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한 마을 집에 민간인 110명을 몰아넣은 뒤 포격을 가해 어린이를 포함한 30여 명을 학살했다는 사실이 지난 9일 전 세계 언론에 타전됐다. 유엔은 보고서를 통해 "집안에 갇혀 있던 팔레스타인인의 절반가량은 어린이들이었다"면서 "가자지구 침공이 시작된 이후 가장 심각한 사건 중 하나"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하루 전날인 8일, 한국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48년 발생한 여순사건과 관련, 국군과 경찰이 반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439명을 불법적으로 집단학살했다며 '진실 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순천지역 희생자는 439명으로 확인됐으나,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거나 사건 이후 멸족된 사례 등을 고려하면 실제 희생자 수는 2000여 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30여 명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민간인학살이 세계를 떠들석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 한국전쟁 전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민간인학살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번에 희생된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장에서 이스라엘군은 '적군'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에는 최소 수십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이 넘는 우리 민간인이 '아군'인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됐다.

60년 간 은폐되어온 한국군의 민간인학살

어느 나라의 민간인학살이 더 중요하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학살은 발생 직후 곧바로 진실이 밝혀졌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60년이 다 된 지금까지 철저히 은폐된 사건들이 태반이다. 특히 1948년 10월부터 1950년 6·26 발발 이전까지 전쟁시기도 아닌 상황에서 여순사건 반군을 토벌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 중 '진실 규명'이 이뤄진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처럼 뒤늦은 진상규명마저 중단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사 관련 기구 통폐합과 인력·예산 감축 시도가 그것이다. 마치 이승만 정권의 반민특위 해산과 친일파 청산 무산 과정을 보는 듯 하다.

여순사건 반군 토벌과정의 민간인학살 피해는 여수·순천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경남의 함양과 산청에서도 죄없는 민간인들이 '반군에 협력했다'는 명목으로 군경에 의해 수없이 학살됐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이 산청군 시천·삼장면 학살이다. 이 지역 주민 수백 명은 1949년 7월에서 1950년 1월 말 사이에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강변, 신천리 신천국민학교, 원리 덕산국민학교 뒷산, 사리 농회창고 뒷산, 삼장면 평촌리 가막골 외 지리산 산간마을과 골짜기 등 여러 곳에서 국군 제3연대 정보과, 제2대대 소속 군인들에게 집단살해당했다.

6·25 발발 이전의 경남지역 민간인학살 사건 중 그나마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 규명' 결정을 받은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이면서도 아직 문서기록이나 가해자 진술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실규명이 미뤄지고 있는 사건이 더 많다.

이스라엘군의 30명 학살이 발생 5일만에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60년이 다되도록 드러나지 않고 있는 우리지역 민간인학살 사건을 취재했다.

◇함양군 백전면 신촌·중기마을 학살

1948년 10월 여순사건을 일으킨 14연대 반군들은 토벌군에 쫓겨 지리산과 덕유산 일대로 숨어들어 빨치산 활동을 벌였다. 기록에 따르면 당초 1000여 명에 이르렀던 이들 반군 빨치산은 1949년 봄 200여 명으로 줄어들었으나, 9월 들어 토벌군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9월초 어느날 밤, 무장한 빨치산이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신촌마을과 운산리 중기마을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에게 밥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총을 들고 온 사람들이 밥을 해달라는데 안 해줄 도리가 있나요? 구장이 집집마다 몇 그릇씩 배정을 했고, 우리는 시키는대로 밥을 해줄 수밖에 없었지요."

주민들은 빨치산이 마을을 떠난 후, 즉시 경찰 지서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그로부터 몇 일이 지난 후였다. 낮에 전투경찰대가 마을에 들어왔다.

경찰은 오히려 빨치산이 다녀간 사실을 신고하러 갔던 사람들과 구장, 반장을 포함, 모두 11명을 윤칠월 열나흗날(양력 9월 6일) 연행해 갔다. 11명 중에는 오정현, 오기현, 오두현 등 3형제도 있었다.

경찰은 이들 중 오기현, 오두현 두 형제만 석방하고, 나머지 9명을 빨치산에 협력했다는 명목으로 함양읍 이은리 남산 골짜기에서 총살했다.

