 원래 조선후기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처음에는 '효창묘'라고 했으나, 고종 7년(1870년)에 '효창원'으로 승격되었는데, 일제가 문효세자의 묘를 강제로 옮기면서 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등 독립운동 3의사의 유해를 모셔와 이곳에 안장했고, 그 옆에 언젠가 모셔와야 할 안중근 의사의 가묘(假墓)도 만들어 두었습니다. 1948년에는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선생의 유해도 이곳에 모셨고, 이듬해인 1949년에는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김구 선생도 이곳에 안장됐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곳은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선열들의 묘원이 되었는데, 용이 드러누워 있는 형상의 완만한 산이어서 용산(龍山)으로 불렸고, 묘원 바로 앞에는 넓은 연못까지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효창원에 손수 안장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의사와 안중근 의사 가묘를 참배하는 생전의 백범 김구 선생(가운데).


그러나 당시 이승만 정권은 이를 고깝게 여긴 나머지 명당의 혈(穴)을 없애고자 묘원 앞의 연못을 메우고 나무를 잘라내 그곳에 운동장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합니다.

이승만은 당초 그 운동장을 10만 평이 넘는 대규모로 지으려 했으나 심산 김창숙 선생이 '효창공원을 통곡함'이라는 시를 짓고, 드러누워 반대하는 등 여론의 반발이 거세자 현재 규모 정도로 축소해 끝내 축구장을 짓고 말았습니다. 그 축구장이 바로 지금의 '효창운동장'입니다.

백범기념관 입구에서 본 효창운동장. 이곳은 원래 연못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후 박정희 정권은 효창원 정수리에 해당하는 북쪽 35m 거리에 반공투사위령탑을 세워 또 한 번 정기를 훼손하고 열사들을 모욕했습니다. 박 정권은 또 김구 선생 묘 근처에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대한노인회중앙회와 서울시연합회를 건립해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 효창공원을 민족정기가 서린 독립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명박 정부로 바뀌면서 사실상 물건너 간 상태입니다.


반공기념탑, 원효대사 동상, 자연학습장, 대한노인회 중앙회와 서울시연합회, 배드민턴장 등 이질적인 것들이 섞여 있는 독립지사 묘원.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구 선생 묘소 옆에 백범기념관이 건립돼 추모와 교육의 조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이곳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서울에서도 드물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묘이긴 하지만 아무런 묘비나 표지판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이 가묘에 참배하는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유해매장 추정지의 흙과 합토식을 치르다

김삼웅 전 관장과 정운현 전 이사는 "가묘이긴 하지만 유해를 꼭 모셔와야 한다는 백범 김구 선생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사실상 안중근 의사의 혼이 깃들어 있는 묘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100년이 다 되도록 찾지 못한 의사의 유해를 꼭 되찾아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는 의미에서도 가묘 참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묘비도 없는 안중근 의사 가묘. 묘단에 김삼웅 전 관장이 봉정한 '안중근평전]과 태극기가 놓여있다.


이에 따라 김삼웅·정운현 두 분이 올해부터 안 의사의 순국일에 맞춰 가묘 참배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인터넷에 올렸고, 그걸 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모두 열 네 명이었습니다. 정확한 순국일인 26일보다 이틀 뒤에 이뤄진 참배행사에서는 아주 특별한 의식(儀式)이 거행되었습니다.

순국일에 맞춰 지난 26일 중국 랴오닝성 뤼순감옥을 찾아간 두 분이 안 의사의 유해가 묻혀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감옥 뒷산의 흙을 파와 효창원의 가묘에 '합토식(合土式)'을 한 것입니다. 흰 보자기에 뤼순감옥 뒷산의 흙을 담아온 정운현 전 이사는 "이 흙에 안 의사의 혼백이 담겨 있으며, 이를 백범의 의지가 깃든 가묘와 합토함으로써 한층 의미있는 묘역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참석한 열 네 명은 줄을 지어 모두 한 줌씩 정성스레 합토의식을 치렀습니다.

김삼웅, 정운현 두 분이 뤼순감옥 뒷산 유해매장추정지에서 가져온 흙.

참석자들이 정성스레 합토식을 하고 있다.


이 의식과 함께 김삼웅 전 관장과 출판사 '시대의 창' 대표가 <안중근 평전>을 안 의사께 봉정하고 그의 뜻을 기렸습니다.


