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이런 일본 사람은 고맙고도 두렵다

김훤주 2009. 3. 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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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하는 일본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런 일본 사람을 볼 때마다,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이 또한 아마 민족주의 비슷한 감정이겠지요.)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을 만큼 섬뜩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그이들의 철저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이라는 책, 그 책머리에 붙은 글쓴이 가노 마사나오라는 일본사람의 한국어판 서문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어릴 적 조선인 동급생이 당했던 기억입니다. 그 기억이 자기 인생을 결정했다는 고백입니다.

1. 대일본제국 국민학생의 창씨개명 기억

<<우연히도(내 의지와는 상관없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의미에서) 1931년에 ‘대일본제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 때 소학교(당시 명칭으로는 국민학교) 시절에 겪은 사건을 잊을 수 없습니다.

딱 한 사람 있던 재일 조선인 동급생에게 담임 교사가 별안간 “이 교실에서 너를 일본인으로 만들어 주겠어”라고 선언하고는 ‘오야마 하지메’(大山一)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가장 간단한 글자이니까 너 같은 조선인도 쓸 수 있을 거야” 하고 내뱉었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창씨개명의 학교판이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아무리 ‘소국민’이었다고 해도 어린 마음에 가혹한 처사로 여겨졌습니다. 그 뒤로 ‘오야마 하지메’라는 이름은 내 기억 속에 새겨진 채 조선 문제를 생각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일본 근현대사 전공자로서 인생을 선택하게 되었고, 일본의 근대가 조선과 조선 사람에게 어떠한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망각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사실 그 이상으로 일이 생길 때마다 ‘오야마 하지메’가 달려들어 내 마음을 뒤흔들곤 했습니다.>> (‘사실 그 이상으로 일이 생길 때마다’는, 번역이 좀 이상합니다만.)

2. 피해자 처지에 서기가 쉬운 일일까

이것은 무엇일까요? 당시 교실에서 조선인 동급생은 피해자입니다. 일본인 교사는 가해자이겠지요. 그렇다면 가노는 무엇이었겠습니까? 방관자쯤 되겠지요만, 가해자에 가까운 방관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관자 또는 가해자가, 처지와 관점을 바꿔 피해자에게로 돌아와 선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 세상 사는 이치에서 보자면,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본능을 거슬러 불이익을 스스로 골라잡는 그런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하면서 지내왔는가? 이런 반성이 자꾸 됩니다. 이를테면 제가 어린 학생이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로 돌아갑니다. 베트남이나 중국이나 몽골이나에서 옮겨온 여성이 어머니인, 이른바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학급 동료가 됐습니다.

그런데 담임 선생이 베트남 말이나 중국 말이나 몽골 말 따위를 못 쓰게 하고 ‘우리’ 한국 말만 쓰게 하는 상황이면 나는 어떻게 할까? 그이들 처지에서는 한국 말뿐 아니라, 베트남 말이나 중국 말이나 몽골 말도 마찬가지 모국어인데 말입니다. 피해자 옆으로 쉽사리 옮겨가질지, 아니면 담임이랑 같이 손가락질을 해댈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3. 관동대학살 경험으로 이름을 코리안으로 바꾼 일본사람

이런 얘기도 적혀 있습니다. 같은 가노 마사나오가 일러줬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참혹했던 광기가 배경입니다. 당시 조선인 학살이 공공연하게 벌어졌지요. 아니, 일본 사람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조선인이든 아니든 그대로 죽어나자빠져야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또 센다 고레야(千田是也)라는 연극인이 있습니다. 본명은 이토 구니오(伊藤?夫)라 하는데, 와세다대학 독문과 학생이던 1923년, 관동대지진의 와중에 도쿄 센다가야(千田ケ谷)에서 조선인으로 오해 받아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경험을 마음에 새기고자 작심한 이토구니오는 센다가야의 코리안 즉 센다 고레야를 예명으로 정했습니다. 그런 삶이 나를 매료시켰습니다.>>

좀더 찾아봤습니다. 센다 고레야는 실존 인물이었습니다. 그이는 그냥 길거리에 나갔다가 조선인으로 오인됩니다. ‘조선인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는 자경단의 추궁을 받습니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한, 이미 이치에 합당하게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자경단이라는 집단이 인정할 만한 증거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절망스러운 분위기에서, 자경단은 일본 사람이 아니면 소리내기 어려운 발음을 해보라고 강요합니다. 그런데 센다 고레야를 살리는 손길은 엉뚱한 데서 뻗어나왔습니다. 지나가던 동네 사람(일본사람임이 확실한)이 센다를 보고 “야, 너 뭐하냐?” 이렇게 말을 걸고 일본 사람이라 증명해 줬던 것입니다.

이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자기가 죽을 고비로 몰린 원인을 제공한, 조선과 조선인 편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하기란 그야말로 어려운 노릇입니다. 물론 정확하게 따지면 자기를 죽을 고비로 몰고 간 것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 광기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 일본 사람은 그렇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이름까지 갈아치워 버렸습니다.

4. 읽어볼만하겠다 싶은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

가노 마사나오가 쓴 <근대 일본의 사상가들>에는 50명이 들어 있습니다. 가해자 편에 서서 충분히 편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도 굳이 피해자 편에 선 사람이 쓴 책이라 믿음직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긴장을 늦출 필요는 없겠지요.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틈나는대로 읽어볼 요량입니다. 얼핏 보기에 이런 인물도 있더군요. 지식이나 일본 역사나 사회 흐름 따위뿐 아니라, 읽으면 사람에 따라서는 재미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230~231쪽입니다. 야나기타 구니오(1875~1962년)를 다룬 부분입니다. 민속한 분야를 개척해 민속학의 체계화와 연구자 육성에 이바지했다고 합니다.

<<야나기타는 <메이지·다이쇼의 역사 4, 세상편(明治大正史 4, 世上編, 1931년)에서 그런 생각을 구체화시켰다.

“이전의 전기(傳記)식 역사에 불만이 있어 일부러 고유명사를 하나도 쓰지 않으려 했다”는 결의에 따라 “영웅의 심사를 적지 않고,” “세상에 널려 있는 보통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 작품은 사람들의 눈과 귀, 코의 기능, 즉 색·소리·냄새에 대응하는 인간의 힘이 근대화와 더불어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상세하게 밝힘으로써 과거를 보는 우리의 사고방식에 충격을 주었다.

예를 들면 주거 환경이 판자문에서 장지문으로, 그리고 유리문으로 바뀌는 것이 가져온 변화를, 집안 구석구석이 밝아졌다는 점에 포착하여, “집안의 젊은이들이 일이 없는 시각에 물러나서 책을 읽는 것이 바로 그 구석이었다. 그들은 조금씩 가장(家長)도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생각하게 되면서 마음속의 방들도 또한 작게 나뉘어졌다”고 설명한다.

방마다 전등을 켜고 끌 수 있게 되자 “불의 분열”이 일어났는데, “불의 분열은 곧 이로리(爐, 전통 가옥의 거실에서 취사와 난방을 위해 피우는 화로-옮긴이)의 위력이 쇠락한 것을 말해 준다”며, 그것이 이로리를 둘러싸고 정해졌던 가족 구성원의 위치 변화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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