이후 유족들은 학살 장소도 알지 못한 데다 경찰이 무서워 시신도 찾지 못한 채 한맺힌 삶을 살아왔다. 유족들은 정확한 사망날짜도 알지 못해 몇 년 뒤부터 끌려나간 윤칠월 나흗날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또 그로부터 보름쯤 후인 윤칠월 그믐날(9월 21일) 운산리 중기마을 전재옥(당시 35세) 씨 등 주민 12명도 같은 명목으로 경찰에 끌려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소문으로는 수동면 본통고개에서 학살됐다는 설이 있으나 역시 시신도 찾지 못했다.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 학살

역시 1949년 윤칠월이었다.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 역시 밤에는 군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오지였다. 이에 따라 밤이면 빨치산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목책을 세우고 죽창을 든 채 자체적으로 마을 경비를 섰다.

32명의 마을주민이 전경·군경에 학살된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


어느날 밤 경비를 서고 있던 주민들은 이 마을의 이발사 정주상 씨가 짐을 챙겨 도주하는 것을 발견, 그를 붙잡아 수동지서에 넘겼다.

경찰은 정주상 씨에 대한 조사를 벌이며 그의 이발관을 수색하던 중 마을주민 40여 명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발견했다.

"그건 외상으로 이발을 하고 가을걷이를 마치면 곡식으로 이발료를 갚기로 한 외상장부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정주상의 허위자백을 근거로 그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빨치산 협력자로 몰았어요."

당시 35세였던 아버지를 잃은 차용현(71) 씨의 증언이다.

경찰은 출타 중이거나 자리를 피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35명을 함양경찰서로 끌고 갔고, 혹독한 고문 끝에 32명을 함양읍에 주둔하고 있던 군부대에 넘겼다.

결국 이들 32명은 군부대에 의해 함양읍 이은리 당그래산 골짜기에서 무참히 학살됐다. 그 날이 1949년 9월 20일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경찰과 우익단체 회원들은 학살 후 마을 주민들의 집단반발을 우려해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강제로 이주토록 했다.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다른 마을에서 행랑채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가는 집을 태운 데 대해서도 아무런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 주민들이 1949년 학살된 유해를 42년만에 발굴, 1992년 1월 마을 앞산에 합동묘를 조성한 후 위령비 제막식을 하고 있다.


이후 유족들은 시신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학살현장을 찾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경찰에 구타를 당하고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유골이나마 수습한 것은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1991년이었다.


유족들은 당그래산 현장에서 모두 34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주민들은 억울하게 학살된 32명 외에 이발사 정주상, 그리고 실제로 빨치산과 내통해온 여성 한 명이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유해는 1992년 1월 18일 도북마을 앞산에 합동묘를 조성해 안장됐다.

◇함양군 수동면 죽산리 내산마을(치라골) 학살

도북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내산마을(치라골)에서도 17명의 마을 주민이 군경에 의해 학살됐다. 이 마을 역시 여순사건 반군들로 구성된 빨치산들이 곡식을 약탈해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주민들은 지서에 신고를 했지만, 오히려 신고한 사람들이 지서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곤 했다.

"지서에서 신고를 하라고 해놓고, 막상 신고를 하면 뒈지게 맞는 거요. 밥은 몇 번 줬느냐, 빨갱이 심부름 몇 번 했느냐 하면서…. 두들겨 패면, 매에 장사 없다고, 그 사람들에게 밥을 한 번 줘도 열 번 줬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거요."

치라골 학살로 형을 잃은 임이택 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형님 임한택(당시 22세) 씨를 잃었던 임이택(70) 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그러던 어느날 경찰과 우익청년들이 마을에 들어와 30세 이하 청년 18명을 묶어 연행해갔다. 이들 역시 경찰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한 후, 1명을 뺀 17명이 당그래산 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 당시 이 마을 총 30가구 중 17가구에서 한 명씩 희생됐던 것이다. 그날이 9월 21일이라고 유족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 마을 역시 학살 이틀 후 강제이주를 당했다. 주민들이 마을에 다시 돌아온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

치라골 유족들은 도북마을과 달리 시신도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도북마을 사람들이 유해발굴터에 비석을 세울 때 치라골 희생자들의 명단도 함께 새겨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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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기록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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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개념가득 2009.01.13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먼자들의도시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있어도 보지 않으려하고, 그래서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군요.
    위글중 6.25 전쟁중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전쟁이전의 국군과 경찰의 양민학살에 대한 얘기뿐인데
    도대체 어디서 전쟁얘기를 보고는 여기다 리플다는거요?
    난독증인지, 초딩들이 리플다는건지, 학교다닐때 국어시험은 30점 맞던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네요.
    하기사 이미 백일하에 드러난 사실도 아니라고하고, 빨갱이라서 죽였다고 하는 사람들이니
    철저하게 눈먼자들이구만.

