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에 이어 토요일인 어제(7일) 다시 마산 외곽의 진전면 곡안리에 사시는 황점순 할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전 기사 : 민간인학살 유족 황점순 할머니의 눈물

그날 "먹고 싶은 게 뭐냐"는 저의 집요한 질문에 할머니는 "한약을 먹어보고 싶다"는 뜻을 비췄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마산 산호동에서 '이병직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병직 원장이 할머니를 진료해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민중의 소리> 구자환 기자를 꼬셔(저는 차가 없거든요. ㅎㅎ) 할머니를 모시고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렸습니다.

오전에 찍어두었던 뒤란의 겨울초 텃밭.


그냥 나오려던 저희들을 붙잡으신 할머니는 그동안 뒤뜰에서 정성스레 길러온 겨울초(冬草) 어린 순을 뜯어 비닐봉지 두 개에 가득 담았습니다. 오전에 겨울초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그 때 보니 할머니도 아직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아직은 뜯어 먹기에 좀 이른 감이 있는 여린 새순이었습니다.


겨울초 겉절이에는 파도 들어가야 한다며 마당에서 키운 실파도 한웅금씩 뽑았습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간장을 사먹는다는 걸 아는 할머니는 직접 메주로 담근 간장 한 병도 내놓았습니다.

할머니가 황급히 뜯어 담은 겨울초 봉지와 간장.

아직은 여린 새잎입니다. 파도 있습니다.


집에서 저녁에 할머니의 겨울초와 간장으로 아내가 겉절이를 만들었습니다. 아내 말로는 "간장이 참 달고 맛있다"고 했습니다. 겉절이와 참기름을 밥에 넣어 슥슥 비벼 먹으니 그야말로 봄향기가 입안에 가득 찼습니다. 이게 바로 봄맛이었습니다. 아직은 여린 겨울초라 더 부드럽고 향긋한 것 같았습니다.


겉절이에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비기 직전입니다.

침이 고이지 않습니까?

입안에 봄향기가 가득 퍼집니다.


너무 맛있어 오늘 아침에도 아내를 졸라 역시 겨울초 비빔밥을 해 먹었습니다. 두끼를 연달아 먹어도 맛은 여전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입맛이 다셔질 정도입니다.


황점순 할머니는 열 아홉 살에 곡안리 성주 이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후, 스물 두 살 되던 1950년 남편을 국군과 경찰의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으로 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달 후에는 두 살 난 젖먹이 아들 상섭이를 미군이 쏜 총탄에 잃었으며, 자신도 온 몸에 총탄과 파편을 맞고 죽음의 구렁에서 기사회생으로 살아난 뒤, 평생을 혼자 살아오신 분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몸소 안고 살아오신 할머니의 겨울초를 이토록 맛있게 먹고 입맛을 다셔도 괜찮을 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죄송스럽네요.

※3월 9일 오전 10시 추가 : 참! 깜박했네요. 이 비빔밥은 된장 국물을 몇 숟가락 넣어줘야 더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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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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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plz.tistory.com 좋은사람들 2009.03.08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맛나겠습니다~ㅣ:)

  2. Favicon of http://sexygony.com 섹시고니 2009.03.08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정말 입에 침이 고이네요.

    어떤 때.. 음. / 김주완 기자님 동선을 보고 있자면 세상과 어울려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해가면서 사는 그런 모습이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사실 제 일을 사랑하기는 합니다만.. ㅎ

    저도 겨울초는 아니더라도 어머님이 주신 김치에 참기름 넣고 야식 좀 먹어봐야겠습니다. ㅎㅎ

  3. 천향 2009.03.08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왠지 할머니가 남같지않네요..

  4. 우연 2009.03.09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주완 기자의 글과 사진을 보면, 나의 친구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세상의 모든 잡사에 렌즈를 들이댑니다.
    저렇게 찍어대다가 밥은 언제 묵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정작 본인은 100% 음미하지 못하지만, 남들을 기쁘게 하니
    나의 친구도, 김주완 기자도 배는 부르겠습니다.

    그 친구가 들려준 얘기. 과거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 중앙아시아 이주 60주년을
    맞아 출장을 갔더랍니다. 강제이주 열차 속에서 출생한 한 여성(60세이니
    할머니는 아니죠)을 찾아 인터뷰를 했는데, 그 집에서 나올 때 받아온 선물이 있습니다.
    그 여성이 마당에서 재배한 배추의 씨레기를 큰 봉지 하나, 부리나케, 담아주더랍니다.
    그 큰 봉지를 서울에 끌고와 저한테까지 '분배'해주었는데, 맛이 어찌나 달던지...
    조금 질기기는 했습니다.
    그때, 그 생각이 불현듯 나서...

    좋은 글, 사진 잘 읽었습니다.

    • Favicon of https://100in.tistory.com 기록하는 사람 2009.03.09 0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흐흐...이렇게 된지도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마땅히 활용처가 없었는데, 지금은 블로그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죠. 자주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5. Favicon of http://sanhajunha.tistory.com 뉴클리어 2009.03.09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반칙입니다. 금요일 아침 주물럭은 주말 염장 쯤으로 이해를 합니다만... 월요일 아침부터 이러시면 이건 테러입니다. 스읍~~~ 그나마 참기름이 엄마표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저 맛있는 음식에 인스턴트 참기름이라뉘~~ 푸헐~~

  6. Favicon of http://sanhajunha.tistory.com 뉴클리어 2009.03.09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약을 먹어보고 싶다'
    '먹고 싶다'가 아니라 '먹어보고 싶다'란 할머니의 말씀이 참~ ........
    선뜻 호의를 베풀어 주신 한의원 원장 님.....그리고 이 일이 가능케 한 기자 님...수고하셨습니다.
    복 받으실 것입니다.

  7. 우연 2009.03.09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흐흐...
    자주 들어와서 괴롭히겠습니다.
    아마도 좋은 이야기보다는 괴로운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드릴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요, 그건 생각해 보시면 압니다.

  8. 최창석 2009.03.09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의 생을 보니 눈물이 고일려고 하네요
    기자님 행복하세요

  9. 장영철 2009.03.23 2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머니와 주완님은 댓가를 바라지 않는 배려를 즐기고 있는 듯...........

  10. 맛있겠네요 2010.03.23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맛있겠네요 마침 저희집에도 겨울초김치가 있었군요!
    저도 한번 해먹어보고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