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별 의미없는 것

열일곱 시절 여자친구 머리에서 나던 샴푸 향기 같은

김훤주 2009. 1. 19.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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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상 바로 옆에 난초가 하나 왔습니다. 며칠 동안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더니 지난 13일쯤 이렇게 망울이 터졌습니다. 머금고 있을 때도 향긋한 내음을 풍기더니 이제 꽤 짙어졌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난 꽃 냄새가 저는 좋았습니다. 그래서 여기다 코를 갖다대고 지긋이 눈을 감은 채 킁킁 거리고는 했습니다. 그윽한 이 냄새를 뭐라 표현할 수 있겠나 생각을 했지요.

글쎄, 초록색 향기라 하면 될까? 조금 달짝지근한 냄새가 나면서도 전혀 끈적거리는 느낌은 주지 않는. 그래 머물지 않으면서 상큼하게 탁 치고 가는 그런 촉감. 그러면서 끊어지지도 않는.

이러고 있는데 지난 16일 동기인 유은상 기자가 가까이 오더니 난초에다 머리를 온통 갖다대었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아무 말 않았지만, 행여 저러다 화분이 쓰러지지나 않을까 불안했습니다.


물론 유은상 기자 말고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어느 누구도 이리 하지 않았기에, 저랑 비슷하게 이런 데 머리를 갖다 처박는 모습에서 무슨 동질감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유은상 기자가 웃으며 얘기했습니다. “옛날부터 꽃 냄새가 아주아주 좋아서 그랬어요.” 저도, “나도 좋은데, 그런데 이 냄새를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네. 초록색 냄새라 할까 싶은데…….”

이리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둘이는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유은상 기자가 딱 한 마디로 정리해줬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열일곱 살 때 여자 친구 머리에서 나던, 샴푸 향기 같다……, 고.”

저는 순간 “우와, 멋진 표현이네! 이거 뭐라 해야 하나, 공감각적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고, 참! 공시대적 표현이라 하면 좀 걸맞으려나?” 물론 ‘공감각’이라는 낱말은 있어도 ‘공시대’ 어쩌고는 없습니다.

공감각(共感覺)은 아시는대로, ‘푸른 종소리’처럼 감각이 둘 이상 겹치면서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공시대(共時代)는, 그냥 시대가 같다는 뜻으로 순간 뱉어낸 말일 뿐입니다요.

어쨌거나 우리 또래는 ‘이런’ 샴푸 향기에서, 찰랑거리는 머릿결과 상큼한 냄새와 산뜻한 마주침과 해맑은 흔들림과 반짝이는 눈동자를, 한꺼번에 느끼지요. 우리 둘이는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 웃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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