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길고양이와 하룻밤 지낸 우리 딸

김훤주 2009. 3. 1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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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토요일 저녁 우리 딸 현지가 전화를 받고 나가더니 얼마 안 있어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고양이 좀 데려가면 안 돼요? 내일 아침 9시까지만요. 지금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데리고 있을 사람이 없어서요. 내일 아침 친구가 데려가기로 했어요.”

저는 심드렁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마음대로 하렴.” 그랬더니 딸이, “아빠 화났어요?” 했습니다. 그래 저는 공지영 소설 <즐거운 나의 집>에 나오는 M역 앞 고양이들을 떠올리며 “아니, 화 안 났어, 말 뜻 그대로야.” 이랬습니다. 현지는 그러니까 고양이 때문에 나간 모양이었습니다.

그러고도 한참 있다가 들어왔는데, 커다란 종이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고양이를 넣어왔습니다. 현지는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입가에는 웃음이 맺혀 있었습니다. 아빠가 번거로워하거나 싫어할까봐서인지 말을 빠르게 쏟아냈습니다.

눈동자에 두려움 같은 기운이 어려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아빠, 있잖아요. 친구가 목욕하고 오는데 보니까 아파트 단지 나무 둥치에 이 고양이가 매달려 있었대요. 너무 불쌍하잖아요. 풀기는 풀었는데 키울 사람이 없어서요, 다른 친구한테 연락을 했는데 오늘은 안 되고 내일 아침에 만나 데려가겠다고 해서요.”

제가 가운데에 질렀습니다. “왜, 현지가 키우지?” “아니요, 귀엽기는 하지만 키우고 싶기는 하지만, 나는 강아지가 더 좋은데요 어쨌든 우리 집은 안 되고요, 내일 아침에 꼭 데리고 나갈게요. 오늘 밤만 우리 집에서 지내면 안 돼요?”

“우리 딸한테 좋을대로 하라 했는데?” 하니까 현지가 바빠졌습니다. 현지는 종이상자 바닥에는 담요로 쓰일 만한 것이 깔려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머리를 한 쪽으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현지는, “아까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는데요.” 그랬습니다.


제가 좀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매달려 있었다니 사람들이 죽이려고 그랬구나!” 현지가 받았습니다. “아니요, 가지에 매달려 있었던 게 아니고요, 둥치에 줄로 다리랑 몸통까지 꼼짝 못 하도록 칭칭 감겨 있었다는데요.” “그것도 나쁘기는 마찬가지군!” 했지요.

가만 들여다보니 고양이는 아주 조그마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저런 고통을 겪었구나, 싶었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눈동자에 뭐랄까 두려움 같은 기운이 어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앞에 놓인 볼펜보다 조금 더 크다 싶은 정도였습니다.

현지는 친구들한테 들었다면서, 햄을 잘게 썰어 물에 불리더니 작은 그릇에 담아 고양이에게 줬습니다. 놀라거나 사람에게 원망을 품은 고양이는 먹지 않는다고 저는 들었는데, 어쨌든 곧잘 먹었나 봅니다. 현지는 한 번 더 햄을 불려서 고양이에게 먹였습니다.

그러고는 현지랑 같이 나왔습니다. 약속이 있어서입니다. 미정이 이모랑 만나서 주먹 삼겹살을 소주랑 같이 먹었습니다. 그랬는데 현지는 얼마 안 있어 곧바로 집에 가겠다며 나갔습니다. 아무래도 두고 온 고양이가 자꾸 생각이 났겠지요.

그러면서 저더러 1000원을 달라 했습니다.
나중에 봤더니 현지는 그 길로 곧장 집에 들어오면서 생수도 조그만 병으로 하나 샀습니다. 고양이가 하도 어리고 또 험한 꼴을 당한 뒤끝이다 보니, 물도 잘못 먹이면 잘못될 수 있겠다 생각한 모양입니다.

우리 딸 현지는 고양이를 계속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무엇을 먹으면 우와 먹는다 그러고, 그러다 잠이 들면 이제 잠을 자네 그랬습니다. 저는 새벽 3시 즈음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3시 되기 전에도 저는 혼자서 딴 짓을 했습니다.


현지는 아마 어젯밤 내내 고양이를 들여다보며 ‘귀엽다’, ‘예쁘다’는 소리를 번갈아가면서 질렀을 것입니다. 집이 조그맣고 게다가 아파트라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고 여겨서인지 현지가 키우자고 사정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런 딸이 좀 안쓰러웠습니다.

현지는 이튿날 아침 7시 즈음 고양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아빠, 다녀올게요.” 현지가 그랬습니다.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남아서인지 저는 잠결에 “현지야, 키우고 싶으면 키워도 돼.” 이리 말했습니다. 현지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고 나갔습니다.

제가 12시 30분 넘어 집을 나섰는데, 현지는 그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랑 고양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며(아마 기르는 얘기랑 이름 짓는 얘기도 했겠지요), 친구 집에서 고양이 들여다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오후 3시 남짓 집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빵~ 언제 오세요?” “늦지 않을 것 같은데?” “알았어요. 일찍 오세요.” “왜?” “그냥요.” 아마 이 녀석 요즘 들어 가장 기쁘고 보람도 차고 재미도 있었을 어제오늘 얘기를 하려나 보다 싶어 만남 하나 후딱 마치고 서둘러 들어왔지요.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귀여운 고양이한테 빠져 어젯밤 내내 잠도 안 자더니, 불쌍한 고양이 밥 먹이고 물 먹이느라 부산떨더니, 일요일 꼭두새벽 친구한테 고양이 갖다 준다 나가더니, 이제는 그냥 저녁도 못 먹고 아빠랑 얘기도 한 마디 못한 채 곯아떨어지고 말았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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