  3. 내생각 2009.01.13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저 이스라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 피아가 구분 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상황은 좀 달랐습니다.
    그들이 진짜 우리의 편인지 아니면 빨치산에 동조한 세력인지의 구분이 정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돌아가신 분들 중에 분명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분들이 대다수일겁니다.
    그렇지만 그들 모두가 우리의 편이었다고 단정 지을수 있습니까?
    그 분들 중 단 한사람도 빨치산에 동조한 사람들이 없다고 말 할수 있습니까?
    베트남의 상황을 보시면 알수 있습니다.
    낮에는 월남편 밤에는 월맹편이었던 마을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피아가 식별되는 전쟁에서는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한 해야 하는것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비정규전에서는 사실 교전수칙을 따르는것이 쉽지는 않을겁니다.

    그렇다고 학살을 저지른 국군의 행동이 옳다고는 생각치는 않습니다.
    분명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것이고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일일겁니다.

  4. 부국강병 2009.01.13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신차려라 이눔들아 나라힘 약해지면 또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법 있냐 정신 똑바로차려도 대한민국을 지킬까 말까 하는데 맨날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따져서 뭐할래 ?
    쪽발이나 짱개이넘들 한반도 못 먹어서 난린데 , 현재는 개정일 정권이 더 위험하다는것 머리에 새겨 넣고 국익에 도움 되는거라면 적극협조 해서 다시는 이런 동족상잔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된다는걸 명심 또명심해야 한다

  5. 슬프다 2009.01.13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0년 전 일이지만 슬프네요. 그 당시를 사셨던 많은 분들의 마음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같은 민족끼리의 처절한 복수는 다시는 없어야 겟네요..
    당시는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그리 됐지만 지금 유대넘들은 다분히 자신들이 당했던 홀로코스트 보다 더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모든 유대 기업들 상품을 불매 해야겠지요~~

  6. 어차피 2009.01.13 1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이라는게 인간의 가장추악하고 잔인한면을 보여주는것이기에..
    저런일들이 안타깝고 다시는있어서는 안될일이지만
    또 한편 전쟁의 한면이라고도 생각

  7. 어차피 2009.01.13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전쟁전 빨치산들의 민간인 군경가족학살에 의한 보복적인성격도 있었다는점..
    그사이에 억울하게 희생된사람들..정규전보다 더 더럽고 잔인한 비정규전..

    • 어차피 2009.01.13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지만 글 제목을보면 조중동의 그것과 틀린게 무엇인가..그리고 아직까지 1950년대의 사고로 반성도 사죄도 없는 북한을 보면 오히려 이렇게라도 하나하나 진실을 규명하고 있다는건 그나마 다행이지않나..국군포로 송환은 언제쯤 이루어지려나

  8. 균형감각 2009.01.13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군에 의한 양민 학살만 강조하고 북조선군이나 빨치산에 의한 양민 학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것은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북조선군대라고 남한군대보다 도덕성이 우월하거나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겠습니까. 아니면 북조선 지휘관들이라고 남한 지휘관들보다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들이었겠습니까. 불과 3-4년 전 까지만 해도 한 나라였는데 북이나 남이나 군인들의 도덕성이나 인명에 대한 개념은 거기서 거기였을 겁니다. 니가 몇 명 더 죽였으니 내가 더 잘났네를 결정하는 게 과연 의미있는 일인지 모르겠군요.

    동족 상잔이 비극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민족끼리 죽이는 것보다 더 비극적이라고 하는 것도 공감할 수 없구요. 더군다나 21세기에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일방적 학살과, 20세기 중반 가난과 이념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던 조선에서의 내전을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고 그 둘을 단순 연결시키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은 없어져야 하고 특히 민간인의 억울한 피해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쓰신 의도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내용이 균형잡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9. 향기로운 바람 2009.01.13 1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방이후 친일 매국노들의 만행은 극에 달했었죠..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서. 죽이는 게 일이었는데도.. 이승만 독재는 자신의 안위만를 챙기느라..
    오직하면.. 서북청년단 깡패 살인자 출신이 적십자사 총재까지 되었겠습니까.. 일그러진 역사를 볼때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가 걱정됩니다..

