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김훈 박완서 신경숙 등도 틀리게 글 쓴다

김훤주 2009. 3. 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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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달인'이랄 수 있는 소설가들, 그렇지만 그이들도 잘못 알거나 또는 모르고 쓰는 잘못된 표현들은 없을까요? 그이들의 잘못된 문장 표현을 사정없이 헤집는 글이 한 문학 잡지에 기획 연재되고 있어 여러 사람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계간 <문학수첩>이 2008년 봄호부터 연재해 올 봄호로 다섯 번째를 맞은 문학칼럼 '권오운의 우리말 소반다듬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권오운(67)은 66년 등단한 시인입니다. 시집 <원님 전상서>말고도, <알 만한 사람들이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 1234가지> <우리말 지르잡기> <작가들이 결딴낸 우리말> 따위를 펴낸 바 있답니다.

'소반다듬이'는 사전에 '자그마한 밥상 위에 쌀이나 콩 따위 곡식을 한 겹으로 펴 놓고 뉘나 모래 같은 잡것을 고르는 일'이라 돼 있습니다. 우리말답지 않은 표현이나 낱말을 걸러내자는 얘기입지요. 2009년 봄호 '소반다듬이'는 "'초가를 올린 토담집'은 이층집인가?"가 제목입니다.

1. <문학수첩>을 통한 권오운의 분투 노력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 김숨의 <침대>·<철(鐵)> 서하진의 <착한 가족>이 불려나왔습니다. 제목에 올린 '초가를 올린 토담집'(김연수)을 두고 권오운은 "두부 먹다 이 빠진다고는 해도 어찌 이런 실수를 할 수 있을까 싶어서 눈물이 다 찔끔 나올 뻔했다"고 합니다.

"초가(草家)는 짚이나 갈대 따위로 지붕을 인 집이다. 그렇다면 토담집 위에 초가집을 올렸으니 그 집은 이층집인가?"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초가지붕을 올린', '이엉을 올린', '이엉으로 지붕을 인' 토담집이라면 되리라"고 바로잡았습니다.

김숨은 '탕비실'에서 걸렸습니다. "'탕비'는 일본어 '유와카시'로 '물을 끓이는 주전자'이다. 역겹기까지 한 이런 일본어를 통짜로 주워다가 떳떳이 쓰고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두 페이지에다 열두 번이나 '탕비실'로 환을 쳐놓았다." 권오운은 내친 김에 '일본어를 거침없이 즐겨 쓰는' 손홍규도 불러왔습니다.

"뜻도 제대로 모르고 써서 읽는 사람을 놀래주는 백미는" "쇠파이프나 사시미를 든 시내파의 새파란 녀석들이 오함마나 빠루를 든 시외파의 중늙은이들을……"(단편 '상식적인 시절')이랍니다. 하하. 권오운은 "건달들이 왜 생선회를 들고 달려갔을까"라며 "어쩌다가 '회칼' 대신 '사시미'를 들이댔는지 복장이 터질 일이다"고 붙였습니다.

서하진도 마찬가지라네요. 꼬집는 대상은 "툭 던진 포망으로 엄청난 것을 낚아 올린 어부"와 "숨을 참고 조심스레 호흡을 뱉었다"입니다. '포망'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조어라며, "'툭 던'졌다는 걸 보면 '투망'이 제격인데 그것은 또 '낚아 올린'이 발목을 잡는다. '투망'은 결코'낚아 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훑었습니다.

뒤엣것은, 따져보니 오히려 더하네요. "'코나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이 '숨'이요, '숨을 쉼'이 '호흡'이다. 그런데도 '숨을 참고 호흡을 뱉'으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말뜻대로 풀어보면 '숨을 멈추고 숨 쉬는 것을 뱉'으라는 꼴이 된다"고 짚었습니다만.

2. '똥 진 오소리'를 싫어하는 너구리들

이렇게 날카롭게 따지니 불만을 품는 이가 적지 않은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2008년 겨울호 네 번째 '소반다듬이'는 이를 두고 "이치적으로야 어불성설이지만 오랜 세월 입에 오르면서 글자 그대로의 뜻보다는 새로운 뜻을 더해 관용어구로 정착한 말 그리고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수사"라 한 '한 신문 어문전문기자'에 대한 반론으로 시작됩니다.