저자인 김삼웅 전 관장은 묘역에 둘러앉은 참석자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삶에 대한 특강도 해주었습니다. 그는 "이토를 처단한 것으로만 안중근을 아는 사람이 많지만, 그 외에도 국채보상운동·교육사업·의병전쟁·단지동맹·공판투쟁·동양평화론 저술은 물론 죽음에 임하여 의연한 모습 등은 만대를 두고 기려야 할 겨레의 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의거 이후 재판 과정 및 사형 판결 이후 일제가 '내가 이토를 오해했다는 한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다'고 끊임없이 회유했지만, 끝까지 의연하게 죽음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효창원 안중근 의사 가묘에서 진행된 김삼웅 전 관장의 안중근 특강.


안 의사는 순국 전날 뤼순 감옥에 찾아온 두 동생에게 아래와 같은 최후의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박제화된 기념사업이 안타까운 사람들

참석자들은 이어 옆에 있는 3의사 묘역과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소에도 절을 올린 후, 백범기념관을 둘러봤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여기서야 '백범(白凡)'이라는 호가 '백정(白丁)'과 '범부(凡夫)'를 합친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로선 가장 미천한 직업이라고 여겼던 백정과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백범이 새겨넣은 유방백세의 마지막 글자.


백범은 3의사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효창원에 조성한 후, 묘단 아래의 돌에 '유방백세(遺芳百世)'라는 네 글자를 새겨넣었습니다. '꽃다운 이름이여, 백세에 영원하라!'는 뜻이지만, 오히려 최근들어 효창원은 더 쇠락하고 안중근 의사마저 <조선일보>에 의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백범기념관을 나오는데, 정원의 소나무 예닐곱 그루가 황토색으로 말라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소나무를 가리키며 그 말을 했더니 김삼웅 관장이 씁쓸하게 읊조렸습니다.

"백범 정신이 죽어가는데, 소나무인들 견딜 재간이 있겠어요?"

백범 김구 선생의 묘역.


참배를 마친 열 네 명의 참석자들은 올 10월 26일 의거 100주년을 맞아 의거의 현장인 하얼빈역을 순례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또 내년 3월 순국일에는 뤼순감옥과 유해 매장 추정지를 찾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인터넷에 '안중근을 따르는 사람들(
http://cafe.daum.net/anjunggeun)'이라는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관변화·보수화·박제화해가는 안중근 기념사업과 달리 진정 마음으로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현실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효창원 입구.

김삼웅 전 관장이 봉정한 '안중근 평전'(시대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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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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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ww.photoni.com/blog Photoni 2009.03.30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동네에서 태어나고
    이제 두 아이를 그 동네에서 키우면서도...
    흔한 공원 중 하나정도로 밖에 몰랐던
    어리석음을 글을 읽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상의 얼과 의지가 담긴 그곳...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돌아오는 주말... 40개월 아들녀석과 함께 의미를 곱씹으며
    조용히 거닐어보고 싶습니다.

    좋은 글 좋은 생각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 Favicon of http://freesopher.tistory.com freesopher 2009.03.30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바로 아래 용문시장에 자리를 잡은 지도 1년이 넘어가는데 아직 효창공원을 제대로 거닐어 본 적이 없군요. 김주완님 글 읽고, 한번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우연 2009.03.30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또한 효창공원 근처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효창공원이 그런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효창운동장에 경기 구경을 가면서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앞으로는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위의 글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1.친일 신문이었던 <조선일보>가 안중근 의사를 '이용'하고 이문열씨가 소설을 쓴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고 하셨습니다. 특정 신문사,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안티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이 신문이 기념사업을 한다는 것, 저 또한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왜 <조선일보>에서 나서기 전에 다른 곳에서는 기념 사업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 저는 이같은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지역신문이라고 하지만 <경남도민일보>에서라도 안 의사를 추모하고 선양하는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김삼웅 선생이 집필해온 평전을 연재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친일에서 자유로운 매체들, 이를테면 MBC나 한겨레, 한국일보 같은 곳에서는 왜 기념사업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입니다.

