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인문학 위기는 돈·권력 밝히는 교수들 책임

기록하는 사람 2009. 3. 3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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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위기라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 나온 말이 아닙니다.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별로 실감은 못했는데, 최근 < 경남도민일보 >에 나온 '도내 대학 인문·교양 강좌 줄줄이 폐강'이라는 기사를 보니 정말 문제가 심각하더군요.

뿐만 아닙니다. 얼마전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해드린 바 있는 마산의 '수요인문학 강좌'도 마찬가지랍니다. 지금까지 열 다섯 명 정도밖에 수강신청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네요. 특히 이 수요인문학 강좌는 강유원 박사와 같은 내공 깊은 분이 강사로 참여하고 있을뿐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직한 매력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인문학이 천시받는 시대라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지역에서 이 정도 강의를 돈을 내고 들을만한 수준의 사람이 최소한 50명 이상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담당자에게 확인해본 바로는 '역시나'였습니다.

이 강좌에 수강신청을 한 사람이 15명에 불과하답니다.


물론 개강까지는 약 열흘의 기간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대로라면 30명도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타깝고도 실망스럽던 차에 마침 오늘 < 경남도민일보 >에 소설가이자 시인인 정동주 선생이 인문학 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신랄하게 따지는 칼럼을 실었더군요.


정동주 선생은 그 원인을 "도덕적 책임이나 인간적 고뇌를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여기는 너무나 가볍고 천박한 몰염치를 떠받들어온 물질만능주의의 소산"이라면서 "그렇게 만든 것이 정치인과 가진자와 많이 배운 자들"이라고 지목합니다.

이어 그 다음의 책임자로 인문학자와 교수를 지목하는데요, "인문학자들의 게으름과 확신없는 연구태도, 교수라는 신분보장의 방호벽 뒤에 비겁하게 숨어서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급료나 챙겨온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 다음 문장은 더 직설적입니다.

"어느날 느닷없이 돈·증권·펀드·부동산이 신(神)의 위세로 만사를 지배하게 된 시대, 정치적 거래와 권력의 맛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대학의 경영과 보직, 외국 학위 하나면 전결되는 교수의 능력, 연구논문이나 저술보다 학교 밖 관청, 사회단체, 기업체와의 관계를 더 중시해온 유명교수들의 이력서가 껍데기 대학을 만드는데 앞장서 왔음을 부정할 수 있는 교수가 있다면 자신있게 나서보길 바란다."

그러면서 오늘의 정치·사회현실을 개탄합니다.

"경제 하나만 잘되면 만사형통이라는 저질 정치꾼들의 위험천만한 말장난이 국민을 마취시켜가는 가운데서 (중략) 아, 그러던 어느날, 녹색성장이라는 정치언어가 신기루같이 등장하더니 괴력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4대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생태학적 토론, 이론적 검토, 프로젝트 등을 두고 관련교수들의 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담당 공무원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끼리끼리 은밀한 연락을 하면서 엉뚱한 계산에 정신 없다. 눈먼 국민 세금을 연구비 등의 명목으로 한몫 거머쥐기 위해서다."

아, 저는 이렇게 직설적으로 학자와 대학교수를 깐 글을 일찌기 읽지 못했습니다. 이들 교수들이 누구인지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교수들도 없진 않습니다만, 제가 본 대부분의 교수들도 용역사업이나 연구비가 지원되는 프로젝트가 아니면 아예 연구주제로 삼지 않는 분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교수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학문과 밥벌이를 분리하기 위해 교수 되기를 거부한 강유원 박사. @강유원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과목에만 몰리는 대학생들도 문제지만, 정치꾼이나 관청, 사회단체 꽁무니에만 따라 다니며 학문의 품격과 질을 스스로 떨어뜨린 교수들도 분명 문제는 문제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교수 되기를 거부(본인은 '포기'라고 표현했지만)한' 회사원 철학자 강유원 박사의 태도는 주목해볼만 합니다. 그는 2003년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날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은 손에 물 묻히기를 싫어하며 힘있는 자에게 지식을 팔고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며 기생한다. 지식인들이 기득권자의 편을 들고 이들의 노예로 전락하는 이유다. 나는 영주에게 아부하며 기생하는 르네상스식 지식인이 아니라, 기도와 학문과 노동을 병행하며 자급자족한 중세 수도원의 수도사와 같이 건강한 지식인이 되기를 원한다."

강유원 박사가 쓰거나 번역한 책들 중 일부.


또 내가 며칠 전 구입한 그의 < 책 >이라는 책의 저자소개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회사원, 철학박사. 공부하길 좋아하지만 공부로 돈을 벌자고 하면 그것에 집어놓은 자존심이 다칠세라 줄곧 공부와 돈벌이를 따로 해왔다. 그래서 여기 저기 강의를 하면서도 이런 저런 회사를 다녔고 지금도 그 회사에 다닌다. 철학도로서의 그의 고민은 철학의 위기다. 그가 보기에 오늘의 철학은 세상을 읽지도 못하고 세상에 뭘 제시하지도 못한다. 그는 철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철학보다는 역사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그 인문학을 하는 교수들마저 돈과 권력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4월 8일 강유원 박사가 마산에 오면 그걸 꼭 한 번 물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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