권오운은 "설익은 표현을 밥 먹듯 하는 작가나 이를 덮어주려는 세력들은 반론을 제기할라치면 으레 '케케묵은 문법적 잣대'라면서 '수사적 표현'이라는 치마폭 속으로 기어들고는 한다"고 싸잡아 나무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경숙을 보기로 데려 나왔습니다.

"신경숙은 '발자국을 들고 걷는다'(단편 '멀리, 끝 없는 길 위에')고 쓴 적이 있다. '발자국을 들고 걷다'니! 이것도 '수사'인가? 왜 아예 '발자국을 이고 걷'지 그래. 닭발을 그려도 '수사'요, 환칠을 해도 '수사'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네요.

그러고는 "도나캐나 '관용어'로 치부해주고 콩이나 팥이나 '수사적 표현'으로 싸고 돈다면 우리의 문장은 도끼 삶은 물이 되고, 글쓰기는 도투마리 잘라 넉가래 만들기가 되리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러고 보니까 권오운은 지난해 봄호 연재를 시작할 때 스스로 말한 것처럼 '똥 진 오소리' 꼴입니다.

똥 진 오소리는 '오소리가 너구리 굴에 함께 살면서 너구리 똥까지 져 나른다는 데서, 남들이 더럽다고 안 하는 일이나 남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놀림조 말이랍니다. 사전에도 그리 나옵니다. 이 60대 오소리를, 많은 문인 '너구리들'이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권오운의 '똥 진 오소리' 노릇이 독자들에게 보람을 주기는 하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특히 이름난 작가를 맹신·추종하는 데 대한 경종일 것입니다. 그이들 문장 표현을 격물치지해서 따져 읽고 맞는지 아닌지 줏대 있게 판단하라는 얘기입니다.

독자로서는, 자기가 좋아하고 또 감동을 안겨준 작품을 써낸 작가들이 호되게 추달을 당하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무턱대고 빠져드는 그런 경지에서 벗어나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객관화할줄 아는 깜냥을, 사람에 따라서는 얻기도 할 것입니다.

3. 박완서 이청준 조정래 이문열 김훈 은희경 성석제……

그래서인지 전체를 통틀어 자잘한 것은 버리고 굵직굵직한 거리를 중심으로 살피면 '원로', '대가' 박완서가 가장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2008년 봄호에서 다룬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 특정 낱말 하나를 쓰지 않는 바람에 글의 숨결이 가빠졌음을 보여준답니다.

"산 닭 한 마리 골라잡으면 최소한 모가지를 비틀어 잡아준다거나, 부탁하면 가게 연탄불에 얹어 놓은 양은솥 끓는 물에 슬쩍 데쳐 내어 털을 깨끗이 뽑아주게 되어 있었다." 그러고는 이 원문을 반박합니다. "생닭 파는 데서 '모가지를 비틀어' 닭 잡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닭은 멱에 칼을 찔러 숨통을 끊는다.

다음으로, 털도 안 뽑은 닭을 '데치다'니 천부당만부당하다. '잡은 새나 짐승을 끓는 물에 잠깐 넣었다가 꺼내어 털을 뽑다'는 '데치다'가 아니라 '튀하다'이다."
바로잡기가 이어집니다.

"고쳐 보면 '산 닭 한 마리를 고르면 잡아주기만 하거나(튀하지 않고 죽여만 주는 경우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깨끗이 튀를 해주게 되어 있었다'가 된다. '튀하다'를 쓰지 않으므로 가게, 연탄불, 양은솥, 끓는 물, 데치다, 털을 뽑다 따위로 숨이 넘어가게 주워섬겨야 되게 되었다."

이청준의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도 걸렸습니다. 권오운은 이청준의 지나친 명사화 작업을 먼저 비판을 했네요. "게으름 부림이 아니었음, 헛수선 떨기처럼, 신세짐 없이, 어둠까지의 시간 바뀜, 옷 벗음과 떠남" 등. 그러고는 "초심자가 이런 짓을 했다면 아마 누구라도 혼쭐냈으리"라 한 마디 얹었습니다. 적절합니다.(제 생각에)

막간에는 조정래도 불러낸답니다. "사실 이 작업의 대가는 조정래다. <태백산맥>에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명품(?)들이 즐비하다. 목메임을 느꼈다. 길닦음을 했다. 여자들의 입모음이었다. 참새가 자리옮김을 했다. 가시가 엇갈림하여 돋았다. 꽃들이 꽃피움을 했다. 이쯤 되면 가히 만화방창이로세!"