    2.유해를 찾지 못해 가묘를 만들 수밖에 없지만 안중근 의사는 이름을 남겼고 지금 이렇게나마 추모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런 표현이 어떨는지 모르겠으나, '행복'한 편에 속합니다. 1920년대 이후 중국 대륙에서 몸바쳐 독립운동을 하고도 이름 한 자도 남기지 못한 채 죽어간 이들에 비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누군가 하면, 그 대표로 김산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김산은 중국공산당의 대장정 후 연안동굴에서 님 웨일즈를 만나 <아리랑>의 주인공이 되면서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렇게라도 이름을 남긴 김산에 대해, 우리는 후손으로서 책을 사고 읽은 것 외에 무엇을 했는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 것도 한 게 없습니다.
    이름이라도 남긴 김산은 그 그룹에서는 그래도 행복한 편입니다. 한위건을 아십니까? 정율성은 또 어떻고요? 김산보다 훨씬 더 '위대한 투쟁'을 벌인 천재적인 독립투사들입니다. 저들은 독립운동의 한 방편으로 중국공산당에 들어가 마오쩌뚱이 이끈 대장정에까지 참여하면서 일생을 독립투쟁에 바친 분들입니다. 남한에서는 '공산당'이라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계열의 동북항일연군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되었던 분들입니다. 김일성은 무정 장군 등 연안파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작업부터 벌여, 김학철 선생 같은 이도 연변으로 도망가게 만들었습니다. 중국공산당에서야 중국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중요시하지 않지요.
    비록 몸은 중국공산당에 담았으나, 저 분들이 아무리 공산주의자라고 하나, 저 분들은 엄연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그 누구보다 가열차게 맞붙어 싸웠습니다. 연변대의 원로 역사학자께서 "중국 공산당에 속해 독립투쟁을 한 투사들에 비하면 상해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민족주의자들은 참 편안하게 싸운 것"이라고 지적한 내용을 과거 <역사비평>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위건은 김삼룡 정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별이었다고 합니다. 정율성은 뛰어난 작곡가로서 지금도 불리는 '중국인민해방군가'(제목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요, 이론가들로서, 조선 독립의 한 방편으로서 중국 공산당에 스스로 편입하여 싸운 셈이지요.
    이처럼 남과 북에서, 해방 이후의 이념 혹은 권력투쟁 때문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독립투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숫자조차 헤아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몇년 전 중국에 출장을 갔다가 그 후손을 우연히 만나 내용을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 후손들과 대학의 연구자들이 투쟁의 흔적을 찾아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알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공산당원이었다고 하나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저들을 판단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으로 해야지, 후대에 나라가 갈리고 이념이 갈라졌다 해서 저 분들의 숭고한 업적을 이렇게까지 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천, 수만의 독립투사들을 이제는 우리가 기록을 남기고 기억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월북 시인들이 해금된 지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하물며 예술가들도 해금이 되어 이름을 널리 알리는 판인데 목숨을 걸고 싸우고, 투옥되고 고문 받고 죽어간 이들은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 겁니까? 중국에 갔다가 기막힌 사연을 전해 듣고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연구자들이나 언론 종사자들께서 하루빨리 관심을 기울여주셔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분들을 기억하는 중국의 후손들조차도 이제는 연로하여,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증언조차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침 하얼빈에 가신다니, 가시는 김에 이쪽에도 관심을 기울여주시면 어떨는지요? 십수년 전 독립기념관에다 저 분들의 유적을 들여온다는 짤막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입니다.

  4. 이재원 2009.03.30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효창운동장으로 알고있는 곳이 그런 사연을 있을 줄이야 근데 박대통령, 이승만대통령은 머가 고까워서
    고의로 운동장을 만들고 훼손했을까요

  5. 빛고을 2009.03.30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주 518 운동이 최고지.
    그까이 항일운동을 내민다냐?

  6. 정의맨 2009.03.30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목이 빨갱이스러운데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생각을 밝히시길..

    너의 양심따윈 믿지도 않으니까 너의 부모의 이름을 걸고 말하길~

    만약 거짓을 말한다면 너의 부모는 창녀이고 기둥서방이다라고 생각하며..

    빨갱이들은 양심없이 불리할땐 거짓을 말하는 종자임을 알지만 물어는 본다!

    • ㅋㅋㅋ 2009.03.30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는 당신의 정체는 뭐요?

      친일파?
      ㅋㅋㅋㅋ

    • Favicon of http://jsb3655@yahoo.co.kr 소피스트 2009.03.30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준하고는... ㅉㅉ 누가 정신병자 아니랄까봐 빨갱이 타령은 어지간히도 하네... 밥 아깝다 빨리 뒤져라...

    • 쯧쯧 2009.03.30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하는 꼬락서니가 영..

      입에도 걸래를 물었군.

