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마흔 넘어 ‘첫 경험’ 쉰 다 돼 ‘또 경험’

김훤주 2009. 3. 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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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2005년 쓴 글 가운데 ‘마흔이 넘어서 하는 첫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는 대체로들 갓 마흔이었는데 이제는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 어쨌거나,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제가 일하는 <경남도민일보>에는 또래 되는 선배가 여럿 있습니다. 제가 63년생인데 선배들이 저보다 한두 살 많거나 같은 셈입니다. 이런 선배들이 올 들어 치른 ‘첫 경험’들이 은근히 얘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동갑인 한 선배가 지난 2월인가 고향 남해에 가려고 버스를 탔답니다. 신문사가 있는 마산에서 바로 가는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일단 진주로 가 남해행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마산서 진주 가는 버스는 5분이나 10분마다 있지만 남해 가는 버스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진주는 서부 경남의 중심지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진주에 가면 남해 가는 버스를 쉽게 탈 수 있답니다. 진주에서 남해 가는 버스는 진주교대 앞과 경상대학교 앞 개양에 멈춥니다. 버스로 통학하는 학생들을 태우기 위해섭니다.


선배는 경상대 앞 개양 정류장에서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별로 서두르지도 않고-이를테면 품위도 별로 다치지 않고- 천천히 탔다고 합니다. 평소 입는 대로 아주 말쑥하지는 않으나마 그런대로 앞가림은 되는 양복 차림이었겠지요.


그러면서 빈자리가 없나 보면서 뒤로 들어가고 있는데 남학생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기 앉으세요!” 했다고 합니다. 선배는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답니다. 그러고는 아는 사람이라 자리를 비켜주나 했답니다. 그래서 안경 쓴 선배 얼굴을 그 친구 가까이 갖다 대고 유심히 쳐다봤다지요.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물었겠지요. “자네 나를 아는가?” 당연히 “아니요, 모르는데요.” 선배의 몸은 학생이 앉았던 자리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문답은 이어집니다. “그러면 자리는 왜 비껴주는가?” 그랬더니 학생이 씩 웃으면서 “아직 젊지 않습니까!” 했답니다.


그제야 이 선배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선량한 청년 학생 한 명이 중년 아저씨를 보고 편하게 가는 기회를 넘겨주려고 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선배는 머리를 몽둥이로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고, 내가 이미 늙어버렸는가 하는 생각이 찌릿찌릿 뻗쳐 왔답니다.


이 선배가 고향에서 돌아와 이 ‘첫 경험’ 얘기를 풀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와 함께 이 선배보다 한두 살 많은 다른 선배 한 명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동갑인 한 선배’는 지금 저랑 블로그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김주완, 이십니다. 다른 한 선배는 지금 우리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신 김병태, 이십니다. 이번에도 같은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공교롭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새겨듣지를 못했지만,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옛날에는 자리 양보를 받아서 작으나마 충격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한 얘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병원에 무슨 진료를 받으려고 갔는데 거기서 들은 말이랍니다.

접수를 마치고 거기 일하는 젊은 간호사가 말하기를, ‘선생님’도 아니고, ‘아저씨’도 아니고, 그 흔한 ‘사장님’도 아니고, ‘어르신’ 이러더랍니다. ‘어르신, 이리로 들어오세요.’ 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편집국 안 회의실에서는 폭소가 터졌습니다만.

겨우 5년 만에,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 받으면서 이제 내가 사회 기준으로 늙은 축에 드는구나 여겼던 제 또래가 이제는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완전히 늙은이 대접을 받게 됐구나, 여겨졌습니다.(예순 일흔 되신 ‘어른’들을 깎아내리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나이 마흔 접어들 때는 참으로 엄청나게 괴로웠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놓은 일 하나 없이 이룩한 일 하나 없이 이리 마흔 살이 됐구나 싶은 생각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 때 저는 아내의 다독거림을 받고 중국 사상가 노신(魯迅 1881~1936)의 산문을 읽고 하면서 괴로움을 견뎠습니다.

제가 깨우친 노신 가르침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다른 누구를 가르치거나 이끌려 하기 보다는 소신에 따라 믿는 그대로 온 몸으로 실행하면 그만이다.” 그러다 쓰러지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바닥 구덩이를 몸으로 메워주면 되고 후배들이 그 위로 지나가면 또 그만이다.”

꼭 무엇을 이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쳇말로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되는 것이지요.” 제가 하다가 못 다 이루면, 저를 곱게 본 후배 한 명이 있어서 이어나가 주면 고마운 것이지요. 그리고 아니면 또 아닌대로 살면 그만이지요. 그 때부터 저는 이리 여기며 삽니다.

어쨌거나, 이제 표정 관리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저는 아직 ‘어르신’ 소리를 듣지 않았거든요. 병원이나 시외버스 매표소에서 불쑥 그런 말을 듣더라도 제가 당황하지는 않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런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그것도 좀 우습겠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니 참 까다롭네요. 그 표정 관리라는 것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하하.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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