    • 어차피 2009.01.13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해방이후 북한은 친일청산한걸로 믿고계시겠지만 그들도 윗선은 친일파를 많이 등용했다지요..그리고 민주인사 억압하고 숙청하고..그렇다구요

  10. 반달 2009.01.13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교할 걸 비교하시죠...나참..
    한국군의 학살은 당연 문제가 있죠. 하지만 이스라엘과는 천지차이로 다르죠. 한국전이나 월남이나 철저한 게릴라전을 대응하기 위한 거였답니다. 낮에는 정부군, 밤에는 게릴라(빨치산, 베트콩).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한거죠. 정보취득이 어려웠고 전쟁상황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이었고 말이죠..
    하지만 이스라엘 학살은 다르죠. 명백합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손바닥보듯 훤히 보고 있습니다. 조기경보기, 무인정찰기, 전투기, 전투헬기등 하늘에는 이스라엘의 무장항공기들이 즐비하게 날아다니고 있고, 이것들을 격추하거나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무기들이 하마스에겐 없어요. 그뿐입니까 지상에는 이스라엘의 외계인스러운 메르카바전차를 앞세운 기갑부대와 최신무기로 무장한 보병들이 작전을 하고 있답니다. 이스라엘은 충분히 골라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전과 월남전의 한국군 학살과 비교하는지 참 이해가 안갑니다.
    전쟁학살은 분명 잘못입니다. 하지만 학살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의 학살은 분명코 막아야죠. 이스라엘군 가자지구 학살은 분명 전세계의 방조속에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미국이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묵인하고 있고 그 주변국들도 그 능력은 충분하지만 방조하고 있죠..
    예수의 아들 딸로 주창하는 이스라엘이 예수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민족에 대한 대응이라고 봐야죠. 예수를 믿지 않는 민족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그들... 미국이 이스라엘의 뒤를 받춰주고 있는 이상 이스라엘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지구상 아무도 없답니다. 예수외에는..

  11. 이런건 2009.01.13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은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참 글쓴이 비열합니다.. 이런 경우 꼭 이런글을 써야겠습니까...
    남의 고통을 이용하고 싶은지.......

  12. 다좋은데 2009.01.13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라엘은 왜나옴????
    요새 시대에 닷새만에 퍼진거랑
    그시대에 언론상황에서 60년 묻힌거를 비교하면서
    이명박이 언론통제한다고 주장하는거?????
    글구 원래 전쟁=나면 사람이유없이 죽거든
    전쟁이 나면 안되지만
    전쟁낫는데 사람들이 공평한 대접받은 예는 없어 지구상에
    힘없는사람들은 항상 피해봣지
    북한군은 그런거 없을까?
    미군은 그런거 없을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이런건 항상있어왔던일이야

  13. 지나는이 2009.01.13 1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의 내용보다 댓글들이 더 비극적이네요.
    하지만 너무 상심마세요. 극우까페에서 위 주소를 올렸을 겁니다. 알고보면 가련한 사람들이지요.

  14. 반도인.. 2009.01.13 12: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플 읽다가 보면..참 무섭기도 하지만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그 옛날 있었던 학살 사건에 대해서 분개하면서 글쓴이의 글에 반하는 글을 쓰면 댓글에다가
    갈아버리고 싶다던지...친일파라던지...이런말들이 댓글로 올라오는데...
    현재 철책선 너머 이북동포들 이야기도 아니고 바로 옆에 있는 이까지 의견틀리다고 그정도 저주 퍼붇는
    이들이 과연 60년전 동족간의 사건,사고에 대해서 담대히 받아들일 자세가 되 있냐는 거다.
    그런 자세가 같춰지면 이런 이야기들은 훨씬 건설적으로 진행될수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내 별명인..(반도인)처럼 반도민족들은 정말 목숨걸고 자기 주장 펼치는 민족들이니 그러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게 숙제다.

