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엄마 팬티 소재로 시(詩) 쓰는 재주

김훤주 2009. 4. 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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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시나 소설을 쓰는 데 글감으로 무엇을 쓰면 안 된다고 제한돼 있지는 않지만, 어머니 팬티를 소재 삼아 쓴 시는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보니까 참 재미가 있습니다.


분홍 꽃 팬티


어머니 병원 생활하면서

어머니 빨래 내 손으로 하면서

칠순 어머니의 팬티

분홍 꽃 팬티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의 꽃 피던 이팔청춘

아버지와 나눈 사랑의 은밀한 추억

내가 처음 시작되는 그곳

분홍 꽃 팬티에 감추고 사는

어머니, 여자라는 사실 알았다

어느 호래자식이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했나

성(性)을 초월하는 거룩한 존재라고

사탕발림을 했나

칠순을 넘겨도

팔순을 넘겨도

감추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여자다

분홍 꽃 팬티를 입고 사는

내 어머니의 여자는

여전히 핑크빛 무드

그 여자 손빨래하면서

내 얼굴 같은 색깔로

분홍 꽃물 드는데


어머니는 ‘여자’를 뛰어넘은 존재라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 모든 것 다 희생하는 숭고한 존재라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단숨에 ‘격파’하는 힘이 느껴집니다.

이런 시도 느낌이 끼쳐옵니다. 다 옮기면 너무 길 것 같아서, 뒷부분만 적어봅니다. 제목은 ‘불국사역 옆 시외버스 정류소-경주 남산 44’입니다. 저도 거기 들른 적이 있습니다만.

(………………)

마지막 버스 기다리고 있는 사내가

아사달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아사달은 서라벌 석수장이와는 다르게

손이 고왔다, 아사달 그 손 불쑥

마고할미 앞으로 내밀었을 때

마고할미 가슴 신라 때처럼

혼비백산 정신없이 콩콩 뛰었지만

아사달 배웅하러 나온 여자가

아사녀일 걸 알고는 침묵했다

지금 작별하며 동쪽으로 떠나는 사내와

서쪽으로 돌아가는 여자는 모르지만

마고할미 돋보기안경 속의 눈으로는

윤회에 윤회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영혼의 색깔과 향기 읽을 수 있어

아사녀에겐 아직도 천 년 전

그 아픈 눈물 내음 알싸하게 풍긴다

아사녀,라고 부르기만 해도

영지에 담긴 눈물 다 쏟아져 나와

깊고 넓은 눈물바다 만들 것 같다

어제는 요석궁의 젊은 요석 공주가

술 취해 마지막 버스로 돌아왔고

오늘 새벽 첫차로 늙은 승려 원효가

흰 눈썹 날리며 훠이훠이 떠나갔다

마고할미 반갑게 알아보았지만

설총의 안부 전해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부부 누구도 중매쟁이

마고할미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마고할미 경주 남산 쪽을 바라본다

서라벌을 떠나는 마지막 버스가

불국사역 옆 시외버스 정류소로

성긴 눈발 헤치며 들어오고 있다

아이쿠! 오늘 버스 기사는 아내 잃은 처용이다


여기 마고할미는 정류소 앞에서 껌이나 오뎅을 파는 아주머니인지도 모릅니다. 아사달은 허름한 작업복 걸친 중년일 수도 있겠고, 그이를 바래다주러 나온 아사녀는 흙손 차림으로 사과밭에서 달려나왔을 수도 있겠습니다.

나무의 운명을 슬퍼하는 시도 있습니다.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고 드는 느낌을 털어놓은 시도 있습니다. 이런! 바다가 마구 욕을 해대는 시도 있군요.


백지의 피


그 시인 출판 기념식장에서 구겨진 백지 묶음 주웠다

처녀시집 묶어온 자리에 덧댄 고급 종이였다

시가 난무하는 세상, 시 한 줄 몸에 받지 못한

백지, 나무에서 종이가 될 때까지 빛났던

운문 정신이 꾸깃꾸깃 어둡게 구겨져 있었다

깊은 밤 그 백지 한 장 한 장 다려 펴며 물었다

백지가 휴지 되어 버려지는 시대에 나는 시인인가?

종이의 날 선 귀퉁이에 시들이 우수수 베이고

태어나지 않은 시의 깊은 곳에서 피가 스며 나온다


산벚나무 꽃 필 때


앞산이 막고 뒷산이 붙잡아도

당신 때문에 빛나고 당신 때문에 슬픈

그 사랑 내장부터 똥구멍까지

송두리째 꺼내 보여주고 싶은 날


태안반도에서 들었다


소라 구멍에 귀를 가져다 대면 소라가 전하는 바다의 말 야이이이이이이이개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재미있지요? 그런데 아픈, 아프게 하는, 시도 있습니다. 애써 담담해하는 것 같은 느낌도 함께 묻어나는데, 일상에서는 어떤 아픔도 담담함에 죄다 담긴다는 뜻일는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담담해지지 못하는 마음을 뒤집어 슬쩍 드러내 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후


사람 떠나고 침대 방향 바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

이불과 배게 새것으로 바꾸고

벽으로 놓던 흰머리 창가로 두고 잔다

밤새 은현리 바람에 유리창 덜컹거리지만

나는 그 소리가 있어 잠들고

그 소리에 잠깬다, 빈방에서

적막 깊어 아무 소리 들을 수 없다면

나는 무덤에 갇힌 미라였을 것이다, 내가

내 손목 긋는 악몽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먹은 것 없어도 저녁마다 체하고

밤에 혼자 일어나,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바늘로 따며

내 검은 피 다시 붉어지길 기다린다

이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어 잊고 산다

어리석어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심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상처의 문장

--최영철 시인에게


지난 태풍에 마당의 벚나무 쓰러졌네

은현리에 뿌리 내린 지 10년 된 벚나무

제 몸 제 뿌리로 큰바람 견디기 힘들었나 보네

그냥 베어버리면 더 아플 것 같아

벚나무 다시 세워주었네

버팀목 받쳐주고 마음 다 주며 보살폈는데

몸통과 가지에서 껍질이 탁탁 터지네

몸길이로 길게 터지며 속을 다 드러내는 나무

저 할복할 것 같은 나무의 후유증을 보며

나무가 몸으로 쓰는 상처의 문장을 읽네

쓰러져본 사람은 아네

상처의 피에 펜을 찍어 쓰는 피의 문장 있다는 걸

그 문장 어떤 눈물로도 지울 수 없는 걸

지울수록 짓이겨져 더욱 선명해진다는 걸


시인은 국민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아버지 여의고 나서 어머니는 식당에서 밤늦게까지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시인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안주를 나르고 막걸리 주전자를 돌려야 했습니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시인이 되기 위해 대학에도 갔습니다. 80년대 등단했고 두 곳에서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좋지 않은 일도 있었습니다. 98년에는 뇌종양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2~3년 사이에 무슨 엄청난 일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그이가 이번에 낸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를 보면 그리 짐작할 만한 단서가 나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내내 아팠습니다. 기자 노릇을 하다 보니 7~8년 전 몇 번 만나기도 했던, 그이 이름은 정일근, 입니다.

김훤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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