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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본 세상

‘권력’이 되고픈 문학잡지 <시인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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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등단한 시인들 가운데 1등은 누구일까요? 김경주랍니다. <시인세계> 2009년 봄호가 시인 56명과 평론가 34명에게 저마다 다섯 명가량씩 ‘인기투표’를 시켜 이렇게 매겼습니다. 김경주는 52표를 얻었습니다.

계간 <시인세계>는 이번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2000년도 이후 등단한 시인들 중 주목할 만한 젊은 시인 5명 내외를 추천해 달라 부탁하였다. …… 추천 수에 의해 13명의 ‘주목할 만한 젊은 시인들’을 선정하여 그들만의 새로운 시경향과 시세계를 조명해 보았다.”

아무 기준도 없이 ‘인기투표’로 등수 매기다니

<시인세계>는 이렇게도 적었습니다. “‘시인들이 추천한 시인’과 ‘평론가들이 추천한 시인’은 다소 다를 수도 있겠지만, 본지는 시인들과 평론가들의 양쪽 의견을 총합했다.” 그러나 이것은 ‘뭔가 있어 보이게 하려는’ 말장난일 뿐이었습니다. 확인해 봤더니 그이들은 양쪽 표수를 단순 합산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말도 있습디다. 자기네 매긴 서열이 보편타당하다고 전제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낯간지러운 말씀입니다. “앞으로의 우리 시사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 순위가 언제라도 달라질 수 있다. 시인들 각자의 끊임없는 창조적 노력과 성취에 의해서 반드시 달라져야 하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 시는 더욱 다채로워지고 다양화될 것이다.”

그이들이 추천권을 준 56명 시인과 34명 평론가가 시단과 평론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인세계> 또는 그 언저리에 있는 문인들이 추구하는 바가 우리 시 세계의 전부 또는 대부분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요?

<시인세계>는 이런 있음직한 물음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시인 56명과 평론가 34명을 무엇을 기준 삼아 어떻게 뽑았는지는 당연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딱 56명과 34명에게만 물었는지, 아니면 묻기는 더 많은 사람에게 했는데 들어온 답이 90명밖에 안 됐는지 여부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성적 매기는 권력을 줬나

더욱이 <시인세계>가 추천권을 준 시인·평론가 90명 안에는, <시인세계> 편집위원 김종해 정효구 김중식 세 명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게다가 김종해는 발행인이기도 하답니다. 이러면 자기네끼리 추천권을 주고받은 셈이잖아요. 이러면서 어떻게 자기네들 성적표가 객관성을 띤다고 내밀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이들이 <문학수첩>과 <문학동네>와 <문학사상>과 <문학과 현실>과 <황해문학>과 <현대문학>과 <실천문학>과 <창작과 비평> 따위의 발행인과 편집위원들에게도 추천권을 줬다면, 사정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그이들은 분명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참 낯짝도 두껍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주목할 만한' 13대 시인들 면면.

낯간지러운 설명글.


좀더 근본적으로, 문학을 비롯한 예술의 본질에 비춰볼 때 과연 이러한 서열 매기기가 합당한 노릇인지 묻고 싶습니다. 또 그이들에게 그렇게 성적을 매길 권한을 누가 줬는지도 궁금합니다. 독자들이 그랬을 리는 없겠고,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부 장관이 그런 권한을 선물했을까요?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표현에 등수를 매길 수 있다는 물신 숭배가 두렵습니다. 더욱이 물신 숭배를 하는 주체가 문학잡지라니 께름칙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1등에서 20등까지 52표에서 3표까지 어설프게 등수를 공개하는 ‘생쇼’를 저는 이번에 난생 처음 봤습니다.

문학권력을 가지려는 문인들이라니

아시는대로, 제도권 학교에서도 성적은 그 반인격적 속성 때문에 아주 조심스레 매기지요. 그런데 저이들은 아주 당당하게 저리도 반문학적으로 굴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잘못됐다 생각하는 이들이 오히려 이상해 보입니다.

아마, 저이들은 자기들의 미적 기준을 다른 많은 이들에게 강요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른바 ‘권력’이 돼서 시인과 평론가들을 ‘앞으로 나란히’ 줄 세우고 싶은 모양입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강요하는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이게 아름다우니 너희들 이것을 아름답게 여겨라…….’ 그렇게 해서 찍혀 나오는 붕어빵 같은 시들이 과연 아름답다는 말에 조금이라도 맞갖을 수 있을까요.

‘참되다’, ‘진실하다’는 잘 알려진 말보다 ‘핍진하다’ 따위 덜 알려져 어려워 보이는 글말을 더 좋아하는 평론가들 지리멸렬한 글을 읽지 않은 지는 벌써 오래 됐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저는 한편으로 안타깝고 또 아깝지만, <시인세계>는 물론이고 이번 등수 매기기에 기계로 동원된 시인 56명도 당분간은 보지 않을 작정입니다.

다른 어떤 문학잡지에 나온 표현을 빌리면, ‘열라 캡숑 황당 짱’입니다요.

참고하시라고, 그이들 ‘잘난’ 인기투표 결과를 덧붙입니다.



인기투표에 참여한 시인

강은교 고형렬 김사인 김상미 김선우 김언희 김왕노 김종해 김중식 김참 김혜순 나희덕 맹문재 문인수 문태준 박남철 박제천 박주택 박형준 서규정 서안나 손택수 송찬호 신달자 오정국 오탁번 원구식 유재영 유홍준 이가림 이건청 이규리 이기철 이대흠 이문재 이선영 이승하 이은봉 이장욱 이재무 이하석 임동확 전윤호 정일근 정진규 정호승 조말선 조창환 조현석 채호기 천양희 최영철 함기석 함성호 홍신선 황인숙

시인들 인기투표 결과(괄호 안 숫자는 표수)

김경주(33) 진은영(15) 황병승(15) 최금진(11) 신용목(09) 이근화(08) 장석원(07) 박성우(07) 김이듬(07) 길상호(07) 김산(06) 안현미(05) 김성규(05) 황성희(04) 장인수(04) 오은(04) 박후기(04) 김중일(04) 고영민(04) 여태천(04)

인기투표에 참여한 평론가
강경희 고인환 권혁웅 김석준 김선학 김용희 김유중 김진희 김춘식 류신 문혜원 문흥술 반경환 서동욱 엄경희 오형엽 유성호 이경수 이경호 이성우 이숭원 이재복 이형권 이혜원 장석주 정효구 조강석 조해옥 진순애 최동호 함돈균 허혜정 홍기돈 홍용희

평론가들 인기투표 결과

김경주(19) 황병승(13) 신용목(13) 최금진(09) 이근화(08) 김이듬(07) 길상호(07) 진은영 (06) 안현미(06) 하재연(05) 이민하(05) 장석원(04) 여태천(04) 박진성(04) 정영(03) 김지녀(03) 강성은(03)

전체 인기투표 결과
1등 김경주 52표, 2등 황병승 28표, 3등 신용목 22표, 4등 진은영 21표, 5등 최금진 20표, 6등 이근화 16표, 공동 7등 김이듬·길상호 14표, 공동 9등 장석원 안현미 11표, 공동 11등 이민하 박성우 여태천 08표, 공동 14등 장인수 김성규 김산 고영민 강성은 06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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