  15. 멋진사람 2009.01.13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무서운 세상임을 실감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댓글을 어떻게 올리는 지도 잘 모르고, 짧은 생각에 몇자 올렸더니.......벌떼 같이 달려 들어 욕하고, 겁주고, 무시하고, .....이게 어느나라인가요? 과거 지사에 대하여 정확하게 알고 서로 인정해 가면서 살아도 어려운 싯점인데, 머리속이 한가지 생각으로만 꽉 차있는지? 조금도 관용을 베풀지 못하는 현실이 정말 가슴 아픔니다.
    나의 댓글 한귀절에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달려 들어 물어 뜯는 모습에, 과거 해방이후에 좌우익으로 나뉘어 온갖 폭행과 테러가 난무하는 듯한 착각속에 빠지게 됩니다. 이제 우리도 냉정을 찿아야 할 것이며, 최소한 상대의 의견에 욕하고, 겁주고, 무시하는 생각을 접고, 좀더 나은, 올바른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데 온 국민의 노력을 모을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도 개판이 계속 된다면 멋진사람의 최초 댓글을 삭제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맞춤법이라도 맞게 써 주세요.

  16. 그런깜냥 2009.01.13 1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서 '그럼 북괴가 한 짓에 대해선 왜 함구하냐'하시는 분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단 습관처럼 들먹이는 그 '좌빨 이데올로기' 를 떼고 한번 장문의 글을 적어보세요.
    댁들 논리대로라면 본문을 적으신 기자님도 댁들 보기에 이것저것 다 떼고 글을 착실히 적으신건데,
    그럼 여러분들도 자잘한거 다 떼고 원하시는 주제의 글을 적어서 균형을 맞추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컴맹이지만 요즘 블로그를 하나 만들려고 알아보는 중인데, 저같은 사람이 무슨글을 적을지 뻔하다면 댁들도 이것저것 준비해 보세요. 그러면 댁들이 원하는 그 '균형'이란게 만들어질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각자의 소리를 낼수있는 사회가 건전한것이지, 자기가 원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해서 한쪽으로 몰아세우고 다른 시각을 강요하는건 옳지 않습니다.

  17. ㅋㅋㅋ 2009.01.13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말이 필요없다 욘석들 편히 살다보니 춥고 배고프고 죽는게 얼마나 무서운줄 모르는 구나 ㅋㅋㅋ 편히 사는게 좋은거다 죽곤십지않으면 그만좀 종알종알 거려라 미국 식민지 섹끼들이 요즘 하두 풀어주니깐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구나 그러다 정말 죽는수가 있다는걸 생각해라 ㅄ들 특히20~40대 새끼들 요즘 이정도 힘든것두 힘들다고 죽겠다고 하는것들이 ㅋㅋㅋ 정말 죽을 라고 환장한 개한민국 ㅆㄲ들...

  18. Favicon of http://liebe.tistory.com/ LieBe 2009.01.13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제 포스트에 링크 걸고 트랙백 날립니다.

  19. 에라횽 2009.01.13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당시 북괴군에 의한 민간인 할살자들도 많았고..
    참 안타깝습니다..

  20. 평화를 위하여 2009.01.13 19: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은 악이며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나라는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부정한다면 인류의 역사랑 상관없이 살아야 되며 곧 자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힘써야 할것입니다. 한국군만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인가요? 북한군은 통일을 위해 죽이지 않았구요. 지금 북한은 인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굶어 죽는 현실입니다.

  21. 아로마 2009.01.14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로에는 아로마테라피가 좋다고들 하죠... 단기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용이 좋구요..
    아로마향 방향제나 허브차 좋습니다..
    또 스위스샵(www.swisshop.co.kr)이란 사이트에 가시면 졸음과 집중력, 멀미, 숙취 등에 좋은
    아로마테라피 제품이 있습니다...
    코속에 살짝 끼우는 U자형의 조그만 제품인데.. 특히 졸음과 집중력강화제품인 '자미팍'은
    일본항공과 아나항공이 승무원용으로 공식채택할 만큼 강하고 깨끗한 허브향이 머리를 맑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피로하면 졸리고 집중력 떨어지는데.. 한번 사용해보세요...
    숙취용인 수리팍은 음주 후 하나를 착용한 채 취침하고 심하게 과음을 한 경우 다음 날 오전에
    하나를 더 착용하시면 숙취해소에 아주 좋죠.. 마시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냥 제가 사용해본
    결과입니다... 안써보셨다면 적극 강추!!! - 단지 아로마테라피를 권장하는 사람으로서 적어봅니다.