본디로 돌아와 이청준. "'참대 엮음 사립'에 이르러서는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건 좀 심하다. '참대 사립'이면 그만 아닌가? '사립'이란 무엇으론가 '엮어' 만들게 마련이다. '엮음'을 넣을 필요는 없다. 아니 넣어서는 말을 망치고 만다. '쌀밥'을 '쌀 끓임 밥'이라 한 것과 뭣이 다른가."(저는 이 쌀 끓임 밥에서 폭소를 참지 못했습니다만. 우하하.)

이문열 <호모 엑세쿠탄스>에 나오는 "온 힘을 눈시울에 모아 눈을 뜨자 이번에는 눈꺼풀이 열렸다"도 딱 걸렸습니다. "'눈을 뜨고 나'니 그때에야 '눈꺼풀이 열렸'는가? '죽고 나니 숨이 끊어졌다'는 꼴이나 다름없다. '온 힘을 눈시울에 모으자 이번에는 눈꺼풀이 열렸다'면 될 것을."

<칼의 노래>로 크게 이름을 얻은 김훈도 2008년 여름호를 통해 <남한산성>에서 허방이 잡혔습니다요. "매틀에 묶여 있을 때 말이 비벼지면서 매는 더욱 가중되었다. (……) 김류의 수하들이 이시백을 곤장틀에 묶었다. 이시백은 형틀에 엎드렸다."

권오운은 매틀을 두고 "매를 때리는 틀이라고 붙여본 모양이나 엉터리 조어"라며 매틀은 '맷돌이 흔들리지 않도록 괴어 받치는 세 가닥으로 벋은 나뭇가지'를 이른다고 했습니다. 또 '곤장틀'은 아예 없고 "'죄인을 엎드리게 하여 팔다리를 묶던 틀'은 '장판(杖板)'·'장대(杖臺)'라 한다"고 쐐기박은 다음 "'형틀(刑-)'은 '죄인을 앉히는 의자같이 생긴 형구(刑具)'로 주리를 틀 때 쓴다. 이런데도 형틀에 엎드렸다니 기가 막힌다"고 덧붙였습니다.

은희경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에 나오는 "미소년 둘이 바람머리를 흔들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도 잘못으로 지목됐습니다. "'바람머리'는 '바람만 쐬면 머리가 아픈 병'이다. '흔들었다'니까 머리칼의 어느 부위나 모양새임이 분명하다. 여자들 '애교머리'는 아닐 테고 '더펄머리'나 '덩덕새머리'는 아닐까? 아니면 '바둑머리'나 '풀머리', 그도 아니면 '이맛머리'는 아닐까?"

2008년 가을호에서는 성석제 단편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도 호출이 됐습니다. "줄 빚이 있는 사람은 문상도 오지 않았고 받을 빚이 있는 사람들은 화장터까지 쫓아왔다"는 문장이랍니다. 권오운은 이를 두고 "읽으면 읽을수록 웃음밖에 안 나온다. '남에게 갚아야 할 돈'이 빚이다. 그런데 '줄 빚' '받을 빚'이라는 말이 어디 있는가. 예문은 차라리 '빚' 대신 '돈'을 써서 '줄 돈' '받을 돈'이라 하면 시원해진다"고 했습니다. 

4. 김병익 김윤식 등의 주례사 비평도 씹고

권오운의 오지랖 넓은 '똥 진 오소리' 노릇은 원로 또는 대가에 대한 거침 없는 비판을 넘어서, 문단에 고질이 되다시피 한 '주례사 비평'에 대해서도 은근하지만 따갑게 꼬집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왜 이리 시원한지)
 '튀하다'는 낱말을 몰라서인지, 괜히 생닭을 털도 안 뽑고 '데쳤'다가 혼쭐이 난 박완서에 대한 주례사 비평은 이렇게 처리했네요.

