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들은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리는 대학 학과로 진학하려 했습니다. 아쉽게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떨어졌음이 확인되던 날, 저도 사람인지라 맥이 풀리고 힘이 없어지더군요. 실망스럽기도 하고 좀 멍해지기도 했습니다. 아들 녀석은 어떨까, 생각도 됐습니다.
‘힘내자’, ‘일단 좀 쉬어’ 뭐 이런 격려 문자를 보냈지 싶습니다. 이제 한 스무 날쯤 지났네요. 조금 추슬러졌습니다. 저도 그렇고 아들도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아들을 두고 못 미더워하거나 안타까워하거나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아들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이랑 함께 찍은 아들 졸업 기념 사진.(2009. 2. 11)
물론 이를 두고 ‘개 풀 뜯는 소리 하고 있네, 나중에 한 번 살아 봐라.’ 이러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들이 바람대로 살기 바라고 그리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왜냐, 돈 또는 돈벌이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으로 상징되는 소유 또는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몸과 마음이 고맙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대학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때가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좀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무슨 대학 회화과로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공부를 하더군요. 전에는 안 했습니다. 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는데 그 힘든 공부를 무엇하러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성적도 좋아졌습니다.
바탕 공부가 좀 없는 편이라 어느 정도 오르고 나서는 더 나아지기 힘들었습니다. 떨어진 까닭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들은 자기 하고픈 그림을 위해 재수를 결심했습니다.
나름대로 시간 계획도 짰습니다. 아들은 고1 때부터 예전과 달라져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 애쓰는 한편으로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아들에게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절로 힘이 나고, 절로 힘이 나니까 만사가 어렵지 않아진다고요. 또 스스로 말미암으니까 삶이 가벼워지고 재미도 생긴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실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지 못한 편입니다. 지난 20년 남짓, 노동운동 따위를, 그러니까 ‘해야 하는 일’이라 여겨지는 일을 주로 하며 살았습니다. 삶이 무거웠고 재미도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해 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사가 아닌 글, 쓰기입니다. 자세히 일러드리기는 어렵지만, 제게 많은 즐거움이 생겼습니다. 무거움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취직을 해야 한다 아등바등 매달리고 하는 일은 앞으로 조금씩 덜 보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예? 하고픈 일이 없다고요? 진짜로요? 그러면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시면 되지요. 그러면서 진정으로 내가 하고픈 일이 무엇인지,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되지 않을까요?
김훤주(경남도민일보 기자)
※ ‘창원대신문’ 2월 20일치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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