      뭐 할 말이 없으면 빨갱이로 몰아부치니 원

    • 대갈통 2009.03.30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는 사람도아니고 한마리 짐승에 가깝구나..
      밥은먹구다니냐

    • 정의맨에게 2009.10.28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의가 뭔지는 알고 빨갱이를 운운하는 것이더냐.

      애국열사의 묘비에 얽힌 사연이 소개되었거늘 어찌하여 빨갱이란 단어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부모욕을 서스름 없이 할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정의로와서 종자타령을 하며 귀를 닫고 묻는 것인가?

  7. 정의맨 2009.03.30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주사태를 민주화라고 한 것은 김영삼의 실수지!

    그 어떠한 조사도 없이 광주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한거지


    난 존나도놈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광주폭동 당시 간첩들이 그 기회를 이용했다는 말이 많은데 진짜 민주화운동이라면 재조사하자고

    그러나 존나도놈들은 절대 반대하더군~

    뭐가 불안해서인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정의맨에게 2009.10.28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 100만번 양보하여 민주화운동을 광주폭동이라 치자.

      반대로 되묻자하면 그럼 어찌하여 광주폭동이 일어 났는지는 알고서 폭동이라 씨부리는 게냐?

      "그 어떠한 조사도 없이 광주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한거지"

      네이버나 다음등의 포털사이트에서 518 숫자 세개만 쳐도 어떠한 조사가 이루어졌는지...당시의 상황과 수많은 외국 인용보도와 사진들이 넘쳐난다.

      무지하면 무식함을 자랑으로 여기고

      자신이 모르면 남도 모른다고 생각하니..행태가 볼만 하겠구나.

      난 전라도인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전씨가 저지른 쿠데타에 대한 합리화의 방편으로 무수하게 죽어간 광주시민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8. 정운현 2009.03.30 17: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봤습니다.
    임시로 만든 카페도 구경했구요.
    출발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길 기대해봅니다...

  9. 반공 2009.03.30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국열사의 기를 받아 반공투사위령탑을 건립한것이겠지요.
    반일만큼 중요한게 반공 아니겠습니까?

    • 헤라 2009.04.04 0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아닌것 같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민족의 번영과 통일을 위해 반공을 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반공 멸공 정책을 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비판 세력을 몰살시키는데 반공이라는 이념을 덧칠을 했구요.

  10. 나는 귀신이 싫어요 2009.03.30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주완 기자님!

    신문사의 정식 기자라고 하시니 여쭤보겠습니다.

    혹시 신이라도 내리셨는지요? 아니면 풍수리지 신봉자입니까?

    "이승만 정권은 이를 고깝게 여긴 나머지 명당의 혈(穴)을 없애고자 묘원 앞의 연못을 메우고 나무를 잘라내 그곳에 운동장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합니다."라고 쓰셨는데 인용구에 대해 어떠한 검증절차를 거치셨는지요?
    혹시 귀신에게 물어보셨습니까?

    또 "뿐만 아니라 이후 박정희 정권은 효창원 정수리에 해당하는 북쪽 35m 거리에 반공투사위령탑을 세워 또 한 번 정기를 훼손하고 열사들을 모욕했습니다. 박 정권은 또 김구선생 묘 근처에 대표적인 보수단체인 대한노인회중앙회와 서울시연합회를 건립해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런 괴상한 논리는 귀하의 생각인가요?

    그리고 龍山의 역사적인 유래는 효창원과 아무 관계없습니다.
    앞으로는 그냥 "나는 이승만 박정희가 싫어요"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밝히고 글을 올리시죠.

    참! 이 글은 논점은 안중근의사에 관한내용이 맞긴 맞는거죠?

  11. 반골 2009.03.30 2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 중근 의사님의 견리사위 견위수명이란 말이 불현듯 생각나네요...

    • 반공 2009.03.30 2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견리사위는 먼가요? 이익을 보면 사위를 보라는건가요?
      견리수명은 또 머지? 견위수명 아닌가?

      나는 귀신이 싫어요님 말씀대로 좀 알고 떠듭시다.

