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쉰도 안 돼서 ‘아버님’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보고 하는 말인지 짐작도 못했는데, 그것이 바로 저를 이르는 줄 알고는 속으로 놀랐습니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나 하면 어울릴 법한 그런 호칭을 제가 들은 것입니다.
지난 화요일 낮에 왼쪽 허벅다리와 엉덩이가 엄청나게 아파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갔다가 거기서 일하는 아가씨한테서 들었습니다. 물론 아가씨는 스물 두엇 정도로 아주 젊어서, 얼굴에 여드름도 채 가시지 않아 앳된 티가 확 났습니다만.
엉덩이와 허벅다리와 이마와 손가락에 침을 맞고 한 30분 남짓 침대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커튼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의사께서 침을 뽑으셨습니다. 바지를 추스르고 조금 있으니 앞에 말씀드린 그 아가씨가 곧바로 다가와 “아버님, 이리로 오세요.” 그랬습니다.
뭐,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째 좀 느낌이 야릇했습니다. 전에 선배-그리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들이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을 때는 그냥 웃기만 했는데, 직접 비슷한 말을 듣고 보니 ‘꺾이는’ 맛이 참 아주 뚜렷하더군요. 우하하.
그래도 억울한 생각은 남았습니다. 제 나이가 마흔일곱이고, 이 나이가 제 어릴 때 기준으로는 중늙은이 축에 드는 것이 분명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결혼을 좀 일찍 하기는 했어도 첫째인 아들이 이제 열아홉이고 둘째인 딸은 열여섯밖에 안 됐거든요.
오늘 머리 깎고 찍어본 사진임돠.
또, 어쩌다 이리 됐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제 짐작에는 아저씨, 손님, 고객님 같은 호칭이 호칭으로 남지 않고 사장님 어쩌고 존대하는 뜻까지 담으려다 보니 이렇게 가 버렸습니다. 좀 더 고상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작용했겠지요.(저는 ‘손님’이란 말이 가장 좋은데.)
어쨌거나, 제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아버님’이라 불리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가다가 언젠가는 누군가가 뒤에서 “아버님!” 하면, 저도 몰래 고개가 돌아가지 싶습니다. 그래, 좀 유쾌하지 않기도 하고 해서, 오늘 아침 머리를 한 번 짧게 잘라 봤습니다.
이제, 술 마시고 취한 채 길을 가다가 어둑어둑한 골목 같은 데서 오줌을 누거나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추(醜)해 보일 그런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저는, 일부러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술도 자주 어울려 마시고요. 그냥 한 소리 듣고 말지, 무엇이 어쨌다고 그런 틀에 매일까 이리 생각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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