"'박완서의 문장은 (요즘 들어) 빠른 속도감을 보인다'는 김병익의 덕담을 다시 곱씹어 본다"라고……, 말입니다.
 이청준에 대한 주례사 비평도 마찬가지 '그윽하게' 처리했습니다. "'하늘과 땅이 하도 아득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것의 하나가 이청준 씨 소설이오.' 김윤식이 이청준 소설집에 부치는 헌사다. 나도 그의 소설로 잃어버린 소설 읽는 재미의 절반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하네요. 2008년 봄호에 나오는 '스토리'입니다. "몇 해 전, 이름난 한 문학상의 심사위원 한 사람은 그해의 수상작을 두고 '끌로 바위를 쪼는 듯한 눈부신 묘사'라는 극찬을 퍼부은 적이 있다(실은 '바위를 쪼는 것'은 '끌'이 아니라 '정'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수상작의 첫대목은 어처구니없게도 이러했다. <
여자는 콩깍지를 까고 있다. 깍지를 비틀 때면 벌어진 껍질 사이로 얼굴무늬의 강낭콩알들이 나란히 나타난다.> '콩깍지를 까다'니? 빈 껍데기를 왜 깐단 말인가? 소가 웃을 일이다. '여문 콩을 다 털어낸 빈 껍데기'가 '콩깍지'인 줄 모르고 저지른 해프닝이다. 과연 눈부신가?"

웃음보가 터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문학상 수상자가 '콩깍지'의 뜻을 잘못 알았고, 더 나아가 '콩꼬투리'라는 낱말을 제대로 몰라서 생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2008년 가을호에는 정영문이 나옵니다. 정영문은 지난해 '목신의 어떤 오후'로 제32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소설가라고 합니다.

"정영문은 이미 2002년, '예전 같았으면 영락없이 서투른 번역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을 문장'이라는 나의 면박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독자에게 쉽사리 다가갈 수 있는 취향은 아니지만 우리 문학에 꼭 있어야 하는 하나의 구색으로서의 독특한 모양새'라는 이문열의 도타운 옹호 속에서 그는 오늘도 예의 그 번역투에 열심히 복무하고 있다."

권오운은 곧장 정영문의 그 '예전 같았으면 영락없이 서투른 번역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을 문장'(이를테면 '후'(後)를 끝없이 되풀이한다든지 하는)을 날로 보여줍니다. 그런 다음 "'이 세계의 불가지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수작'(서영은)이라는 찬사도, '철학적 사유로 어떤 세계를 이룩하려는 독특함'(윤후명)이라는 옹호도 나에게는 그저 남대문입납이요, 비 내리는 호남선이다"는 말로 마감했습니다.

5. 토종말을 마주하는 즐거움, '이리도 모르는구나' 장탄식

권오운의 이런 글에는, 아주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낯설지는 않은, 그런 토종말을 자주 마주하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옆에 사전을 두고 읽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낱말이 나올 때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사전 검색을 하면서 읽으면 아주 감칠맛이 난답니다.

이를테면 '살강거리다-설익은 곡식이나 열매 따위가 가볍게 씹히는 소리가 자꾸 나다'는 권오운이 몸소 일러주는 설명입니다. '김치주저리-무청이 달린 채로 담근 무김치나 배추김치의 잎'도 마찬가지 권오운이 몸소 일러주는 뜻풀이라 할 수 있지요.

이밖에 눈에 띄는 대로 주섬주섬 주워 넘겨보면, '메어붙이다' '대바라기' '빚꾸러기' '개탕' '도사리' '호차(戶車)' '감또개' '몬다위' '갈피표(서표(書標)·보람줄·가름끈)' '쑤석거리다' '쌀개' '오사바사하다' '쓿다' '굴퉁이' 따위가 있습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낱말을 알게 해 주는 한편으로, '내가 우리말을 정말 제대로 알지 못하는구나', 장탄식을 하게도 만드는 재미 있는 '우리말 소반다듬이'입니다. 잘 나가는 소설가나 형식에 빠진 주례사 비평 탓에 더욱 쉽게 멍드는 우리말을 지키려는, 더없이 용감한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김훤주
※ <경남도민일보>에 3월 10일과 11일과 16일 세 차례에 걸쳐 나눠 실은 글을 새로 정리해 올립니다. 실제 기획 연재에서 잘못된 보기로 든 표현이나 문장은 여럿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가운데 도드라져 보이는 것만 골라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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