  12. Favicon of http://blog.daum.net/ymj5800 물망초5 2009.03.31 0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남지원 제1형사부에서 김형석판사가 심리하는2008고정1770사건입니다.
    약식명령이 확정이 되고 정식재판청구기간이 경과가 되었고
    정식재판회복청구도 기각결정이 되고
    정식재판청구구권회복청구기각 결정에 대한 항고도 기각결정이 났음에도
    그보다 이 전에 정식재판은 진행이된 기막힌 불법재판을 진행하고 있음을
    법원에서 부패를 은폐,조작하기에 모든국민께 이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13. 쥐랄병 하고있네... 2009.04.02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대도 안간 인간들이 술자리에서는 군대에 대해서 더 빠삭하게 이야기 한다고 하더니만,,,딱 그꼴일세~
    경남에서 서울에 하루 올라와서는 용산 풍수지리가 어떻고 혈이 어떻고 명당자리니 아니니...ㅋㅋㅋㅋ
    아주 잘났습니다,,,,듣는 사람은 참 갓잖아서 웃음밖에 안나오는군,,
    이승만.박정희가 효창공원의 명당자리를 꼴갑게 여겨서????? 효창을 웨손했다고라,,,,,,??????
    어디서 그런 내용을 발췌해서 이렇게 용감하게 이런 포스팅을 하는지????
    출처나 명백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는 주제에,,,
    거짖말이라도 100번만 대중들에게 말하면 진실이된다라는 빨갱이식 유언비어는 그만 하시오.....
    이런말 듣기가 더럽고 꼴값스러우면 출처나 명백한 자료를 재시해보던지,,,,
    명색히 기자라는 양반이 그정도 못하겠어???
    안그래,,,ㅋㅋㅋㅋㅋㅋ

    • 개념이 피서갔구나 2009.07.30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넌 그럼 아니라는 증거를 댈수 있냐?
      이 개란후라이 십장생아
      그리 나불대면 재밌냐?

  14. 반성중 2009.04.02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고 깊이 반성하고 갑니다. 글을 읽고 효창원이 어떤곳이란걸 처음 알았어요. 슬픈뒷사연이 숨겨져있군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시절이 어수선한이때에 김구선생님과 안중근의사처럼 진정한 민족지도자가 없음이..... 아쉽고 안타깝고 슬프군요... 기회가 되면 효창원을 꼭 들리고 싶습니다.

  15. Favicon of http://klis.net 레위인 2009.04.03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어렸을적 백범기념관에 처음 갔을때가... 87년도였던가 그랬습니다. 그당시에는 백범기념관이 청파초등학교 밑, 목욕탕 앞의 작은 건물 2층에 있었습니다. 한 15평 남짓 되는 작은 공간이었는데요,

    거기에 친구랑 둘이서 책가방을 메고 가면, 안경쓴 할아버지께서 신기한 눈으로 윤봉길 의사의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쳐주려고 설명을 하였지만, 어린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랬습니다.

    심심하면 자주 놀러갔었던 곳이 백범기념관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그곳에 가면 그냥, 백범 김구 선생님의 피가묻은 하얀옷이 신기했고 그랬었죠(지금도 전시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때 백범기념관에 놀러가곤 해서 그런지 그래도 삼열사라는곳은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분을 모신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다행이도, 제가 나온 청파국민(초등)학교 교가에 삼열사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지금 보면 교육적이고 자라나는 후세에게 효창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가사임을 깨닫습니다.

    제 머릿속에 기억나는대로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가사의 일부분이 틀렸을수도 있습니다)

    ----------------------------------------
    노량의 유유한강 길이흐르고
    효창의 낙랑장송 우거진숲속
    거룩한 삼열사의 피는흐른다
    나가자 한결같이 청파어린이
    ----------------------------------------


    제가 어렸을때엔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오지 않은 상태여서 그냥 가운데 묘가 윤봉길 의사의 묘인것만 알았지만, 얼마후 윤봉길 의사의 유해가 중국에서 이송되었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습니까?



    역사는 흐르고 있습니다.
    지구는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하루빨리 친일파가 청산되어 우리 세대가 후세에 떳떳한 선조가 되길 바랍니다.

  16. 아직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2014.08.09 0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식적으로 어긋난 댓글들 있죠. 빨갱이라거나 광주 등 이상한 말이나 시비거는 댓글들. 모두 청와대나 국정원 알밥들이구요(댓글 알바), 그 글에다 답글을 달면 보너스로 돈을 더 받습니다.
    무시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다들 아시듯이 원래 부패한 정권이 국민들을 분열시킬때 쓰는 아주 오래된 전형적인 수법이죠! 국민들이 뭉치면 강하다는걸 아니까요. 이용도구가 티비에서 인터넷으로 확장되었을 뿐입니다. 알밥들 무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