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마흔 일곱 나이에 ‘아버님’이라니!

김훤주 2009. 3. 2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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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쉰도 안 돼서 ‘아버님’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보고 하는 말인지 짐작도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저를 이르는 줄 알고는 속으로 놀랐습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나 하면 어울릴 법한 그런 호칭을 제가 들은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낮에 왼쪽 허벅다리와 엉덩이가 엄청나게 아파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갔다가 거기서 일하는 아가씨한테서 들었습니다. 물론 아가씨는 스물 두엇 정도로 아주 젊어서, 얼굴에 여드름도 채 가시지 않아 앳된 티가 확 났습니다만.


엉덩이와 허벅다리와 이마와 손가락에 침을 맞고 한 30분 남짓 침대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커튼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의사께서 침을 뽑으셨습니다. 바지를 추스르고 조금 있으니 앞에 말씀드린 그 아가씨가 곧바로 다가와 “아버님, 이리로 오세요.” 그랬습니다.


뭐,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째 좀 느낌이 야릇했습니다. 전에 선배-그리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들이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을 때는 그냥 웃기만 했는데, 직접 비슷한 말을 듣고 보니 ‘꺾이는’ 맛이 참 아주 뚜렷하더군요. 우하하.


그래도 억울한 생각은 남았습니다. 제 나이가 마흔일곱이고, 이 나이가 제 어릴 때 기준으로는 중늙은이 축에 드는 것이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결혼을 좀 일찍 하기는 했어도 첫째인 아들이 이제 열아홉이고 둘째인 딸은 열여섯밖에 안 됐거든요.


오늘 머리 깎고 찍어본 사진임돠.

사족(蛇足)입니다만, 돌아와 가만 생각해 봤습니다. 그 아가씨가 내게만 ‘아버님’이라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저만 찍어 그리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거기 드나드는 40대나 50대 남자에게는 모두 ‘아버님’을 호칭으로 썼겠지 싶습니다.


또, 어쩌다 이리 됐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제 짐작에는 아저씨, 손님, 고객님 같은 호칭이 호칭으로 남지 않고 사장님 어쩌고 존대하는 뜻까지 담으려다 보니 이렇게 가 버렸습니다. 좀 더 고상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작용했겠지요.(저는 ‘손님’이란 말이 가장 좋은데.)


어쨌거나, 제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아버님’이라 불리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가 언젠가는 누군가가 뒤에서 “아버님!” 하면, 저도 몰래 고개가 돌아가지 싶습니다. 그래, 좀 유쾌하지 않기도 하고 해서, 오늘 아침 머리를 한 번 짧게 잘라 봤습니다.


이제, 술 마시고 취한 채 길을 가다가 어둑어둑한 골목 같은 데서 오줌을 누거나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추(醜)해 보일 그런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저는, 일부러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술도 자주 어울려 마시고요. 그냥 한 소리 듣고 말지, 무엇이 어쨌다고 그런 틀에 매일까 이리 생각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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