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민주화운동 패러다임 바꾸자는 멋진 공무원

기록하는 사람 2009. 3. 13.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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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15나 4·19, 5·18, 부마항쟁, 6월항쟁 등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이 지나치게 관 주도로 이뤄지는데 대해 약간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기관이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을 인정하고, 그 뜻을 새기겠다는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관에 의존한 기념사업이나 행사는 종종 본말과 주객이 전도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예컨대 관 주도의 행사는 그 항쟁의 진정한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보다, '외양'과 '형식'에 치우쳐 '기념'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주인이 되어야 할 '시민'은 뒷전으로 밀리고, 오히려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주인공인양 폼을 잡는 생색내기 의전행사가 되기 십상입니다.

3·15의거 49주년, 관에 의존하는 기념사업 왜 문제인가?

또한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이 관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관에서 좀 더 많은 예산을 얻어내기 위해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정권과 지방자치단체의 입맛에 맞추려 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말살해온 인사들이 뻔뻔스레 민주인사로 대접받는 일도 생깁니다.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점점 시민과 멀어지고 박제화되어 간다고 저는 봅니다.

올해 3.15의거기념사업회는 국가기념일 제정에 올인하고 있는 듯 하다. 사진은 지난 11일 창간한 '3.15의거보'.


최근 4·19혁명 49주년을 앞두고, 이를 있게 한 3·15의거일을 국가기념일로 승격해야 한다는 운동이 마산 3·15의거기념사업회에 의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도 사실 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4·19가 이미 국가기념일인데, 같은 선상에 있는 3·15까지도 국가기념일로 정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현재 경남도 지정 기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승격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짐작컨대 기념식의 규모가 좀 더 커지고, 지원되는 예산도 좀 늘어나겠지요. 참석하는 내빈도 좀 더 높은 사람이 올 수 있겠죠. 물론 마산시민이나 경남도민의 자긍심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부정적인 효과도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그렇잖아도 이미 관변화해가고 있는 3·15가 더 급속도로 시민과는 멀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진정한 3·15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열심히 촛불집회를 하고 있는 '좀 과격한' 단체의 시민들은 기념식장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되겠죠.

※관련 기사 : 3·15시민항쟁과 관변문인의 어정쩡한 동거
※관련 기사 : 민주항쟁 팔아먹는 비겁한 글쟁이들

이런 와중에 오늘 아침 집으로 배달된 경남도민일보에 제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3·15의거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이 글은 시민과 괴리된 3·15의 실상을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글을 쓴 사람은 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마산보훈지청 이형오 과장의 이 글은 마치 '국가기념일로 지정해달라고 칭얼대기에 앞서, 먼저 우리 지역차원에서 시민 속으로 파고 드는 노력부터 제대로 좀 하자'고 나무라는 듯 합니다. 공무원이 이런 글을 썼다는 데 대해 기념사업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부끄러워 해야 할 것입니다. 이형오 과장의 양해를 얻어 글 전문을 소개합니다.

[기고]3·15의거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자

이형오(마산보훈지청 과장)

광주에 생활하면서 느낀 바다.

광주를 찾는 사람이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광주를 여행하면서 곳곳에 걸려 있는 묘지 안내판을 보고 이곳을 찾지 않으면 마치 후회할 것 같아서 찾는다는 것이다.

도시는 5·18로 계획되어 있다. 즉, 옛 전남도청 자리는 정신계승 공간, 상무지구는 체험공간, 묘지는 추모공간으로 짜여 있고 광주시청 청사 앞 동은 5층 뒤에 있는 건물은 18층이다. 이는 5·18을 상징하고 있다.

정부 주요인사가 광주 방문 시 제일 먼저 찾는 곳도 이곳 묘지이고 대학 총장, 기관장이 새로 부임하면 업무 시작 전 반드시 행하는 것이 묘지를 찾아 참배하는 일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이면 광주인사는 물론 호남지역의 여러 사람까지 이곳을 찾아 지역사회와 지역민의 안녕을 기원한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권이 반성하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장소도 이곳이고 이 고장 봉사활동을 마치고 귀가에 앞서 합동으로 행하는 일도 묘지 참배다. 이처럼 국립 5·18 민주묘지는 항상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이는 광주를 이해하고 광주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려면 묘지 참배부터 하라는 광주시민의 무언 명령이다.

광주시민은 광주 5·18을 자랑스러운 오월정신으로 승화시켜 시민 대통합과 역동적인 에너지를 창출해 내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마산에서 태어났고 이 지역에서 사는 시민 중 3·15의거가 무엇이고 국립 3·15 민주묘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시민은 모르긴 해도 아마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국립 3·15 민주묘지를 알리는 이정표는 초라하기 그지없고 우리 지역을 찾는 정부인사 중 이곳을 찾아 참배하는 이도 드물고 새해 새로운 결의를 이곳 묘지에서 갖는 도 단위 기관단체장도 그리 많지 않다.

오래전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임관에 앞서 수습 현장체험 차 이곳을 찾은 수습생이 참배를 마치고 가면서 "마산의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오늘에야 알게 되어 참으로 부끄럽다. 학교에서 이런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3·15에 대한 우리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다.

자유·민주·정의를 표방한 3·15의거는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자 민권이 승리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폄하 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때이다.

이제라도 3.15의거에 대한 사고의 틀을 바꾸고 생활 속에 접목시키자.

시내 곳곳의 이정표에 국립 3·15 민주묘지를 새겨 넣자.

3.15의거 기념제전 및 관련행사는 경남도민이 어우러져 함께하는 행사로 전개하자.

적어도 경남도를 움직이는 유력인사라면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기 전이거나 한해가 바뀌면 이분들을 찾아 참배하고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아닌가 싶다. 바로 행하자.

아이들의 인성교육과정에 3·15를 포함하고 체계적으로 교육하자.

시민에게는 즐겨 찾는 정서공간으로 학생들에게는 학습하고 참다운 봉사활동을 펼치는 산교육장으로 제공하자.

우리의 젊은이들이 결혼할 시는 이곳에서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참배단에서 국가에는 충성하고 부모에게는 효도하며 자녀는 국가의 동량으로 키워내겠다는 서약을 하는 의미 있는 장소로 함께 만들어 가자.

3·15의거 49주년을 계기로 마산의 3·15정신을 경남의 3월 정신으로 삼자고 감히 제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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